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이여, 92년전의 3.1절, 그 함성 그 절규를 정녕 잊었는가
세계는 바야흐로 글로벌 시대에 접어들어 어느 나라도 독자적인 발전을 추구하기에는 한계를 갖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기에 대륙간의 블록 경제권이나 국가간의 자유 무역 협정(FTA)을 추진하여 상호 윈 윈의 공동 발전 목표를 추구하는데 경쟁적으로 나서게 되었다. 하지만 모든 협정의 이면에는 국익을 극대화 하려는 각국의 경쟁이 총성 없는 전쟁을 방불케 하고 있다. 제국 주의 영토 확장 시대나, 이데올로기 대립 시대의 무력 전쟁을 넘어서는 보다 지략적인 국익전쟁의 시대로 접어 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민족이 흘러온 과거사를 잊어버리고, 내 아버지 할아버지와 윗대의 모든 조상님들이 피 흘려 싸워 지킨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도 국가의 미래가 밝을 것이라는 가설은 절대로 성립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민족의 고난과 정체성의 확립도 허술히 여기는 국가와 민족이 어떻게 험난한 세계사의 파도를 넘어 비젼을 세우고 의지로 극복하며 자랑스러운 나라의 미래를 열어나갈 젊은 세대를 육성해 나갈 수 있다는 말인가.
작년도(2010), 어떤 교육기관의 학생 의식 조사에 의하면 초 중 고생의 60퍼센트가 3.1운동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거나 정확히 모른다는 자료를 본적이 있다. 그런데 작년도 교육과학부에서는 국사를 수학능력 시험 의 필수 과목에서 제외시킨다는 정책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최근에 와서야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여당에서 국사 교육 정책의 문제점을 깨닫고 재 논의 하려는 움직임은 만시지탄이나마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 내리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한 나라의 정책자들이 자국의 역사를 꼭 가르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지 상상을 초월하는 사태이다. 수학 영어 국어만 집중해 시험 기술자를 가르쳐내면 세계사에 빛나는 국가가 될 것이란 말인가. 참, 유구무언이요, 그런자들을 월급주기 위해 뼈빠지게 벌어 허리가 휘게 세금 내고 있으니 참담한 심경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92주년의 3.1절을 맞으며 우리가 잊어서는 안되고 후손에게 가르쳐야할 의의와 자부심에 대하여 생각하고자 한다. 우선 3.1운동 전 시대의 상황과 발발의 배경에 대해 좀더 이해하고 싶다.
메이지 유신 이후 급격히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에 승리하여 제국주의 열강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물론 일본은 양 전쟁 전부터 조선에 대한 탐욕을 끈질기게 추진하여 1875년에는 통상 요구를 거절했다하여 군함 운요호를 강화도에 파견하여 사건을 일으키고 조선 함대가 방어 사격 한것을 빌미로 1876년에는 강화도 조약을 체결 하였으니, 이 조약이 조선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치욕적인 불평등 조약 이었다. 즉 청과의 종주권 관계를 끊게 하려고 표면상으로는 조선이 독립국이라는것을 내걸었으며, 부산을 포함한 3개항을 강제 개항토록하고, 주권국가의 영토인 조선의 해안에 대한 측량권을 갖도록했다. 이는 추후의 군사 작전을 유리하게 하려는 책략이었으며, 거류 일본인이 범죄하여도 일본 관헌이 심판토록 하는 치외법권을 인정토록 하였으니 이러한 조약을 강요 받고 조인 할 수 밖에 없었던 조선의 치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 강화도 조약의 결과로 1876년 조.일 통상 장정이 발효되어 일본상품이 무관세로 쏟아져 들어오고, 우리가 생산한 쌀과 양곡은 무제한 유출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후 일본의 이권침탈에 자극받은 서구 열강들도 우리의 조국을 앞다투어 침탈하려고 이권을 강요하니 우리 나라는 산지 사방으로 찢겨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청일, 러일 전쟁에 승리한후 조선에 대해 보다 독점적인 지배구조를 구축 하였으며, 1905년에는 을사보호조약으로 외교권을 강탈하고, 급기야 1910년에 우리 민족은 한일 합방으로 아예 국권을 몰수 당하여 버리고 말았다. 5천년을 이어온 역사의 등불이 꺼져버리고 암흑의 세상으로 떨어져 버렸던 것이다.
한일 합방과 함께 일본 제국은 조선에 대하여 가혹한 식민 통치를 단행하기 시작하였다. 우선은 통감부를 폐지하고 조선 총독부를 설치하여 한국에 대한 입법 사법 행정의 3권과 국군 통수권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헌병 경찰 제도를 도입하여 군인 신분인 헌병 조직으로 하여금 한국인의 독립 정신에 의한 저항을 무자비하게 탄압토록 하였으며, 총독 직속 기관화 하여 행정기관, 경찰 기구 재판소 등의 국가 주요 기관을 강점 장악 하였다. 뿐만 아니라, 전매국, 토지조사국 등을 설치하여 경제 수탈을 본격화 하였고 교육 기관을 일본인 수장에게 맡겨 민족혼을 말살하고 소위 제국 신민화 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1910년 12월 29일에 조선 총독부는 회사령을 공포하여 조선에서의 모든 회사 설립은 총독부의 허가를 받도록 하였다. 이것은 실제적으로 조선의 민족 자본으로는 회사를 설립 할 수 없도록 하여 민족 자본 성장을 억제하고 이미 있던 기업도 강제 해산 폐쇄 함으로서 일본 자본하에 일본 제국 경제 질서로 편입토록 강요 하였던 것이다.
다음으로는 1908년에 이미 설립 되었던 동양 척식 주식회사이다. 이 동척은 일본 국책 회사로서 조선의 토지를 강점 강매하여 농민에게는 고율의 소작료를 받고 피를 빨았으며, 가난한 영세 농민들에게는 2할 이상의 고리로 대여하여 우리 농민을 피골이 상접토록 착취하였다.
이처럼 우리민족의 목을 죄어 민족을 말살하고 경제적으로 뼈골을 빼어가는 침탈과 압제에 견딜수가 없는 상황이 되니 전국 각처에서는 의병이 일어나고 애국 지사들의 계몽과 항거가 잇따랐다. 돈이 있던 자본가는 회사령에 의해 회사를 빼앗기고, 농민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토지를 토지조사라는 명목으로 몰수 당하고 그 절박하고 비참한 정황은 이루 말로 표현 할 수가 없었다. 모든것을 잃은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들어 극한적인 상황 속에서 비인간적 대우를 받으며 저임 노동으로 근근히 연명해가는 처지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계속) <운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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