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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공의 횃불- 대한민국 10대 군가

Billy Soh 雲 響 2013. 6. 23. 00:43

 

출처  http://cafe.daum.net/sjs986/Rois/48

 

멸공의 횃불

1. 아름다운 이 강산을 지키는 우리

                                                 사나이 기백으로 오늘을 산다.  

포탄의 불바다를 무릅쓰면서

고향땅 부모형제 평화를 위해

전우여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멸공의 횃불아래 목숨을 건다. 

 

2. 조국의 푸른바다 지키는

우리 젊음의 정열 바쳐 오늘을 산다.

함포의 벼락불을 쏘아붙이며

겨레의 생명선에 내일을 걸고

전우여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멸공의 횃불아래 목숨을 건다.

 

3. 자유의 푸른하늘 지키는

우리 충정과 투지로서 오늘을 산다.

번개불 은빛날개 구름을 뚫고

찬란한 사명감에 내일을 편다.

전우여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멸공의 횃불아래 목숨을 건다.

 

4. 조국의 빛난 얼을 지키는

우리 자랑과 보람으로 오늘을 산다.

새역사 창조하는 번영의

이땅 지키고 싸워이겨 잘 살아가자.

전우여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멸공의 횃불아래 목숨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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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 63주년이 돌아왔다. 전쟁의 포성이 멈춘지 반세기를 훨신 넘어가고 있지만 한국전쟁은 아직 끝난 전쟁이 아니다. 잠시 격열한 전면전만 휴전되고 있을뿐 155마일 휴전선에서는 치열한 남북간의 대치가 계속되고 있을뿐아니라 서해해전 연평해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등 끊임 없는 국지전이 발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 대한민국은 그간 경제 성장의 열매를 먹고 얼마나 달콤한 안보의 잠속에 떨어져 있었던 것일까.  자라나는 세대에게 비참했던 한국 전쟁의 참상과 역사를 가르치기는 커녕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조차 가르치지 않고 있으니 이런 통탄할 일이 또 있을까. 보도에 따르면 현재 청소년들은 6.25 한국전쟁이 남한의 북한 침략으로 인해 터졌다고 알고있는 학생도 상당수 있다는 것이니 이런 교육현실이 세상에 또 있을까.

 

학교가 가르치지 못한다면 가정에서라도 가르쳐야 한다. 유태인들의 탈무드 교육처럼 말이다. 6.25 한국전쟁은 1951년 6월 25일 일요일 04:00시 남북한의 경계이던 위도 38도선 전 전선에 걸쳐 북한의 맹열한 기습 남침에 의해 발발한 전쟁이다. 북한은 당시로서는 천하무적이던 소련제 탱크를 앞세워 질풍과 같이 신속하게 밀고 내려 왔으며 불과 3일만인 6월 28일에 서울이 함락 되어 버리고 말았다. 당시 우리 국군은 얼마나 보잘것 없는 전투력 이었는지 다시한번 비교해 보자

 

1951년 6월 25일 현재 남북한 전력 비교

   병력 탱크     함정  항공기 
 남한

 105,752

 0

 91문  71척  2대
 북한

      193,380

242

 728문  110척  211대

 

 

위와 같으니 어디 전쟁이 되겠는가. 거기에다 숫자뿐만 아니라 병기의 수준과 성능을 비교하면 더더욱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우리의 병기들은 낡은 옛날 것이었으며 북한의 병기는 당시의 최신 소련제 무기였다. 그러니 파죽지세의 말그대로 그들은 밀고 내려왔던 것이다. 불과 한달여 만인 7월말까지 대구와 부산을 제외한 남한 거의 전역이 인민군의 수중에 떨어지고 말았다. 전국의 공산화 적화통일 직전이었다. 다행히 미군의 공중전 장악과 폭격에 힘입어 최후의 보루 낙동강 전선을 사수하였으며 반격의 기회를 잡아 나가기 시작하였다. 거기에 9월 15일에는 맥아더 사령관의 지휘에 의한 미국의 인천상륙 작전이 성공함으로서 북진의 진격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거의 압록강에 다달아 민주 통일을 눈앞에 두었을때 생각지도 않았던 중공군의 참전에의해 국군과 유엔군은 다시 남으로 밀리기 시작하여 통한의 1.4후퇴를 경험해야했다. 그후 휴전협정이 시작되고 1951년 7월 27일 조인이 되기까지 3년간의 전쟁은 그야말로 한민족인 경험한 수많은 전쟁중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었던 대규모의 희생과 참상이었다. 남북 양측의 피해가 얼마나 컷었는지 다시 정리해 보자.

 

한국전쟁 인명희생

 남한과 유엔군측  한국군  유엔군  미군(유엔군에 포함)  합계
 전사 137,900   57,690 (36,940)  195,570
 부상 450,742  104,280  (92,134)  555,022
 실종  24,495  4,116  (3,737)  28,611
 포로  8,343  5,815  (4,439) 14,158 

 

북한과 중공군

북한군       전사 52만

중공군        전사 90만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희생이었다.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냇물을 이뤄 흘렀다는 말이 그다지 과장된 표현은 아닐 것이다. 불과 1세기도 지나지 않은 이런 비극의 전쟁을 가르치지도 않고 어찌 미래의 비극을 막을 수 있다고 장담 하겠는가.  우리가 이러한 참혹한 역사의 교훈을 가르쳐야할 의무를 게을리한 조상이라는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남겨서는 안될 것이다.

 

위의 군가 '멸공의 횃불'은 나와도 인연이 깊은 대한 국군의 명군가이다. 나는 24세에 신임 소위가 되어 육군 보병학교 초군반 교육과정을 마치고 대한민국의 선임 사단, 평양 선봉입성의 전통에 빛나는 1사단의 소대장이 되었다. 그해에 사단 군가 측정 대회에 내가 우리 소대를 데리고 출전하여 1등상을 받고 소대 전원이 포상휴가를 받은 곡이 바로 이곡이다. 국군 전통의 군가 반동을 보다 더 절도있게 개선하고 안무를 창안하여 더한 훈련이 부각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금년에도 6.25를 앞두고 이곡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희미해져가는 안보 교육과 지독한 공산주의와 이북의 잔인한 김일성주의 주체사상에 대한 대결 의식이 희미해져감을 통탄해서이다. 통일이 중요한것이 아니다. 어떤 통일이냐가 중요한 것이다. 이북이 주장하는 "전 인민 결사옹위하여 적화통일의 그날까지"가 되어서야 그 한을 어찌할 것인가. 어찌할 것인가.. 두눈을 부릅뜨고 가르치며 우리 강토 지켜내야 하지 않겠는가.                                

<운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