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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과거의 쓰라린 역사를 소홀히 하고 그 교훈으로 부터 배우기를 게을리 하는 민족과 국가는 그 쓰라린 댓가를 다시 받을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역사의 철칙이다. 역사적 사건들은 언제나 우발적인 것처럼 보이나 실은 피할 수 없는 필연적 배경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보통이다. 태종의 1,2차 왕자의 난이나, 세조찬탈, 인조반정, 을미사변, 동학혁명, 을사늑약, 한일합방, 또는 해방후 혼란 속에서의 정부수립, 한국전쟁, 5.16 군사혁명, 혹은 현대의 12.12 쿠데타에 이르기까지 그 발발은 역사적 필연성 속에서 일어났다. 어느 사건 하나도 오다가다 우연히 일어난 것은 없다.
그러나 다만, 그 필연적 사태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권을 잡았던 권력가들이 그 후의 나라를 어떤 방향으로 끌어 갔느냐에 따라서 국운의 번영과 쇠퇴가 갈려 나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주도적 권력가가 나라를 위한 사명감과 확신으로 한몸을 바치겠다는 소신의 삶을 살았다면 국운이 흥성했으며, 권력의 과실을 개인과 가문과 파벌의 번영을 위해 사사로이 유용한경우는 수많은 문제속에서 쇠락의 길을 것었던 것이다.
두만강 하류의 녹둔도라는 섬은 조선 태조가 북진개척을 한 이래 고유한 우리 영토였다. 1587년에는 이순신이 파견되어 여진족의 침략을 격퇴하여 지켜낸 우리 땅이다. 32평방km에 이르는 이 섬이 1860년(철종11년) 청나라와 러시아의 북경조약 체결로 러시아 영토가 되고 말았다. 1889년(고종26년)에야 비로소 알고 청나라에 항의, 반환을 요구하였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이 섬에는 1990년까지 100여호에 이르는 민가가 있어 벼, 조, 옥수수, 보리 등이 재배되었고 연어와 붕어를 비롯한 민물고기가 많이 잡혔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지금은 들어갈 수도 없는 남의 땅이 되고 말았다.
고구려와 발해는 한국 역사임이 명백하다. 중국은 이른바 동북공정을 통해 만주에서 용약하던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자기네 역사에 편입시키는데 열중하면서 이를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근래의 보도에 의하면 머지않아 고조선까지도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는 내용의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발간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수천 년 전 역사를 침탈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전문가들의 연구에 의하면, 북한 지역에 만일의 사태가 야기되면 정치적인 영향력을 주장할 수 있는 역사의 징검다리를 깔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압록강 하류의 섬인 위화도와 황금평 섬을 빌려 공장과 물류시설을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중국 측은 이 두 섬을 50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수억 위안을 주고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은 이 섬들의 사용권한을 100년으로 하는 교섭을 북한 측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련의 상황들은 중국이 동북공정의 이론적인 단계를 지나 동북경영의 단계로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금할 수 없다.
제주도 서귀포시 마라도에서 서남쪽으로 149km해역에 이어도(파랑도라고도 한다)가 있다. 물밑 4.6m되는 수중 암초로 우리나라 해저광구 제4광구에 속하는 한국 대륙붕이다. 중국의 유인도인 위산다오에서는 우리보다 2배가 먼 287km나 되어 국제 해양법상으로 당연히 우리 영해에 속하는 것이다. 2003년 6월 우리 정부에서 이어도 해양과학기지를 설치하였다. 중국은 부당하게도 이어도의 영유권을 넘보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항공기와 군함의 순시지역에 포함시킨다는 것이다. 이것이 서쪽 사정이다.
동쪽에는 말할 것도 없이 독도문제가 있다. 독도는 신라 때부터 우리 영토이다. 일본은 17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기까지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인정해 왔었다. 1696년 타케시마 일건, 1870년 조선국 교제시말 내탐서, 1877년 태정관 문서 등을 통해 우리 영토로 인정한 것이다. 대한제국은 1900년에 칙령 제41호를 공포하여 독도를 울릉도 관할 구역으로 명기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1905년 시네마현 고시를 통해 독도를 무주지, 무명 명분으로 일본 영토에 편입하였다. 1905년은 우리의 외교권을 빼앗은 을사늑약이 맺어진 해이다. 일본은 초 중 고등학교의 역사교과서에 ‘타케시마는 일본 영토’라고 기록하고 학생들에게 철저히 영토의식을 심고 있다. 앞으로 20년 후면 그 아이들이 일본사회를 움직이는 주역이 될 것이다. 그 중에 정치가 국회의원 장관이 나올 것이고, 군인 장군이 나올 것이다. 독도가 자기네 것이라고 뇌리에 부각된 세대가 일본의 주역이 되는 때가 다가 온다는 것을 의식해야 할 것이다.
지난 19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너무나 무기력하고 무식하였다. 세계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인식하고 있는 한사람의 지도자도 없었다. 대한 제국이 8,800 명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을때 일본은 13개 사단 13만명과 4척의 군함, 11척의 순양함을 가지고 있었다. 무슨 수로 우리가 일본의 강점 협박을 피할 수 있었겠는가. 고종 횡제가 국가를 중립화하여 이이제이 해보려 했을때는 이미 때가 늦어버린 것이었다.
역사는 기필코 또다시 돌아온다. 러시아, 중국, 일본, 미국은 전 세기와 다름없이 우리를 둘러싼 강대 세력이다. 세계 정세에 어듭고 외세에 의존한 대가로 걸었던 망국의 운명을 또다시 자초할 것인가. 오늘의 젊은 세대에게 처절하고 치욕스러웠던 역사를 가감 없이 전해주고, 앞날을 대비하는 경각심을 촉구해 줄 책임이 기성세대에 있다. 언제 어느때 약육강식의 논리가 횡행 하더라도 자국을 지킬수 있는 물리적 국력을 강화하고 정신적 상무 기상을 진작 시키지 않는한 언제고 또다시 당핳할 수 있다는 것을 뼈져리게 가르쳐 나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세계적으로 얼어붙은 경제 위기하에서 한국경제는 그래도 가장 희망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한민족 역사상 경험해 보지 못했던 풍요와 번영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머지않아 박근혜 새정부가 출범한다. 모든 국민은 하나로 뭉쳐 화합과 절제의 기풍을 조성하고 강국의 정책을 줄기차게 수행해 나가야 한다.
다각 외교를 강화해야 한다.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으로 군사력을 약화 시켜서는 결단코 안된다. 젊은 세대의 정신 전력을 특별히 강하게 육성해 나가야 한다. 호강에 받쳐 흐물거리고 풍요를 누리는것만 알며 난관을 돌파할 어떤 투지력의 교육도 받지 못한 젊은 세대라면 그들이 주도해야할 미래의 국가가 도래했을때 어찌 위기를 다시 밟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가 있겠는가. 그것이 우리가 역사에서 배우지 않으면 안될 뼈아픈 교훈인 것이다. <운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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