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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무기 개발사 및 현재 핵 보유량

Billy Soh 雲 響 2018. 1. 16. 23:16
북한은 이미 1950년대부터 김일성의 지도하에 핵개발을 최우선 국가 전략으로 채택하고 구 동독과 구 소련의 천재 핵과학자들을 대거 영입하여 중단없는 핵개발에 집중해 왔다. 또한 극비리에 해저 핵시설을 건설하였으며, 현재 핵개발 핵심고급인력 200명을 포함, 전문 인력 3,000명, 기술인력 6,000명 등 총 9천여 명의 핵과학 인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북한의 우라늄 매장량은 2600만톤 정도로 중국대륙의 7만톤에 비하여 얼마나 대량의 우라늄이 매장되어 있는지 쉽게 비교 할 수 있다. 그들은 현재 해저에 설치한 비밀 핵시설에서 우라늄을 농축하고 있으며, 극비중의 극비 국가기밀이기 때문에 해저 핵시설 활동으로 현재 어느 정도의 고농축 우라늄을 획득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정보가 없다.

한편, 2006년 10월 11일, 고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말에 의하면 북한은 핵무기를 쓰고 남을 만큼 만들어 두었으며 1993년 핵사찰 문제가 나오기 전 김정일이 핵무기 제조에 성공했다고 얘기했다는 것이다. 김정일이 핵무기 제조를 지휘한 박송봉 당시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에 대한 표창문제를 고 황비서에게 상의했다는것이다.


1. 북한의 핵개발은 역사가 매우 길고, 구소련과 중국으로부터도 적지 않은 지원을 받았으며, 이들 국가의 핵협력 관계는 비공식적으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1955년 핵물리연구소를 창설한 북한은 1956년 소련과 ‘핵에너지 평화 이용 협력협정’을 맺었다. 같은 해 북한은 핵물리학자 30명을 소련의 ‘드브나(Dubna) 핵 연구소’에 파견해 연수를 받게 했다. 모스크바 북쪽으로 110㎞ 떨어진 드브나 시에 세워진 이 과학기지에는 소련 최대 핵실험실이 있었다. 1964년 중국 최초의 핵실험을 성공시켜 ‘중국 핵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핵물리학자 왕감창 등 중국의 주요 핵과학자들도 이곳에서 길러졌다.

연구소의 설립 이후 ​1956년부터 1990년 북한과 러시아의 과학연구 협력이 중단될 때까지 30여년 동안 모두 250여명의 북한 과학자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이후 1960년대부터 북한은 핵물리학 연구진을 자체적으로 길러냈다. 1962년 평북 영변에 원자력연구소를 세운 데 이어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업대학에 핵물리학원을 설립해 핵과학자와 기술자를 양성했다. 1965년에는 영변에 소련의 도움으로 IRT-2000 연구용 핵반응로를 건설했다.

이때부터 북한의 핵연구는 일정한 규모를 갖추게 된다. 1979년에는 자체 기술로 핵반응로 건설에 착수해 1986년 정식 운전을 시작했다. 1985년에는 영변 핵시설에 사용한 핵 연료봉을 써서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실험실 건설에 착수했다. 북한은 1983년부터 1993년까지 영변 핵시설 내부의 모래밭에서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고폭 실험을 130여 차례 실시했다.

​2. 북한의 초기 핵 연구는 도상록, 한인석, 이승기 등 월북 과학자들이 주도했다. 일본 쿄토대학에서 이론물리학을 전공한 도상록(1903~1990)은 해방 후 서울대 교수를 지내다 1946년 5월 월북, 김일성종합대학 물리학과 주임교수를 맡았다.

한인석은 해방 후 연세대학 교수로 재직하다 월북한 뒤 김일성종합대학 고급 교수를 맡았으며, 모스크바에서 장기간 첨단 물리학을 배우고 돌아와 1960년대 대량의 핵물리학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전남 담양 출신인 이승기는 1939년 쿄토대학에서 응용화학으로 공학박사 학위를 받고 서울대 공과대학장으로 재직 중 6.25 때 월북했다. 1940년대 초반 석탄으로부터 합성섬유 1호를 개발한 그는 1961년 비날론(혹은 비닐론) 생산을 주도했고 영변원자력연구소장(1967)과 과학원 함흥분원장(1987)을 지내는 등 북한 과학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핵물리학 분야의 핵심 교육기관은 김일성종합대학과 평성이과대학이다. 평성이과대학은 핵물리학, 화학, 수학 등 다섯 개 학과로만 구성된 특수대학이다. 이외에도 평양고등물리학교, 김일성고등물리학교 등도 물리학 연구 인력을 배출하는 주요 교육기관이다.

​3.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북한이 정말 핵무기 기술을 보유하고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핵무기 기술은 첨단기술이 아니라 50년대 이미 모든 원리가 밝혀진 기술이다. 원자로 기술과 핵무기 기술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동일한 분열 핵물질을 사용해 원자로는 3년 정도의 장기간에 걸쳐 핵분열이 일어나도록 작동시키는 반면, 핵무기는 짧은 시간에 핵분열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분열시간의 조절기술에 불과한 것이다.

과거 미국은 맨해튼 프로젝트에 의한 핵무기 개발 시 설계된 모형에 대한 핵계산을 현대와 같은 대용량의 슈퍼컴퓨터로 계산하지 않고 수기식 계산으로 개략적인 계산을 하여 설계했으나 특이한 문제점은 없었다. 북한도 이미 1980년대부터 자체 기술로 영변의 5MWe 원자로를 설계했다. 그러므로 어떠한 모형의 핵물질에 대해서도 정확히 묘사, 계산 가능한 핵계산 코드를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기술상의 문제점은 없다고 봐야 한다.

여러 가지 다른 설들이 있을 수 있으나, 컴퓨터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 핵실험의 필요성은 과거에 비해 상당부분 감소됐으며, 컴퓨터 시뮬레이션만을 가지고도 핵무기를 유지 관리할 수 있다는 점에 적지 않은 핵과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우리 국가 기관인 통일연구원은 2017년 말 현재 북한 플루토늄 핵탄두와 우라늄 핵탄두의 개수가 50개 이상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는 국방대학교 문장렬 교수의 분석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 이미 2014년 통일연구원은 북한의 핵능력이 갈수록 양적으로 팽창되고 질적으로 고도화되고 있다고 밝힌바 있다.

통일 연구원의 ​보고서서에 의하면 플루토늄을 이용한 북한의 핵무기의 숫자는 6~7개 정도일 것으로 추정되며, 영변 원자로가 정상적으로 가동된다면 매년 2~3개씩 증가하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한 고농축 우라늄을 이용하여 매년 추가로 최소 6개의 핵탄두를 제조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또한 최근 동향을 중심으로 살펴본 결과 북한은 핵프로그램의 고도화-정밀화-다양화를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북한의 핵보유 능력은 이미 우리 국가 기관에서 인정하고 있으며 향후 지속적으로 양과 질적인 면에서 모두 고도 정밀 다양화 되어 나갈 것이라는것을 의심하는 학자들은 없다. 과거 반세기에 걸쳐 북한이 핵개발에 집중해 오는 동안 미국과 일본 한국을 비롯한 자유 진영 뿐 아니라 러시아와 중국을 포함한 주변국들은 셀수도 없이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표면적인 외교 회담을 거듭하여 왔지만 반세기가 지난 오늘에 와서 되돌아보건대 하등의 성과도 내지 못했으며 북한의 핵 개발 시간을 벌기위한 양동 전략에 당해온 세월이라해도 그것은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다.


표면으로는 대화하면서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에 더욱 열을 올려 이제 완성 단계에 다다른 것이다. 이 얼마나 한심하고 어리석은 자유 진영의 대응 전략이었으랴. 너무나도 절망스러워 유구무언일 따름이다. 북한의 핵 능력이 완성되고 그 핵무기를 실어 미 본토까지 날릴 수있는

ICBM(대륙간 탄도 미사일)이 거의 완성된것은 부인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작금의 눈앞에 떠오른 현실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의 문재인 정권 주도자들은 꿈을 꾸듯 끝도 없는 착각 속에서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도록 대화와 외교로 해결해야 한다고 되뇌고 있으니 그들의 사고 구조는 시대착오 정도가 아니라 집단 몽유병에 빠진 환자군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라도 꿈을 깨어 냉혹한 힘의 논리를 깨닫고 국제사회와 유엔 안보리의 압박 정책에 보다 선도적으로 대응해 나가도 때를 놓쳐버린 현실인 것이다.


하물며, 대부분 국민의 지성을 도외시하고 일부 현실을 모르는 취약계층 국민을 선동하여 낭만적 민족주의로 유도하는 행태에서는 결단코 벗어나야 한다. 여러 자료를 참고하고 본좌의 생각을 정리하여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불만이 많은 일부 젊은 계층과 국가의 미래보다는 집단 이기주의에 보다 더 함몰된 노동계등 일부계층을 달콤한 이상주의로 유도 확대하여 지지계층화하고 국가전략을 그르치며 맹방국들과의 관계를 소원하게하는 정책 판단을 부디 중단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다름 아니다.   <운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