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84년 Roche Korea의 창립 멤버로서 입사하였고 회사가 오픈할 시점을 앞두고 영업부의 소장들이 입사하니 영업 간부들인 그들에게 제품을 교육하기에 바빴다. 교재를 만들고 어떻게하면 내 제품을 그들의 머리속에 가장 중요한 제품으로서 심어줘야 할지가 언제나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소장 교육이 끝닌후 1985년 드디어 영업부 MSR(Medical Sales Representative)들이 공채로 입사하니 그들을 교육하고 담당 제품의 전략 발매안을 기획하는 일 등으로 일분도 쪼개기 어려운 분주한 나날이 계속 되었다. PM은 직접 영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로 고객에게 전달될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여 영업부의 머리와 활동에 실려보내 자신의 담당 제품을 성장 시켜야 하는 것이 책무이다. 그러니 아무리 우수한 마케팅 계획을 수립하였다한들 그것을 필드에 나가 직접 영업을 수행하는 영업부 각 지점 소장들과 MSR들의 머리속에 강력한 의지로 심어주지 못한다면 그 전략안은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영업부 교육은 PM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업무중의 하나였다.
1985년 신년초 한국 로슈의 영업이 드디어 문을 열었다. 3월에 대망의 신제품 로세핀이 발매 되었다. 사내의 발매 대회는 역삼역에 위치한 강남 유스호스텔(현재 GS 타워 자리)에서 개최 되었다. 정문에는 로세핀 발매대회 배너가 걸리고 회의실 강당 입구에는 그동안 내가 심혈을 기울여 마련한 여러가지의 팜플렛과 판촉물 임상자료 등을 전시 하였다. 발매 대회의 모든 일정과 교육은 전적으로 담당 PM의 책임하에 진행 되었다. '신개념의 항생제 요법', '세계 최초의 once a day 제품', 'Cost Effectiveness' 등 강한 임팩트의 슬로건을 여기 저기에 붙여 놓았다.
모든 산업 분야가 그렇겠지만 특히 제약업 마케팅에 있어서 Product slogan 만큼 중요한것은 없다. 영업을 담당하는 MSR 들이나 제품을 실제로 처방하는 대학병원의 교수들 및 개인 병 의원의 닥터들에게 있어서 각 회사의 수많은 제품들이 경쟁하는데 그들의 기억을 잡으려면 한두 단어로 구성된 강한 슬로건 만큼 충돌 효과가 큰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나는 전략안을 기획할때 가장 신경 쓰는것중의 하나가 어떻게 임팩트 강한 슬로건을 만들어 내느냐가 관건이었다. 나의 슬로건이 영업부나 닥터들의 머리속에 날아가 박힐 수만 있다면 마케팅은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성공적으로 발매 대회를 마치고 로세핀이 한국시장에 첫선을 보였다.
나는 전국의 대부분의 대학병원을 순회하며 Explanatory Meeting(설명회)을 실시하였다. 약사위원회에 추천해 주실 교수를 중심으로 설명회에 초청하는 업무는 현지 지점의 소장이나 담당 MSR이 수행하지만 설명회 발표 자체는 언제나 전국 어디서든지 내가 직접 가서 실시하였다. 설명회를 한번 실시하기도 어렵지만 그때 제품 Presentation을 어떤 논리로 전개하고 어떻게 결론 지어 닥터들의 마음을 사로 잡느냐 하는 것은 그야 말로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나는 언제나 얘기하였다. 학술적 내용은 물론이거니와 무흠의 설득력과 리듬과 음성의 볼륨과 핵심 키 닥터와의 눈맞춤과 질문의 유도 등 하나의 결점도 없이 작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그것만은 언제나 제품 전문가인 Product
Manager 가 직접 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었다.
계획된 일정에 따라 전국의 거의 100퍼센트 대학병원에 순차적으로 랜딩 되었다. 로세핀의 바람이 전국에 불었고 영업부에서는 영업 최우선 주력 제품으로 언제나 선두에서 달려 나갔다. 대한 외과학회, 내과학회및 각 임상과의 춘 추계 학회 시에는 언제나 전시 부스를 실시 하고 내가 직접 나가 PT 하였다. 또한 신라호텔 다이너스티 홀에서 성대한 'Rocephin(Ceftriaxone) Symposium'을 개최 하였다. 먼저 스위스 로슈 연구소에서 Ceftriaxone 의 개발에 참여하였던 분이 약물 동력학, 적응증별 다시설 임상 결과, 본 성분의 특성 등을 발표하였다. 스위스 로슈 연구소는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수상하지 못한 노벨 의학상을 3분이나 배출한 세계 탑 수준의 명성이 높은 연구소이다.
외과 영역에서는 지금은 돌아가신 서울대학병원 외과의 김진복 교수님께서 'Effectiveness of Ceftreiaxone in Surgical Post-operative prophilaxis (외과 영역의 수술후 감염 예방에 있어서 세프트리악손의 효과)'에 대하여 직접 임상하신 결과를 발표 하셨다. 김진복 교수님은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미국의 외과학 교과서인 'Clinical Surgery' 에 나오는 분이다. 특히 위암 수술례수는 세계 제1위로 그분의 기록은 향후에도 아마 깨어지기 쉽지 않을 것이다. 위암 수술 분야에서는 세계의 독보적 위치에 계셨던 분이다.
그 외 여러 교수님들이 연자로서 발표해 주시고 플루어에서 액티브한 질문이 이어지니 심포지움의 분위기는 활기가 넘쳤다. 점차 전국의 대학 병원에서 처방도 활성화 되어가니 바륨으로 상징되는 벤조디아제핀계 회사에서 항생제 회사로 로슈는 명실 공히 치료 영역의 전략적 전환을 추구하며 톱이 되어 달려 가고 있었다. 그 무렵 PM으로서 내가 담당하고 있던 제품은 로세핀 외에도 Antianaerobic antibiotic (항 혐기성균 항생제)인 ornidazole 제제 'Tiberal(티베랄)'이 있었다.
세균은 그 반응조건이 되는 환경상태를 구분하여 호기성(aerobic)균과 혐기성(anaerobic)균으로 구분하는데 호기성 상태는 공기중의 산소가 녹아 형성된 용존산소(dissolved oxygen)가 풍부한 상태이고, 혐기성 상태는 용존산소와 무기 결합산소가 없이 유기 결합산소(아세트산이나 글루코스와 같이 유기화합물에 결합된 산소)만 존재하는 상태이다. 즉, 혐기성균은 인간의 내장기관처럼 산소가 없어도 증식이 가능한 균주이다. 예로는 장내세균과, 비프리오과 포도상구균 등이 있다. 티베랄 정제와 질정은 주로 여성의 트리코모나스 질염, 아메바증, 람블편모충증 등에 처방하며, 주사제는 혐기성균에 의한 패혈증, 수막염, 복막염, 수술후 창상감염증, 자궁내막염 등에 처방하는 약물이다.
그런데, 이 '티베랄을 발매 하면서 나는 고민이 깊어졌다. 모든 영업 담당자 MSR들에게 오직 '로세핀'을 외치며 지금까지 출현한적 없는 최상의 항생제로 각인시켜 왔고 로세핀 영업에 질주하게 만들었었는데 어떻게 한정된 영업활동 시간을 쪼개어 '티베랄'의 영업을 성공적으로 유도하느냐였다. 더구나 영업부에서는 내 담당 제품만을 영업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PM들의 제품도 영업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MSR들의 마음 속에 내 제품의 점유비를 어떻게 확보하는가가 PM들간의 치열한 경쟁이었다.
로세핀 영업은 날로 확장 되며 순항하고 있었지만 '티베랄'은 발매후 3개월이 지나도 전혀 활성화가 되지 않고 대학병원에 랜딩 소식도 감감 무소식이었다. 이 상황은 통상적으로 진행하는 웍샵 등으로는 타개 될것 같지가 않았다. 나는 영업부의 마음속에 강한 임팩을 주기위해 특단의 활성화 웍샵을 기획하였다. 소위 '가자! 민족의 영산 마니산으로!' 였다. 전국 체전의 성화가 채화되는 한민족의 영산인 강화도 마니산 정상 참성단에서 '티베랄'의 활성화 결단제를 올리기로 추진한 것이다.
우선 '티베랄'의 로고 컬러인 보라색으로 전원 트레이닝복을 맞추고 가슴에 테베랄 브랜드를 새겨 넣었다. 실행일 아침에 전국 각지점에서 모인 MSR들을 버스로 인솔하여 강화도로 가 마니산 정상에 올랐다. 참성단 제단에 대형 전국 지도를 펼쳐 놓고 전원이 둘러섰다. 전국 각 지점별로 직원들을 도열 시켜 자기 지점의 위치에 깃발을 꽂게했다. 그 순서가 끝나고 제품 책임자 PM인 나를 비롯하여 전 지점장과 직원들이 기필코 티베랄을 활성화 시키겠다는 결심서를 쓰게했다.
숨소리도 용납치 않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각자가 작성한 결심서를 접어 미리 준비한 유리 호리병에 지점 순서대로 넣었다. 그리고 그 호리병을 참성단 제단 아래 산속에 묻었다. 우리가 지향하는 '티베랄'의 목표가 달성 되는 날 우리는 다시 이 참성단을 찾아 이 결심서를 발굴할 것이라고 나는 엄숙히 발표하였다. 그리고 나의 선창을 따라 마니산이 떠나가라고 외쳤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티베랄~!!", "에게해의 진주 티베랄~!!"
다른 제품 웍샵과는 다르게 좀 별나고 일견 치기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제품의 활성화 목표를 책임지고 있는 나로서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무슨 수를 쓰든 영업부의 마음속에 이 제품의 당위성을 심어주지 않으면 안되는 절대절명의 책무였기 때문이다. 당위성의 슬로건은 '최고의 이익제품'에 걸었다. 티베랄의 원료인 ornidazole(오니다졸)의 원료가격 비율이 모든 제품들 중 가장 저렴한것에 착안한 것이었다. 즉, 원료 싸게 사서 만들어 비싸게 파니 "티베랄 파는 사람이 우리 상여금 높인다"는 논리였다. 그런 의미로 만든 영업적인 슬로건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에게해의 진주'였다.
참성단 결단식이 끝난후 하산하여 호텔에서 웍샵을 실시하였다. 내가 제품교육과 특장점, 디테일 포인트를 다시 정리 교육하고 전 영업부를 두사람씩 짝을 지어 철저한 롤 플레이 훈련과 평가를 하게했다. 나의 상습 장기인 조별 시연 시험을 실시했다. 나와 간부들의 앞에서 실제 디테일을 시켜 합격하게 하고 불합격하면 합격 될때까지 지겹게 다시 또 다시를 계속 시키는 것이었다. 모두 열성적으로 훈련하여 다행히 저녁 식사 전에 모두 합격하였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모두 강화읍에 전세낸 디스코장으로 가게하여 밴드에 맞춰 무한 광란의 디스코 파티를 벌렸다. 사이키델릭 조명하에서 지쳐 쓰러질 때까지 술을 마시고 몸을 흔들어대며 젊음을 발산케하니 모두들 아주 늘어질 때까지 놀았다.
그런데 그 광란의 웍샵후, 꿈쩍도 하지 않던 '티베랄'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매일이다시피 MSR 각자가 제출한 대학 병원별 상륙 일정을 면담으로 전화로 사정없이 재촉해 댔다. 만일 일정이 어그러지거나 지키지 못하면 용서없는 질책이 불을 토했다. 오죽하면 영업부에서 나때문에 더러워서 회사 못다니겠다고 상부에 소원수리가 들어갈 지경이었다. 그러나 나는 누구의 압력이나 말도 들은척 만척 내 소신의 행동을 계속 하였다. 그렇게 하여 성장의 육중한 기어를 돌리기 시작한 '티베랄'이 드디어는 국내 Antianaerobic antibiotic (항 혐기성균 항생제) 시장에서 정상을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다음 내가 담당하는 제품은 Anti-Parkinson(파킨슨병 치료제) 제제인 Madopa(마도파)가 있었다. 이 제품은 levodopa(레보도파)와 benserazide(탈탄산 효소 억제제)의 혼합제로서
Dopamin(도파민)이라는 신경 전달물질을 생성하는 뇌세포의 파괴를 막아주는 작용 을 하는 것이다. 즉, Dopamin은 BBB(Blood-brain barrier, 뇌혈관장벽)를 통과하지 못한다.반면에 도파민의 전구물질인 레보도파는 혈액내에서 능동적으로 흡수되기 전에 뇌혈관 장벽을 통과한후 도파민으로 전환되어 신경세포에 도파민을 공급해 주게 되는 Mechanism(메카니즘, 기전) 이다. 이 약물은 목표액이 큰 대제품은 아니지만 파킨슨 환자 치료에 있어 없어서는 안되는 약물이므로 마케팅은 그다지 어려운 약물이 아니었다. 해당 시장에서는 톱 제품으로서 순조로운 진행을 할 수 있었다.
PM으로서 나의 성공적인 업무 진행의 뒤에는 언제나 나의 상사이셨던 이헌구 부장님의 지원과 가르침이 있었다. 이헌구 부장님은 부드러운 지성의 관리자 타입으로 나와는 아주 대조적인 성격이셨다. 나는 탱크처럼 정면 돌파하여 밀어부치고 멧돼지처럼 목표를 향해 일직선으로 돌진하는 전사형인데 비해 이부장님은 부드러운 배려 속에서 차분히 목표룰 향하여 진행하는 전략가 타입이시기 때문에 전략안이나 마케팅 액션중 내가 빠뜨린 사항과 요점들을 빈틈없이 짚어 주시곤 했다. 마케팅 업무의 명 콤비였다. 나의 조직생활, 특히 제약마케팅 책임자로서 성장해 가는데 많은 지도를 베풀어 주신 분이며 지금도 가끔 뵙는 영원한 상사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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