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100년 전국시대를 통일한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1591년(선조 24년) 3월 9일 타이로, 쥬로 붓쿄등 각급 중신들을 오사카성에 소집하고 조선 침략 계획을 선포 하였다. 전쟁의 목적은 군사적으로 국내 통일후 분출하는 불만 무사 세력의 에너지를 전쟁을 통하여 단결 시키고, 경제적으로 공신들에게 하사할 녹봉 토지를 획득하기 위함 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큰 근본적인 목적은 과대 망상적인 자신의 정치적 목표의 달성이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국내 통일을 달성한 후 군국주의적인 패권야욕과 제국주의적 영토팽창 야욕에 불타고 있었던 것이다. 전국시대의 막바지에 이른 시점에서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과 명을 아우르고 류구국(현 오키나와), 고산국(현 타이완), 루손(현 필리핀)을 공략한 다음 천축(현 인도) 땅까지 지배하에 놓고 명의 베이징을 중심으로 하는 거대 제국을 건설한다는 야심에 차 있었던 것이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이 거대 계획은 통상 야욕과 광기 또는 몽상으로 평가 되고있다. 물론 당시 군사적 현황만을 비교한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이 조선과 명을 압도하고 있었고 최소한 조선과 명을 아우르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다만 전쟁의 승패는 숫적인 군사력만으로는 결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는 7년여의 전쟁끝에 야욕의 달성에 실패하고 자신의 정치적 생명은 물론 육신마저 병들어 죽고 말았던 것이다.
하여간...
히데요시는征明街道(정명가도, 명나라를 칠테니 그 길을 내도록 할 것)라는 기치를 걸고 30만 대 병력을 동원하여 조선 출병을 준비 하였다. 그 중 1차 출병한 제1선 병단 9개군 158,700명과 대본영 직속 5개대 29,000명의 출병기지가 조선과 가장 가까운 현재 북 큐우슈우 사가현 카라츠에 신설한 나고야 대본영이었다. 제2선 병단 8개군 102.960명은 제1선 병단이 신속히 한양을 점령한 후의 북진 시기에 남해와 서해 항로를 북상하여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 평양에서 제1선 병단과 합류하기로 되어있는 전략 대기 부대 였으니 카라츠와 그 인근의 군항 후쿠오카등에 분산하여 훈련을 반복하며 출병을 기다리고 있었을것으로 생각한다.
당시 나고야 대본영에는 48만명이 1년간 먹을수 있는 군량과 군수 물자가 집결 되었고 토요토미 자신은 스스로 타이코(태합)가 되어 직접 전쟁 지도에 임하고 있었다. 한정된 지역에 그 정도의 대군과 물자를 집결 시켰으니 그 준비의 주도 면밀함과 규모는 대단하다고 평가해야 할것이다.
2009년 3월. 그러니까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침략을 공포한지 418년후 꼭 그 계절에 , 우연히도 업무상 관련으로 왜군 출병 기지인 그 지방을 방문하게 되었다. 여러 시람이 같이 여행 하였고 모두들 모처럼의 일상에서 빠져나와 여유와 즐거움이 넘치는 분위기였지만 개인적으로 나자신은 옛 역사를 생각할 때 숙연한 감회에 젖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행지를 소개하는 이곳에서 다 논할 수는 없으므로 추후 기회가 있기를 바라지만 임진왜란 발발전 선조는 전쟁의 가능성을 판단하기 위하여 통신사를 파견 하였다. 서인의 황윤길이 정사요, 동인의 김성일이 부사였다.
귀국후 정사 황윤길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음흉한 야욕과 전쟁이 다가 오고 있음을 보고 하였으나 부사인 김성일은 그가 그럴만한 인물이 못되며 전쟁은 없을것이라고 반대의 보고를 올렸다. 율곡 이이는 10만 양병설을 주창하며 국난의 위기가 다가옴을 설파 하였지만 황윤길과 이이의 선각적 논리 모두 당시 정국 주도권을 쥐고 있던 동인에 의하여 무시당하고 선조는 그들의 의견을 채택 하지 않았다.
이 어찌 통한의 실책이라 아니 할 수 있으랴. 그 생각을 가슴 속에 품으며 바라보는 나의 눈에는 북 큐유슈우 지방의 모습이 오랜 세월이 흐른 조상들의 상황이었다 해도 예사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후쿠오카항과 공항의 모습
이 바다에 당시 출병의 명을 기다리는 왜군 함선들이 가득 찼을 것이다.
일본 교수들과의 세미나후 만찬
시게마스는이고장의 명주이다.
라운드 Tee off 전에
CC 가는 길가의 주택들
농촌 풍경
시내의 가게, 식당들
Bye bye Fukuoka !
공항에서의 망중한. 스모를 보고 있었다. 타치아이(立會, 겨루기) 직전의 레키시(力士) 모습
요리키리(寄切, 밀어내기) 승부 직전
다시나게(出投, 붙어서 밀고 들어오는 상대 역사에게서 자기몸을 한순간에 돌려 빼고 샅바를 잡아 옆으로 넘어뜨려 날리는 스모기술)로 승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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