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가족이 일본에서 무사 귀국하고 두달도 안된 1945년 8월 15일에 해방이 되었다. 그야말로 전쟁 말기 그 혼란의 와중에서 일본으로부터 전 가족이 무사히 귀국하였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강한 신념과 무도로 다져진 체력 덕분이었으며 작은 체구의 어머니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차돌과도 같은 강인한 성품 덕일 것이다. 특히 어머니의 성품은 전쟁 아니라 그보다 더한 극한 상황도 이겨낼 수 있는 내공으로 뭉쳐 있었다. 지식은 약하다해도 세상 살이에 필요한 지혜와 판단력과 어떤 어려움도 견뎌내는 소위 깡다구는 지식인인 아버지 보다도 오히려 더 정확하고 강했다.
아뭏든 그렇게 다시 정착한 고향에서 맞은 해방은 또다른 혼란의 연속이었다. 일본의 도시 생활 패턴이 완전히 달라진것은 말할 것도 없고 토지 개혁으로 집안의 소유 토지도 많이 줄어들게 되었다. 그 혼란의 몇년이 지난후 1950년 6월 25일 높아가던 38선의 긴장을 일시에 무너뜨리고 한국전쟁이 터졌다. 소련제 최신 탱크와 야포로 무장한 북한군이 새벽을 기해 일시에 남한을 덮친것이다. 그들은 오랫동안 남한을 공산 적화하기 위하여 전쟁을 준비해 왔는데 혼란의 남한에는 아무런 준비도 없었으니 불과 사흘만에 서울은 함락 되고 말았다.
초기에는 전북 남원까지는 전쟁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았으나 두달도 안되는 동안에 거기까지도 북한군이 밀어닥쳐 온동네에 인민군이 진주하였다. 우리집은 동네에서 큰 대가이고 위치도 마을의 한가운데 있었으니 우리집이 자연히 인민군의 사령부가 되었다. 소를 잡아라 돼지를 잡아라 해서 그들의 식사를 조달하고 때로는 다른곳에서도 식량을 가져와 가마솟을 걸고 밥을 하도록 하였다.
그렇게 전쟁이 진행 되는가 하였는데 그해 9월 중순에 들어서면서 부터는 언제인지 인민군 정규군의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실인즉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 작전으로 북쪽에서 내려오는 보급로가 차단되니 정규 인민군은 산악을 타고 철수 하기에 바빴던것이다.
9월 28일 서울이 다시 수복되고 미군과 UN 연합군이 북진 공격을 하기 시작하니 미쳐 철 수 하지 못한 인민군과 남쪽에서 준동하던 남로당 요원들은 철수를 포기하고 지리산 골짜기로 숨어들어 빨치산 유격대로 변하였다.
고향 남원은 바로 지리산 아래 고장이니 빨치산의 근거지를 이루는 곳이었다. 일대의 여러 아저씨들도 포섭 되어 빨치산 유격대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큰 이모부 즉 아버지의 손위 동서도 빨치산이 되셨다. 일단 빨치산에 들어가면 전력을 보강하기 위하여 다른사람들을 포섭해 끌어 들이라는 명령을 받게 되는데 아버지가 그 포섭 대상으로 선정 되셨나 보다, 이모부는 밤이면 어디선가 나타나 아버지를 설득하기 시작하셨다. 아버지가 빨치산이 되기를 거절하고 응하지 않으시니 나중에는 협박이 되었다. 빨치산이 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강한 아버지인들 왜 두렵지 않았겠는가. 노 부모를 모시고 많은 가족을 거느린 가장으로서 가족이 피해를 입을까 많이 무서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두려움도 위협도 아버지의 자유민주주의 신념을 꺾지는 못하였다. 손위 동서의 그런 끈질긴 회유와 협박을 조용히 거절하며 듣던 아버지는 끝내 불같이 화를 내시고 형님 그런 소리 하려거든 내집에 발을 끊으시오 하고 고함을 질렀던 것이다.
이모부는 아버지를 설득하는것을 포기하셨는지 그후에는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그 무렵 부터는 매일 국군 토벌대와 인민군 빨치산 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빨치산 사령관 이현상도 그무렵에 토벌대에 의해 사살 되었다. 지리산 지역에서의 그 빨치산 잔당 소탕 전쟁은 그 몇년후 내가 태어나서 어린시절까지도 계속 되었다. 밤이면 느닷없는 총소리가 난사되고 조명탄이 하늘높이 쏘아 올려지는 것을 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여하간 빨치산이 완전히 소탕된후 큰 이모부의 행방은 사라지고 말았다. 아마 어떤 전투에선가 무참히 살해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우리집안의 자유민주주의의 에 대한 신념은 그렇게 시련 속에서 다져진 것이다. 지금도 공산주의 사회주의적인 모든 정치 패거리들을 증오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헌법 정통성을 지켜야 한다는 나의 신념은 어쩌다 생긴것이 아니라 선대로부터 목숨을 걸고 대를 물려 형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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