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illy의 좋아하는 詩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Billy Soh 雲 響 2012. 11. 14. 22:45

 

 

 

출처  http://blog.daum.net/suknyangdari/26648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 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탸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출처 http://cafe.daum.net/boreesu/HVfS/53

 

 

 

백석 (1912 7 1 - 1995 1)

 

한의 소설가 시인. 평북 정주 출생. 남북한이 분단 되기전, 일제 강점기하에서 백석은 한민족의 친근한 공동체

인식을 잘 표현하던 시인이었다. 식민지 시대를 살던 민중의 삶을 형상화 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남북한이 갈라진 후 그는 북한에서도 탄압을 받아 작품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남한에서는 북한 시인이라는 이유로 출판이 금지된 분단 희생의 운명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30년대. 젊은 시절 준수한 모습의 백석이 사랑했던 나타샤. 그녀는 평생모은 천억원대 전재산이었던 성북동의 고급 요정 대원각을 법정 스님에게 시주해 길상사로 만들게한 김영한씨라 한다. 길상사가 되기전 대원각은 나자신 외국에서 귀한 손님이 오시면 한국의 전통 맛과 멋을 보여 드리기 위해 찾곤했던 요정이다. 그곳이 불교에 기증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무언지 아쉽고 서운한 생각이 들었던 것은 아무래도 내가 속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같은 속물 기자가 또 있었던지 "그런 거액 재산을 내놓고 후회 되시지 않나요?" 하고 물으니 "천억원이 뭐야. 그사람 시 한줄만도 못한데.."하고 대답하였다는 보도는 이 황금 숭배의 적막한 시대에 우리들의 가슴을 찌르는 촌철의 한마디가 되었다.

 

일제하의 가난한 엘리트 영어교사였던 백석.  그는 세월을 넘어 사랑하는 여인을 생각하며 오늘도 이름없는 산골짜기의 어떤 마가리(오두막집의 평안도 사투리, 혹은 비슷한 의미로 일본어의 間借를 생각하며 썼을지도..)에 홀로앉아 고독과 소주를 마시고 있다. 수없는 세월이 흐른 후 우리들의 눈오는 밤에도 그의 적막감은 이 한편의 시에 젖어 우리들의 가슴에 쓸쓸한 감동으로 전해질 것이다.              <운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