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모
조지훈
사랑을 다해 사랑 하였노라고
정작 해야 할 말이 남아 있음을 알았을때
당신은 이미 남의 사람이 되어있었다.
불러야 할 뜨거운 노래 를 가슴으로 죽이며
당신은 멀리로 잃어지고 있었다.
하마 곱스런 웃음이 사라지기전
두고 두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잊어 달라지만
남자 에게서 여자란 기쁨 아니면 슬픔.
다섯 손가락 끝을 잘라
핏물 오선을 그려
혼자라도 외롭지 않을 밤에 울어보리라.
울어서 멍든 눈 흘김으로
미워서 미워 지도록 사랑 하리라.
한잔은 떠나버린 너를 위하여,
또 한잔은 너 와의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그리고 또 한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
마지막 한잔은 미리알고 정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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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곡동에서 태어난 시인 조지훈님은 이 시대의 마지막 선비라 일컬어지는 시인이며, 현대 시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훌륭한 시인의 한 사람이다. 청록파 시인으로 박목월, 박두진과 함께 일제 식민통치 말기에 민족의 얼과 정서를 지키기 위해 숨어서 시를 쓴 민족적 전통시인이었다.
지훈은 고통스러운 식민지의 삶을 살아 내며 전통과 민족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하여 우리가 우리다울 수 있음은 전통에의 회귀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암울한 시대적 극한 상황에서 매우 힘겹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전통과 절제와 여백의 아름다운 시의 세계를 보여 주었다.
한편, 지훈은 호방하면서도 치밀한 성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사모>를 발표했을때 그는 이미 명예와 재물을 얻은 시점 이었다. 그러나 이 시에서 그는 누구에게도 내보일 수 없었던 가슴 깊은곳의 순정과 내면의 허무감을 비춰 보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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