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illy의 해외여행 Foreign Tour

베트남 여행 -1

Billy Soh 雲 響 2012. 6. 8. 14:18

 

 

몇년전 베트남의 수도이며 정치적 중심지인 북부의 하노이와 하롱베이 등을 돌아본 적이 있었지만 상이한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는 남부의 호치민 지역을 돌아볼 기회가 그간 없었다. 호치민 이라는 이름은 1975년 4월 30일 베트남의 통일(월남의 패망)후 붙여진 새로운 이름이다. 그보다 더 다정한 느낌으로 우리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이름은 사이공이다. 그곳 사이공 즉 베트남의 경제 중심도시인 호치민과 휴양 도시인 붕타우를 돌아 보기로 하고 츨발 하였다.

 

내가 일본에 근무하던 시절에 존경하였던 어떤 교수님은 언젠가 세계사의 전면에 두각을 드러낼 잠재적인 나라가 아시아에서는 베트남이요 유럽에서는 루마니아라 하였다. 로마는 루마니아를 정복하지 못했으며 베트남은 정복되지 않는 나라라는 것이다.

 

베트남에 내려 만나는 사람들은 키가 작고 몸집도 작은 사람들이다. 언듯보기에 그다지 강해 보이지 않고 그다지 있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쉽게 볼수 없는 사람들이다. 천년이상 중국에 점령 당한 듯 하나 결코 점령 당하지 않고 셀수 없는 침략을 받으면서도 대등한 것처럼 대항 하였으며 순식간에 점령하여 식민지화한 프랑스를 끈질긴 투쟁으로 몰아 냈다.

 

남쪽의 월남을 지원하며 들어온 미국을 불타는 민족주의 정신으로 대항하였으며 세계의 경찰 국가 거대국 미국을 패퇴시킨 유일한 나라가 베트남이다. 미국은 상상 할 수 없는 인명과 물자를 물퍼붓듯 쏟아 부으며 전쟁을 수행 하였지만 무기도 변변치 않고 체구도 자그마한 베트남인들에게 패하여 코를 싸쥐고 도망 가고 말았던 것이다.

 

베트남인의 시조는 중국 신화에 나타나는 신농씨의 3대 후손인 띠밍의 아들 락롱꾸언이며, 베트남 최초 국가는 락롱꾸언의 아들 훙 브엉이 세운 반랑이다. 따라서 베트남의 모든 왕조와 정권의 시조는 이, 진, 호, 여, 막, 정, 원 등 중국 성씨를 갖는다. 베트남의 각 왕조, 정권의 시조는 대부분 중국 본토의 지방관리였던 중국인 또는 중국계 이주민으로 이들은 베트남 토착세력을 규합해 왕조와 정권을 창출하였다.

 

그러므로 오늘날 베트남인은 중국에서 유입된 이주한인과 남방의 미개인이라는 뜻의 만이라 불린 베트남 토착민의 후손이라 할 수 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이주한인과 생계터전을 지키려는 베트남 토착민의 결합은 잦은 중국의 침입에 대항하며 시너지효과를 발휘하여 더욱 굳건해졌고 저항성, 독립성, 반골기질, 자존심이 강한 특유의 민족성을 나았다.

베트남의 각 왕조는 건국 초기부터 한 무제, 진시황제, 오 손권 등을 거쳐 청대에 이르기까지 속국으로서 중국에 조공을 바치며 중국의 눈치를 봐야 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베트남을 남국, 중국을 북국으로 칭하고, 베트남의 군주를 남제, 즉 남국의 황제라 칭하며 중국의 북제와 대비시켜 중국과 대등한 독립 왕조임을 주장하였다.

 

베트남 왕조의 이러한 강한 자존심은 중국에 새로운 왕조가 들어설 때마다 길들이기 전쟁의 빌미를 제공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중국의 끊임없는 베트남 자존심 죽이기 전쟁은 오히려 베트남의 민족적 단합과 단결을 강화시키고 민족적 자존심을 고양시키는 작용을 했다. 이는 근세 베트남이 프랑스, 미국이라는 강대국에 맞서 싸워 이길 수 있게 한 밑거름이 됐다.

오늘날 베트남의 국부로 추앙받는 호치민은 베트남 인민의 힘의 원동력이 민족적 자존심임을 간파하고 이를 프랑스와 벌인 독립전쟁과 사회주의 국가 건설에 이용했다. 호치민은 프랑스와 전쟁, 미국과 전쟁 모두의 명분으로 민족해방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호치민은 프랑스 식민시대에는 청년 월맹, 미국과 전쟁 당시에는 민족해방전선이라는 공산주의 단체를 조직 운영하였지만 민족주의자와 반목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을 포섭하고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해 자신들을 민족주의 단체로 위장, 공산주의 색채를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전쟁의 성격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간 이념분쟁이 아닌 민족주의 간 대립으로 몰고 가는 전략을 취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오늘날까지 호치민이 민족주의자인가 아니면 공산주의자인가 하는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도 바로 사회주의 도입을 위해 베트남인의 민족주의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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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에 도착한 호치민의 탄손누트 국제 공항. 모두 짐을 찾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공항 청사 밖. 한산하다.

 

규모는 김포공항 정도일까.

 

 공식 명칭은 탄손누트 공항 이지만 영문 코드는 아직도 사이공인것을 짐 찾고 나서 처음 알았다.

수많은 세월 동안 도도히 흐르는 메콩강.  티벳 지역에서 발원하여 중국, 라오스, 캄보디아를 거처 베트남으로 흐르는 4,500 Km에 달하는 엄청난 강이다. (한강은 526 Km 이다.)

 

미토시에 도착하여 배로 갈아타고 메콩델타의 유니콘 섬으로 향하였다. 현지 가이드의 모습.

 

메콩 델타의 섬과 내륙이 이다리로 연결되어있다.

 

유니콘 섬에서의 원주민 생활 체험. 그들은 이 꿀차를 즐겨 마신다. 꿀과 꽃가루 레몬 등이 들어간다.

 

꿀차와 같이 먹는 우리 나라의 편강 비슷한 것이다.

 

다서 여섯살쯤 되었을까. 저렇게 어린나이부터 나무위를 오르내리며 자란다.

 

메콩강 삼각주에 있는 섬들엔 수로가 아주 잘 발달 되어 있다. 수로는 그들의 교통 수단이요, 생활의 터전이다. 이곳에서 장사를 하고 이곳을 통해 큰 메콩강 본류로 나가는 길이다.

 

오토바이에 과일을 싣고 다니며 파는 행상 아주머니

 

 

묶고있던 호텔

 

미토시의 땅굴 지도이다.   그러나 이것도 파악 된것만의 지도이지 땅굴을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그들은 수시로 필요에 의해서 팠고 투쟁 하였기 때문에 수도 없는 땅굴이 산재해 있다.

 

땅굴의 모형도

 

이아래 개인이 갑자기 은신 할 수 있는 비트가 있으나 낙엽으로 덮여 전혀 분간 할 수 없다.

적은 땅굴의 입구

 

베트콩 들은 숲속과 땅굴에서 유격전을 전개하며 이렇게 작전 회의를 하기도 하였다. 이모습은 마네킹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러나 누가 장교인지 모르도록 같은 제목을 입고있다.

 

땅굴이기 때문에 지하에 공기가 순환 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개미집 밑에 통풍구를 만들곤 하였다.

 

부서진 미군 전차

 

 

개인이 빠지면 독침이 다리를 찌르도록 파놓은 함정

 

 

술도 만들었다.

 

우리 나라 소주와 같은 증류 주 제조 장치이다.

 

안내하는 병사. 체구는 적으나 그들의 자존심은 높다.

 

고무나무에서 고무를 채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