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한민국 육군의 최 선봉, 명예로운 전진부대 제1사단의 정예 장교였다. 바로 코앞에서 붉은 무리들의 속도전 깃발을 바라보며 부릅뜬 눈을 한시도 멈출 수 없었다. 배후에 있는 우리측 소리는 오히려 멀었고 낮 12시가 되면 정오를 알리는 북측의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점심을 먹곤 했다. 얼마전 모 일간 신문에도 '내가 겪은 6.25'라는 칼럼이 오랫동안 연재 되었지만, 그 글을 쓰신 국가 원로 백선엽 장군은 한국 전쟁시 전진 1사단의 사단장이셨던 분이다.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기전 38선 이남 이었던 개성은 남한 지역이었다. 한국 전쟁 1년여 전 1949년 5월 3일, 38선 바로 아래 지점에 연이어 있던 비들기 고지, 155고지, 유엔 고지, 292고지가 북괴군 제1사단의 기습을 받아 탈취 당하고 말았다. 아군의 제1사단 11연대가 다시 공격했으나 아군이 구축해 놓은 철근 콩크리트 토치카에서 완강하게 저항하는 적을 재 격멸 하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재탈환은 어려워 보였다. 이때 서부덕 2등상사가 특공대를 자원하였다. 작전후 추서된 고 서부덕 소위를 따라 고 박창근,김종해, 윤승원, 이희복, 박평서, 황금재, 양용순, 윤옥춘,오제룡 일등 상사등이 지원 하였다.
이들은 81mm 박격포탄에 수류탄을 장치한 급조 폭발물을 가슴에 안고 적진으로 돌격했다. 적의 포화를 뚫고 돌진하는 동안 일부 대원은 적탄에 다리와 팔, 복부등에 관통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육탄공격을 감행해 토치카 10개소를 모두 파괴하는데 성공한후 장렬히 산화 하였다. 아군은 때를 놓치지 않고 돌격해 적 사살 137명, 기관총 등 114정의 무기를 노획하고 4개 고지를 모두 탈환하는 대 전과를 거두었던 것이다. 이들이 바로 '송악산 10용사' 이며 대승한 이 전투가 '송악산 전투'이다.
6.25 한국 전쟁이 터진후 전진 1사단은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 작전' 후 선두에서 북진을 거듭하여 드디어 평양 근교에 다다랐다. 1사단 휘하 12연대 쌍용 부대가 바로 내가 군시절 소속했던 부대이다. 나의 선배님들인 쌍용 부대는 아직 적들이 수성하고 있던 위험한 적군의 수도 평양에 선봉 입성하여 치열한 시가전 끝에 평양을 탈환 하였다. 그후 파죽 지세로 공격하여 북진 하였지만 예기치 않은 중공군의 인해전술 참전으로 인하여 다시금 수복지를 적들에게 내어주고 후퇴를 거듭한 아픔도 갖고 있는 전통에 빛나는 부대이다.
요즘 정치 지도자들 중에 군대가 뭔지도 모르고 북괴군 앞에 맞서본 적도 없는 자들. 특히, 어제 천안함 폭침 사건 1주년을 앞두고, 북한이 한 일이라는 증거가 어디 있는냐, 과학적인 근거를 더 정확히 대라고 망언을 하며 바락 바락 대드는 야당의 지도잡네 진보 교숩네하는 인간들이 북괴군의 잔인함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들은 대한 민국에 태어난 자랑스러운 사내 자식으로서 다해야할 국방의 의무를 이핑게 저요령으로 미꾸라지 처럼 빠져나간 요령꾼 들이 상당수이다.
생명을 걸고 얼음같은 심해 바닷속에 들어가 천안함을 폭침했던 교활한 북괴군 어뢰의 추진체를 찾아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입만 살아서 대다수 국민의 감정도 파악 못하는 엉뚱한 말을 하고 있다. '북한' 소행 이라는 더 과학적인 증거를 대라는 것이다. 그것은 정확히 북괴 정권이 주장하고 있는 억지이니 증거 더 대라는 작자들은 실은 전부 북괴 편이다. 그리고 또 국민앞에 대들기를 논리적으로 말하는데 왜 전근대적인 색갈론으로 몰아 부치냐는 것이다. 기가 찰 노릇이다.
이런 인간들과 왜 같은 나라에 살고 있어야 하는지 정말 가슴이 불처럼 끓어 올라 터져 버릴것만 같다. 이런자들은 너희들 그렇게 좋아하는 북괴 쪽으로 가래도 절대로 가지 않는다. '총맞았나 우리가 가게' 하고 속으로 늑대같은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이곳에 끝까지 남아 국민을 이간질해서 분열시키고 북괴가 내려오면 반갑게 영합하여 아군의 뒤에서 총질을해 이나라를 통째로 북괴 입에 살코기로 바치겠다는 속셈이니 이 무리들을 어떻게 싹쓸이를 해야 속이 풀릴지 방법이 없다. 피지도 못하고 산화한 천안함 46용사와 그들을 건지기 위해 한생명을 차가운 바닷물 속에 던진 UDT의 전설 고 한주호 준위의 영령이 증거 더 대라는 가증할 무리들의 주장을 듣고 억울하여 어찌 눈을 감을 것인가. 어찌 그들의 분노를 풀 수 있을까. 가증한 괴변으로 국민을 미혹하는 무리들을 덤프 트럭에 채워 시원한 바닷속에 넣어 드리지 못하고 두고 보아야 하는 우리들의 죄책감에 가슴이 욱죄인다.
1974년 15명의 우리 동기는 육균 보병학교의 과정을 마치고 최종 쌍용 부대에 배치 되었다. 빛나는 소위 계급장과 젊음의 용기, 그 자부심은 하늘아래 부끄러움이 없었다. 그러나 그 후, 나의 친우 이춘근 중위는 작전중 산화 하여 지금도 동작동 국립묘지에 잠들어 있다. 간부 5명이 숨졌던 그 당시의 상황 속에서 별빛처럼 빛나는 이야기가 있어 소개 하고자 한다. 이제 오래전 일이라 이름도 잊어 버렸지만 같이 산화한 나의 친구 이춘근 중위의 상사였던 중대장에 관한 잊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그는 육사 출신의 대위로서 당시 중대장이었다. 작전중 산화하였지만 그는 즉시 목숨을 잃었던 내 친구와는 달리 하반신이 거의 날아간 상태에서 아직 생명이 남아 있었다. 그는 결혼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아직 신혼 이며, 갓 태어난 딸아이 하나를 두고 있었다. 급히 야전 병원으로 후송되는 그의 머리 속에 떠올랐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하반신이 거의 없이 피투성이에 젖어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 얼마나 가슴 맺히는 회한이 사쿠쳤을까. 사랑하는 아내의 얼굴, 갓태어난 딸아이의 모습, 그리고 하늘처럼 자신을 믿고 계시는 부모님..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았을까.
보통 사람이라면 적어도 "여보, 사랑했소. 미안해요. 딸아이 잘 부탁해요.. .." 하는 한마디를 남긴후 숨져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후송차 안에서 숨져가는 마지막 순간에 했던 한마디는 그런 개인적인 관계나 감정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대대장님, 죄송 합니다" 였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사내로서 신성한 국방의 의무 수행중 다하지 못한 책임에 대한 죄스러운 최후 보고였다. 그것이 바로 이 땅에 태어난 사내의 무서운 책임 정신이었던 것이다. 밤하늘에 별처럼 빛나는 이런 숭고한 정신이 있었기에 이 나라가 현재 존속 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남자에게 있어서 가장 무서운 것은 무엇인가. 생명 보다도 더 두렵고 소중한것, 그것은 바로 '책임'이라 생각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끝까지 다해내기 위하여 때로는 목숨까지도 내어 놓아야 하는것.더군다나 부하들을 지도하는 책임자 리더로서 비겁할 수 없는 책임. 그처럼 무서운 것은 없다. 사내이기에 고통을 가슴속에 숨겨야 한다. 경거망동 표정에 나타낼 수도 없다. 묵묵히.. 쓰러진다 하더라도 주어진 책임을 다 해내야 한다. 그것이 사내로 태어나 걸어가야 하는 인생의 길이다.
옛 추억. 젊은 시절의 기억이지만, 오늘날 기업의 조직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내들도 원리는 마찬가지 이리라. 기업도 전쟁이다. 혼신의 힘을 다하던 가까운 동료 임원 두사람이 최근 갑자기 쓰러져 유명을 달리했다. 나보다도 젊은 후배들과의 예기치 못한 영결은 가슴 속에 깊은 회한을 남긴다. 그러나,, 그들은 남자에게 있어 가장 무서운 것, 그 '책임'과 평생 두려움 없이 맞섰던 우리 사회의 작은 영웅, 나라를 떠받치는 또다른 전선, 경제전의 영웅들이었다고 가슴에 새겨본다.
<운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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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2011년 3월 28일, 월요일 자 중앙일보에서 인용함(2011.3.30)
[김진의 시시각각]
유시민, 아직도 ‘소설’인가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똑같은 하늘 아래서 기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아들을 잃은 촌부(村婦)는 1억원을 바쳐 북한에 맞설 기관총을 군함에 걸었다. 그런데 국민 세금으로 호의호식하고 있는 제1 야당 원내대표는 아직도 북한의 소행인지 아닌지 모르겠다고 한다. 늙은 군인은 젊은 후배들을 구하겠다고 죽음의 바다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야권에서 차기 지지율 1위라는 사람은 어뢰 피격은 소설 같은 얘기라고 했다. 천안함은 하나인데 사람들의 유형은 둘이다. 하나는 묵직한 기관총과 산소탱크이고, 다른 하나는 경박한 혀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지난해 5월 11일 당의 경기도 지사 후보였다. 그는 라디오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폭발에 의한 침몰로 보지 않는다. 폭발이 있었다는 증거가 단 하나도 없다. 현재까지 어뢰설·기뢰설 온갖 것들이 억측과 소설이다.” 5월 11일이면 여러 정황으로 이미 ‘외부 공격’이 드러난 때였다. 백령도에서 관측된 지진파, 승조원들의 증언, 인양된 함미와 함수의 절단면, 그리고 무엇보다도 외부폭발이라는 국제합동조사단의 잠정결론이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증거가 단 하나도 없다며 언론과 전문가의 분석을 소설로 매도했다. 그는 그해 6월2일 선거에서 낙선했다. 나는 ‘역사가 유시민을 거부한 이유’라는 글을 썼다. 경기도는 남한에서 병력과 무기가 가장 밀집된 곳이다. 육군 4개 군단, 해군 함대, 해병대 사단, 공군 작전사령부와 전투비행단이 포진해 있다. 군 지휘관들과 검찰·경찰 책임자, 도의회 의장과 교육감, 그리고 전력·통신을 관할하는 한전·KT의 책임자들이 통합방위협의회를 구성한다. 의장은 도지사다. 유사시에 의장은 “소설”이라 하고 군 지휘관들은 “사실”이라고 하면 국가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래서 “국가안보를 걱정하는 역사의 신(神)이 ‘대한민국의 숨통지대’로부터 그를 멀리 떼어놓은 것”이라고 나는 썼다. 역사가 거부했던 유시민을 당원들이 선택했다. 참여당의 창당선언문은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의 삶을 당원의 삶을 규율하는 거울로 삼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시민은 야권 단일후보가 되어 제2의 노무현 정권을 만들려고 한다. 그렇다면 북한이라는 야만적인 위협과 맞서고 있는 나라에서 천안함 폭침을 부정하는 인물이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아니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은 “소설”이라 하고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은 “사실”이라고 하면 나라는 어떻게 될 것인가. 유 대표는 독서량이 많은 사람이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 시리즈를 비롯해 많은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지식인이 시골의 아낙네도, 도시의 장삼이사(張三李四)도 쉽게 아는 북한 소행을 모르고 있다. 가족이 강도에게 당한 걸 모르면 교양 많은 가장이 다 무슨 소용인가. 자신의 책 제목처럼 유시민은 세상을 ‘거꾸로’ 보는 게 아닌가. 천안함 1주기인 지난 26일 유 대표는 진해 해군기지에서 열린 추모식에 참석했다. 외부공격이 아니라 사고사라면 굳이 추모할 게 뭐가 있을까. 북한 소행이 아니라는 사람이 북한을 규탄하는 자리에 왜 앉았는가. 추측하건대 유 대표는 그동안 마음 속에서 갈등을 겪은 게 아닐까. 연평도 사태까지 터지자 자신의 ‘소설론’을 후회하고 있는 게 아닐까. 소설론 사건 이후 입장을 밝힌 적이 없어 그의 속마음을 확실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가 추모식에 앉은 것은 마음의 갈등 행로 때문이 아닐까. 북한이란 위협이 존재하는 한 국가관이 흐물거리는 인물이 남한의 대통령이 될 수는 없다. 경제가 커지고 복지국가를 만들어도 북한에 나라를 넘겨주게 된다면 무슨 소용이 있나. 경제는 잘 몰라도 두뇌를 빌리면 되지만 국가관·안보관은 빌릴 수가 없다. 천안함 집단살인의 범인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일은 국가가 해야 할 일의적(一意的) 과제다. 국가안보는 소설이 아니라 실존이다.
(출처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aid/2011/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