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땅끝에 모여사는 나무들은 밤이면 걸어다닌다. 설레이는 별들 물어린 눈을 뜨면 누가 먼길 떠나는 것일까, 때 이르게 어리는 달무리 이웃들이 燈(등)내달아 길 밝히고 나무들도 컴컴한 숲을 따라 걷는다. 아무도 잠깨어 슬퍼하지 않는 밤 반짝이는 햇빛 푸른 하늘 사람이 그리운 나무들은 함부로 노래하고 운다. 은빛 빛나는 톱날 같은 바람이 우루루 여기저기 몰려다니다 제 살을 베어내 머얼리 날려보내며 나무 밑을 서성일 때 수액을 떨구는 은박의 그림자와 긴 팔을 가진 나무가 「쉬잇 나무꾼이다」 속삭이며 어린 잎을 잠재운다. 가만히 숲을 흐르는 나무들의 귀엣말 은밀하게 퍼져가는 전갈을 차고 슬픈 시간에 그루터기에 쌓여 가는 달빛이 듣고 있다. 「곧 무서리가 내리겠어」 대단한 걱정거리를 두런대면서
2 바람마다 별들이 떨고 있다. 묵묵히 자라나는 내 이웃의 나무 밤이면 잎을 틔우는 나무여. 나도 수없는 푸른 잎을 매단다. 저물도록 땅을 파고 아득하게 흐르던 순한 강물을 당겨 머언 땅끝까지 캄캄히 잠든 뿌리가 깨어나고 나는 함부로 노래하고 운다. 알고 있을까, 나에게는 누울 곳이 없어 맑은 날에 부끄럽게 달을 만나고 아직 갚을 빚 많은 내가 아무렇지 않게 밤마다 손질하는 것이 그저 바람이며, 제 살을 베어내 머얼리 날려보내는 것을 글세, 알고 있을까 사람들은. 봉우리와 봉우리를 건너뛰는 마른번개와 그 一瞬(일순)의 광채 뒤에 숨은 기인 고뇌의 울음이 최후의 歎辭(탄사)처럼 천천히 정수리로 떨어져 내림을. 나에겐 듣는 귀가 없어 저 기막힌 因果(인과)를 짐작하고 운다. 새벽에 꽃 한송이 가슴에 달고 밤새 자라 있는 나무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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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논객 전원책 변호사가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시인이었다는 것을 얼마전 우연히 듣게 되었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자유민주주의의 정체성을 변호해 가는 그의 논조에 오래전부터 많은 공감을 가지고 들어왔지만 이제 그의 시를 접하고보니 그의 시어들이 알수 없는 공감으로 다시금 다가옴을 느낀다.
나무가 나누는 겸허한 이야기와 고독속의 울음을 들으며 한없는 삶의 쓸쓸함을 이밤 가슴으로 만난다. <운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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