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선 작시,
임준희 작곡,
Ten.이영화 노래
마른 갈꽃 흔들며 겨울이 우는 소리
홀로 찾아와
듣는 이 누구인가
푸르게 흐르는 저 강물처럼
세월도 그렇듯 흘러갔거니
쓰러진 물풀 속에 길 잃은 사랑
하얗게 언채로 갇혀있구나
그 어느 하루
떠나지 못 할 나룻배엔
어느 나그네의 부서진 마음인가
소리없이 눈은 내려 쌓이는데
언 하늘
마른 가슴 휘돌아
또 다시 떠나는 바람의 노래
나그네 홀로
홀로 서서 듣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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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2017년 정유년은 1597년 정유재란이 발생한지 일곱번째 육십갑자, 즉, 420주년이 되는 해이다. 조선이 건국된후 안정기가 지나고 200년후인 1592년 임진년에 30만 대군으로 침략해온 왜군에 의해 푸르렀던 강토는 잿더미로 화하고 말았다. 그 후 명나라와 일본간에 지루한 화전이 논의 되었으나 일본은 이 협의에 만족하지 않고 1597년 정유년에 대병을 동원하여 다시 강토를 침입하니 그 전쟁이 정유재란인 것이다.
이 양 전쟁이 시작되기전 선조는 1590년 3월 서인 황윤길을 정사로 동인 김성일을 부사로 통신사를 파견하여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인물됨을 판단하고 전쟁의 가능성을 파악케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약 1년에 걸친 여정끝에 돌아와 전혀 반대의 견해를 보고하였다. 정사 황윤길은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담이 크고 지혜로운자로 보아 장차 조선을 침략할 것이라고 보고한 반면 부사 김성일은 그가 한낱 용렬하며 전쟁은 없을것이라고 단언하였다. 그들은 각자 서인과 동인 붕당의 정략에 따라 국난에 대하여도 당쟁 보고를 하였던 것이다.
드디어 전쟁이 터졌으나 왕인 선조는 판단이 흐리고 비굴했으며 조선군은 괴멸되어 남아있는 것이라고 간신들의 모함속에 투옥 되었었던 이순신의 배 12척이 전부였다. 만일 이순신이 갖은 고심과 인내와 충정을 다해 수군을 일부나마 재 정비하고 목숨을 던져 노량해전에서 승기를 잡지 못하였다면 조선의 강토는 헤어나기 어려운 잿더미 속에 다시 묻혀 버렸을 것이다.
420년 전의 정유재란 당시와 오늘날의 상황은 어찌 그리 변함 없는가. 일본은 소녀상 등을 들어 외교적 압박을 조여오고, 중국은 사드 배치 보복조치로 경제와 안보를 압박하는데, 북한의 적들은 핵무기 개발을 사실상 완료하고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며 위협하고 있다. 조국이 사면초가에 놓인 이때에 내부의 위정자들은 국난의 안보는 팽개처놓고 서로 정권을 잡고 사욕을 챙기기 위하여 이를 갈며 끝도없는 진흙탕 아귀다툼을 이어가고있다.
우리민족의 분열 유전인자는 기필 치유될 수 없는 것일까. 우리에겐 이제 정녕 이순신같은 지도자는 더이상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멸사애국의 지사는 더이상 이 나라에 주어지지 않는 것일까. 참으로 아무 힘도없는 필부의 풀수 없는 우국애심에 가슴만이 옥죄어 아파온다 .
<운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