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썼던 내용과 중복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인생을 바꾼 Roche Korea로의 첫 출근과 초기 회사 생활에 대해 써 놓았던 글이 발견 되었기에 다시 전재한다. 무슨 목적으로 그때 이 글을 썼었는지는 잊어 버렸지만 그때의 생활을 보다 생생하게 나타내고 있기때문이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기라도 하려는 듯 벌써 한 여름에 들어선 아침 햇빛이 오늘 아침은 더욱 힘있게 내리 비췬다.
오늘은 1984년 7월 2일, 월요일 아침 일곱시, 나는 아끼는 포니2에 시동을 걸고 입을 굳게 다문채 출발하였다. 로슈가 위치한 충정로 종근당 빌딩까지는 40분 이상 걸릴 것이다. 잘해 낼 수 있을까. 수없이 되뇌이고 자문하며 내가 왜 못할 것인가 충분히 잘 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다짐했던 그 질문이 다시금 불안한듯 고개를 든다.
그 얼마나 견디기 어려웠던가. 암흑 속에서 나는 방향을 잃었었다. 헤쳐 나갈 빛이 보이지 않는 좌절의 마지막 늪에 묻혔었다. 캄캄한 그 기억 속으로 나는 다시금 휘감기고 만다. 그 상처는 언제까지고 아물 수 없는 아픔일 것이다. 눈에 보이도록 상사에게 몸을 꼬며 아부 경쟁하듯 몸을 던진 동기들 속에서 나는 실제로 구토 증세를 느낀적도 여러번이었다. 아침이면 욕설과 큰 소리 부라리는 눈빛의 상사들, 열심히 일하며 인정받고 진급하여 그런 상사의 자리에 가려는 인생의 길을 도저히 받아 들일 수가 없었다.
"영업부 경력이 너무 길어서 마케팅 Product Manager로서는 좀 어려울 것 같은데" 1984년 2월 김광호 선배의 소개로 처음 면접한 Joint Venture 쉐링 코리아에서의 평가를 듣고 힘없이 걸어 내려올때 눈앞에서 빛이 보이지 않았다. 이제 막 시작한 경영대학원 마케팅 공부는 중지하면 어떻겠냐는 그 회사 차동현 부사장의 제의는 나를 더욱 황당하게 하였다. 어떻게 시작한 공부인가. 취미가 아니라 어떻게든 이 기회를 손잡이 삼아 새 인생을 개척하려는 필사의 노력이다. 중단이란 생각 할 수도 없었다.
얼마 후 3월에는 이번에 새로 설립된 Roche Korea(한국 로슈) 에서 나온 Training Manager(연수 담당과장) 모집에 응모하였다. 잘 될것 같다던 종근당 친구의 정보에 희망을 가졌었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또 다시 실패하고 말았다. 역시 갈 길은 없었던가! 그런데 84년 5월 한국 로슈에서 또 다시 모집 광고가 나왔다. 이번엔 Product Manager(제품별 마케팅 경영자)이다. 영문 이력서를 타이핑 해주던 친구가 빈정댔다. "야 임마 아무리 예쁜 여자라도 한번 싫다면 그만인데 넌 자존심도 없냐. 떨어진 회사에 또 이력서를 내게?" 하지만 면접 통보를 받고 찾아간 집행 부사장 Dr. Kestermqnn의 말은 일말의 희망을 갖게 해주었다.
"Nice to meet you Mr.Soh. I preferred you last time already. I have no problem with you. Please see well Mr. Y.H. Lee." (소선생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지난번에 이미 나는 소선생을 더 좋다고 생각 했었소. 나는 괜찮으니 종근당측 이영호 사장을 잘 만나도록 하시오.) 두근거리는 마음을 눌러가며 이사장님 방으로 들어가 이사장님과 닥터 케스터만 두분 앞에 앉았다. 인생을 가름할 마지막 면접의 순간인 것이다.
"Would you detail about Lamoxatam? (라목사탐에 대해 디테일 해 보시겠어요?) 이영호 사장님이 영어로 물으셨다. 라목사탐이란 일동제약에서 발매된 3세대 Cefalosporin 항생제로서 동아제약의 같은 3세대인 에포세린의 경쟁품이었다. 내가 그래도 동아제약에서 항생제 우수자로 선발되어 해외 연수까지 한 사람이라 항생제에 대해서는 계열별과 세대별로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질문이 내가 강한 분야에서 아주 유리하게 시작된 것은 행운이었다. 물론 당시만해도 영어로 제품의 학문적 설명을 하기에 충분할 만큼 유창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이 약학의 전문용어이기에 라목사탐의 특성, 효능 효과, 장단점, 작용기전, 용법용량, 부작용등 열성을 다하여 침을 튀기듯이 설명하였다. 그 외 여러가지 질문이 있었는데 성심을 다해 막힘없이 답변하였다. 방을 나서며 느낌이 좋았다. 며칠후 다시 한번 더 면접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뭔가 잘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한국 로슈는 그때 스위스 로슈와 종근당의 50퍼센트 씩의 합자회사였기 때문에 두번째의 면접은 종근당 이종근 회장님과의 면접이었다. 12층 회장실에 들어서니 널찍한 책상을 마주하고 회장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래, 당신 언제 그만둘 건가" 거두절미하고 물어보시는 너무나 의외의 질문에 말문이 막혀 버렸다. 희망을 품고 면접하러 온 사람에게 그만둘 시기를 묻다니.. 그러난 순간 희망은 거의 확신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나를 뽑으려는가 보다!" 잠시 생각을 가다듬은 후 배에 힘을 주고 이번엔 내가 질문하였다.
"회장님 혹시 제 이력서 가지고 계십니까?" "응, 여기 있구먼" "잠시만 좀 보아 주시겠습니까?" "음, 왔다갔다하는 성격은 아니구만. 내가 아나. 밑에서 다 당신을 뽑겠다고 하니까 입사하겠지만 자네 회사로 알고 일을 하라고. 왔다갔다 하는거 거 할일 아니야. 로슈는 이제 자네들이 키워갈 회사라고." "명심하겠습니다. 한가지만은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제가 완전히 다른 길에 가기 위하여 업계를 떠나지 않는한 월급쟁이로서의 직장은 로슈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그래야지"하시면 철제 캐비넷 속에서 조그마한 상자를 하나 꺼내셨다. "이거나 하나 갖다 써" 더블 침대 싸이즈의 대형 타올이었다. "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어느덧 아현 고가도로 밑으로 갈색의 종근당 빌딩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이 이제부터 내 인생의 새로운 터전, 모든 아픔을 씻고 도전해 가야할 서른 네살의 새 무대이다. 천천희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에 오르니 아까부터의 불안감은 말끔히 가시고 두근거리는 박동이 가슴에 벅차게 고동쳐 오르고 있었다.
11층 로슈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모든 것이 새로워 보였다. 어느 곳엔가 감춰져있던 나의 호전적 성향, 새로움에 임할 때면 드러나는 공격적 성향이 어느새 고개를 든다. "서투른 외국 합작회사 문화. 이곳 분위기에 조심해서 신중히 적응하자." 고 스스로 다짐하며 회의실에서 대기하였다. 오늘 같이 입사한 사람이 꽤 있었다. 약국 영업부의 손현성 부장, 병원 영업부의 이호재 부장, 재무부의 박계신 주임, 안성공장의 서정대 생산 기획과장, 총무부의 임기원 주임, 나 외의 또한 사람 PM 방종태 주임, 시간이 되자 모두 같이 인사를 나누었다. 직원 모두해도 아직 몇사람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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