★ 일어나 저 강을 건너라 56

Roche Korea로의 첫 출근과 초기 회사 생활에 대한 회고(2)

내가 입사한 당시의 조직은 다음과 같았다. PM으로서 내가 맡은 품목은 3세대 세파로스포린 항생제 로세핀, 항 혐기성균 항생제 티베랄, 파킨슨 치료제 마도파와 그외 간트리신, 러미라, 플루오로우라실 등이었다. 전체 인사 할때도 케스터만씨가 강조하였지만 그때까지의 로슈 그룹 주요 품목 라인은 바륨으로 부터 시작한 정신과 약물이었다. 그룹의 체질을 개선하고자 야망을 갖고 개발 발매한 항생제 로세핀에 거는 기대가 대단하였다. 내가 속한 마아케팅부의 분위기는 너무나 인간적이고 서로 존중하여서 내가 갖고있는 호전적 분위기나 공격적 성향은 우스운 것이 되었다. 나는 언제나 동료들에게 한없이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하게 되었다. 나처럼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고 튀는 성격에 만일 또 다른 그런 동료가 있었다면 어떻게 되..

Roche Korea로의 첫 출근과 초기 회사 생활에 대한 회고(1)

(전에 썼던 내용과 중복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인생을 바꾼 Roche Korea로의 첫 출근과 초기 회사 생활에 대해 써 놓았던 글이 발견 되었기에 다시 전재한다. 무슨 목적으로 그때 이 글을 썼었는지는 잊어 버렸지만 그때의 생활을 보다 생생하게 나타내고 있기때문이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기라도 하려는 듯 벌써 한 여름에 들어선 아침 햇빛이 오늘 아침은 더욱 힘있게 내리 비췬다. 오늘은 1984년 7월 2일, 월요일 아침 일곱시, 나는 아끼는 포니2에 시동을 걸고 입을 굳게 다문채 출발하였다. 로슈가 위치한 충정로 종근당 빌딩까지는 40분 이상 걸릴 것이다. 잘해 낼 수 있을까. 수없이 되뇌이고 자문하며 내가 왜 못할 것인가 충분히 잘 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다짐했던 그 질문이 다시금 불안한..

일본으로 가다. 시대 변화에 대한 소고

1990년 1월 4-5일 새해 POA가 천안에서 개최 되었다. 나는 일본으로 출발할 날짜가 다 되었으니 발표를 할 일은 이미 없지만 그래도 회사 전체 모임이니 같이 참가하였다. 아침에 전체 개강하는 것 보고 서울로 다시 올라왔다. 몇가지 더 준비할 것이 남아있어서였다. 롯데 백화점에 가서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이곳 저곳 볼일을 마친후 오후 다섯시쯤 다시 천안으로 출발 하였다. 그냥 집으로 귀가해도 되겠지만 출국을 섭섭해하는 직원들이 기다리겠다고 했으니 안갈 수가 없었다. 차를 운전하여 한남대교를 건너 경부고속도로로 들어서는데 폭설이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퇴근시간까지 겹친 고속도로는 금방 통행이 마비되다시피 하였다. 눈은 점점더 퍼붓고 직원들이 기다릴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급한데 이미 차는 기다시피 하였다...

장태산의 후트론 발매대회와 남한산성 통역 웍샵

대망의 1989년 후트론의 해가 밝았다. 장태산에서 열린 새해 첫 POA에서 향후 한국로슈를 이끌어갈 대망의 제품 항암제 '후트론'을 발매히였다.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던 전략 발매안이 경영층의 재가를 얻어 드디어 첫 선을 보인 것이다. 한국인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위암 대장암 직장암 유방암 영역에 있어서 획기적인 임상 효과를 나타낸 후트론은 암환자의 QOL(Quality of Life, 삶의 질)을 유의하게 향상시킬 것이었다. 내가 내건 슬로건은 'Longer Suvival(보다 긴 생존), Better QOL(보다나은 삶의 질)의 두가지였다. 암환자에게는 가장 절실한 절대 명제 이었다. 당시에는 항암요법의 기준이 '암세포의 크기를 얼마나 축소시키느냐'였지만 정작, 항암 요법으로 암세포가 축소 된..

산학병진 노선의 고달픈 생활

전에는 잘 인식하지 못했지만 그 무렵 나는 스스로가 목표지향적 동기 유발이 엄청 강한 성격이라는 것을 느꼈다. 무엇인가를 하지 않고 정체되어있는 느낌을 견딜 수 없었고 무엇인가를 성취해 내지 못하면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했다. 나는 영업 경력이 7년이라 길고 마케팅의 경력도 없이 비교적 늦게 그것도 한국 회사가 아닌 다국적 기업 제약마케팅의 Product Manager가 되었다. 외람되지만 성공의 길로 들어 설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지금 돌아보면 몇가지의 확실한 이유가 이었다. 첫째는, '간절한 목표'였다. 전술한 바 있지만 내가 PM을 시작하던 시기는 그야발로 '절박' 그 자체였다. 엄청난 실패를 뒤로하고 입사했기에 조직생활의 성패란 이제 내 인생 전체의 성패를 가름한다는 절벽 위의 면도날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