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토시의 항구에서 배를 타고 메콩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원주민들을 생활상을 엿볼수 있었다.
4,500Km의 긴거리를 흘러온 메콩강은 석회 성분과 부유물도 함께 흘러온 때문인지 물은 아주 탁해 보인다.
미토시와 메콩 하류의 섬들을 연결하는 다리가 너무 아름답다. 드넓은 메콩강을 거슬러 오른다.
호치민, 아름다운 옛이름 사이공의 저녁 거리 모습이다. 그야말로 수도 없는 오토바이의 물결이
거리를 뒤덮는다. 아침에 일터로 향했던 사람들이 이제 일을 마치고 가정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프랑스를 격퇴한 다음에는 미국이 들어오니 월맹은 소련의 지원을 받아 월남군과 미군을 상대로 싸웠다.
월남의 수도는 사이공이었으며 월맹군 게릴라의 근거 중심지는 사이공의 서남쪽에 위치한 구치시 였다.
구치는 사통 팔달로 교통이 발달 되어 있으며 기름진 농토가 펼쳐진 지역이다. 베트콩이라 불리웠던 게릴라군은 낮에는 농사를 짓는 농민이지만 밤이 되면 미군을 습격하여 괴롭히는 전사였다.
전쟁은 승자의 기록이다. 월맹은 미군을 몰아내고 공산주의 적화 통일에 성공하였기에 전쟁중에 수많은 미군을 살상하였던 미토 출신의 베트콩 게릴라 영웅 전사들의 기록을 각국어로 소개하고 있다. 미군 살상용사,
탱크 파괴용사, 적 전투기 격추 용사등 각종 영웅 칭호를 부여하며 베트콩들은 반미 항전의 사기를 드높였던 것이다. 이름없는 농사꾼과 시골의 아가씨가 모두 총과 지뢰를 갖고 목숨을 걸고 투쟁하던 게릴라 전사들이었다.
베트콩의 은신 비트. 미군들은 귀신같은 베트콩들의 은신술 때문에 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몰랐다.
정글 속의 미군 통로에 설치 되었던 함정
무기도 변변히 없었던 베트콩들은 미군에게 노획한 무기를 다시 개조하여 정글에 적합한 자기들의 무기를 만들었다.
고무농장
호치민의 저녁 모습을 보며 거리를 지난다. 한국의 1970년대 모습과 비슷하게 보이지만 그들의 민족주의에 대한 자부심 만은 대단 하다. 어찌됐던 그들은 세계의 초강대국인 미국을 패퇴시킨 세계 유일의 국가이다.
미국이 월남에서 패망한후 겪었던 절망과 갈등은 현재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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