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1월 첫 POA는 수유리의 아카데미 하우스에서 열렸다. 나는 후트론 시간에 일본로슈의 학술1부 프로덕트 매니져 모리구치 토요히코상을 초대하였다. 작년에 이어 새롭게 업데이트된 후트론의 임상 결과와 PM의 현업에서 경험하고 있는 메디칼 마케팅 요점에 대하여 다시한번 정리하는 강의 시간을 가졌다. 물론 통역은 내가 맡았다. 이제 영업부에서 후트론 영업은 담당자의 역량을 평가하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되었다. 전국 대부분 대학병원의 항암화학요법 전문 교수들은 후트론 을 채택하였다. 임상에 없어서는 안될 약물로 인식되고 있었다.
4월에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일본암차료학회에 몇분의 교수들과 같이 참가하였다. 대부분의 국내 제약회사들은 해외 학회를 참가하면 강의실보다는 골프등 외부일정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나는 곧이 곧대로 학술 세션을 참가하시도록 교수들에게 권고 하였다. 외부 프로그램은 아예 계획하지도 않았다. 일본로슈 측과 사전 협의하여 핵심이 되는 후트론 강의 시간표를 미리 파악하고 동행한 교수들에 게 권고하여 같이 세션을 들었다. 너무 타이트한 진행으로 가끔 참가 선생님들의 불만도 있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원칙적인 학회 강의 참가를 고집하였다.
일본암치료학회후 귀국하였는데 5월에 일본로슈에서 메일이 왔다. 6월 2일부터 4일까지 2박 3일간 일본로슈의 영업부 매니져 미팅이 제주 하이야트호텔에서 개최되는데 가능하면 한국로슈의 Product Manager 들도 같이 참석하였으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우리측도 회의를 하여 같이 참가하기로 결정하였다. 다만 약국제품(OTC) PM들은 제외하고 처방제품(ETC)
PM들만 참가하기로 하였다. 나에게는 특별히 참가 기간중에 일본로슈의 Pharma Director 인 토리이 마사오 상무이사님과 면담을 하고자한다는 연락이었다. 다른사람들이야 단순히 매니져 미팅의 제품별 세션에 참가하여 일본의 마케팅 현황에 대해 배우면 되는 것이지만 나는 면담을 한다하니 긴장이 되었다. 아마 이번 기회가 나의 도일 프로그램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계기가 될것으로 보였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현재 제주 중문 하이야트 롯데 신라 호텔들이 즐비한 곳은 꼬불꼬불한 다랭이 논 언덕이었다. 개발의 붐을 타고 강산이 변한 중문리에서 옛 모습은 찿을길 없지만 변하지 않은것이 있다. 언제나 변함없이 밀려오는 중문해수욕장의 파도이다. 나는 하이야트 호텔에서 들리는 파도소리를 좋아한다. 6월 2일 아침 비행기 편으로 이헌구 부장님과 몇 동료 PM들이 같이 하이야트 호텔로 내려갔다. 일본로슈 영업부 지점장및 매니져들은 200명 정도 되었다. 종일 회의를 같이하며 일본로슈에 대해 많이 이해 할 수 있었다. 저녁에는 야외 풀 싸이드에서 만찬이 있다. 우리 한국 로슈 PM들은 여러 테이블에 나누어 앉아 서로 대화를 나누기로 하였으나 우리 직원들은 일어가 되지 않고 일본 직원들은 영어가 잘 통하지 않기때문에 대화는 불편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일본어 대화가 그다지 불편하지 않으니 많은 지점장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식사가 끝나고는 악단이 들어와 여흥 프로그램이 시작 되었다. 한참 후에 한국 로슈에서 대표가 나와 노래하라는 요청이 박수로 쏟아지니 별수 없이 내가 무대로 올라갔다. 나는 '나가사키와 쿄오모 아메닷타( 나가사키엔 오늘도 비가 내리네)'를 불렀다. 한국사람이 어찌 일본노래를 아나 하고 박수 갈채가 쏟아졌다. 여흥도 끝나고 호텔 로비의 커피샵에서 토리이 본부장님을 뵈었다. 첫 질문이 "일본어를 어느정도 하셨습니까?" 였다. "1년 반 정도 공부했습니다." 하니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며 놀라워 하셨다. "아니, 1년 반 공부하여 회화를 그렇게 한단 말입니까? 정말 대단하네요" 하고 몇번이나 칭찬을 하셨다.
토리이 본부장님은 영어가 유칭하신 분이니 영어로 물어 보시면 영어로 일본어로 말씀하시면 일본어로 대답하였다. 후트론의 한국 상황과 일본에서 배우고 싶은 학술 메디칼 마케팅에 대한 화제와 일본에 오면 생활 할 부분에 대한 대화가 많았다. 그 면접에서 본부장님은 최종 결정하시고 내년 1월7일부로 근부하는 것으로 준비 하라고 말씀 하셨다. 1월 7일은 일본의 모든 관공서및 회사가 신년 첫 업무를 시작하는 첫날이었다. 제주 미팅이 끝나고 올라와서 부터는 급여 액수, 직무 계약서, 주택과 생활비 지원 등 실제적인 사항들이 모두 메일로 오가며 준비 되었다.
7월 2일부터는 설악산에서 3/4분기 POA 미팅이 있었다. 설악산으로 가는 버스에서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를 들으며 하반기에 할 일들을 생각하였다. 세션이 끝난 후에는 만찬 회식과 2차 여흥을 호텔 디스코텍에서 가졌다. 숙소로 돌아와 동료들과 벤치에 앉아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같이 부르던 기억이 새롭다. 하반기는 언제나 처럼 각 대학 병원을 순회하면서 후트론 로세핀 등 내 담당제품의 업 데이트된 임상정보 설명회를 하느라 분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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