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 8월 22일, 그날은 5천년을 이어온 한민족 역사의 명줄이 끊어진 날이다. 단군왕검 국조께서 하늘의 명을 받아 고조선을 건국한 이래 우리 민족은 천번에 가까운 외침을 받아 왔다. 수많은 굴종과 치욕을 겪으면서도 나라가 완전히 통째로 먹혀본 적은 없었다. 거란, 여진, 수, 당, 홍건족, 왜구, 몽고, 명, 청... 역사상 거의 그칠날이 없는 외침이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 수많은 시련속에서도 우리 민족의 맥은 끊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버티며 살아온 민족이 통째로 꿀꺽 삼켜저 명줄이 끊어지고 역사의 무덤에 묻혀버렸으니, 그날이 바로 1910년 8월 22일, 경술의 국치절이었다. 한민족 사상 초유로 발생한 이 피눈물 통한의 국치절을 오늘날에는 아무도 기억하지도 않고, 가르치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고, 역사의 수레바퀴가 주는 교훈을 새겨보지도 않으니, 이러한 세태야 말로 더더욱 피눈물이 맺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날에 나라를 잃어 버리고 역사의 초유 고아가 됨으로 인하여 수많은 우리의 선조들이 잔인하게 고문당하고 죽고 모든 재산을 다 잃고 떠도는 원혼이 되었는데도 딱 100년이 지난 오늘 그것을 새기는 사람이 없어져 버렸으니 이 민족의 미래에 어찌 꿈이 있다하랴. 눈앞의 가난을 면해 보려고 성실하게 살았기에 오늘 밥을 먹게는 되었지만 후세에게 역사의 부릅뜬 두눈을 가르치지 않는 나라에 어찌 미래가 있을 것인가. 우려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청일 전쟁에서 청국을 누르고 노일 전쟁에서 급기야 거대국 러시아까지 쓰러뜨린 일본 제국은 드디어 한반도를 삼키려는 정책을 노골화하였다. 그리하여 1905년 강제적으로 을사 조약을 체결하여 우리의 모든 외교권을 박탈 하였던 것이다. 그해 1905년 11월들어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는 계속적으로 대한제국의 고종 황제를 협박 회유하고 보호 조약 체결을 요구했지만 고종께서는 끝내 동의 하지 않았다. 이토는 드디어 11월 27일, 헌병들을 배치하고 각료 회의를 소집하여 한사람씩 보호조약에 찬성하겠느냐 않하겠느냐고 협박하였다. 이때 참정대신 한규설, 탁지부 대신 민영기, 법부 대신 이하영등은 끝까지 그 협박을 거부하고 동의 하지 않았으니 그나마 우리 한민족의 굽힘없는 기상을 잘 나타내 보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학부 대신 이완용, 군부 대신 이근택, 내부 대신 이지용, 외부 대신 박제순, 농상공부 대신 권중현 등 5대신은 일제에 굴복하여 을사조약을 체결하고 말았으니 이들이 바로 을사 5적이다. 그러나 고종 황제께서는 끝까지 이 조약의 서명을 거부하고 서명하지 않았으니 이 을사 조약이야 말로 당연히 국제법상 무효의 조약이다. 울분의 나날을 보내던 고종께서는 1907년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제2차 만국 평화 회의가 열리자 이 기회에 을사조약의 무효와 일본의 침략 사실을 알리려고 이준, 이상설, 이위종 3인의 특사를 파견 하였지만 그들은 일본의 방해 공작으로 회의장에 들어 가지도 못하였다.
그러나 5개 국어에 능통했던 이위종 참사관은 불어로 보도 자료를 작성하여 만국의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유창한 불어로 일본의 침략 사실을 알리는 사자후를 토했으니, 그날의 배포하였던 타블로이드판 보도자료는 지금 네델란드 헤이그의 교포가 운영하는 이준 박물관에 전시 되어있다. 나는 그 박물관에서 그 자료를 읽으며 뜨거운 눈물이 흐름을 금할 수 없었다. 나라를 잃은 23세의 이위종 참사관의 누를 수 없이 폭발하는 분노가 시대를 넘어 그대로 나의 가슴에 전해져 왔던 것이다. 그러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고, 더구나 단장이었던 이준 열사가 울분을 품은채 현지에서 타계했기 때문이었을까, 그 3인의 특사의 행적과 특히 이위종 참사관에 대한 연구가 없음은 또다른 나의 개인적인 아픔이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이위종 참사관에 대하여 연구해 보고 싶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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