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전역의 새해가 밝았다. 그토록 기다리던 전역이지만 막상 해가 바뀌니 불안감은 커지기만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취직이 어려웠던 때다. 전역하여 만일 취직이 잘 안되면 어떻게 하나. R에게 미안하고 체면이 말이 아닐텐데 어떤 분야로 나가야 할까. 걱정은 태산 같았다. 정당한 일은 아니지만 그때는 학군 장교들은 전역이 가까워지면 취직을 준비하기 위하여 대개 부대를 비우는 일이 많았다. 취업공부를 위해 지휘관들이 암묵적으로 눈감아 줬던 것이다. 나도 소대 선임하사에게 소대관리를 좀 부탁해 놓고 서울에 나와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당번병에게서 화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소대장님 시급히 들어 오십시오. 지금 사단 보안대에서 나와서 소대장님 찾고 있습니다." 나는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깜짝 놀라서 즉시 부대로 귀대하니 대대장 호출이 떨어졌다. 즉시 CP로 올라 갔더니 "너 인제 죽었어 임마. 전역 좋아하고 있네 너 전역 틀렸어 임마. 빨리 보안대로 들어가봐" 하고 대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버스를 타고 사단 보안대로 들어갔다. 내 소대내의 사고는 휴가병 구타 사건이었다. 휴가 갔다온 병사를 선임병이 선물이니 뭐니 꼬투리를 잡아 구타하니 맞은 병사가 보안대에 투서 하므로서 사건이 되었다. 거기에 소대장도 부대를 이탈해 있었으니 사건이 크게 된 것이었다. 보안대 조사관들은 모두 군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근무한다. 그들이 계급은 일병이나 상병 정도인것을 아는데 자기들끼리는 모두 이대위 김대위 라고 부르며 장교인것처럼 계급 사칭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잘못한게 있으니 어찌 하겠는가. 말 한마디 못하고 조사를 받고 조서에 지장을 다 찍었다. 조사를 다 마쳤을 무렵에 중사 계급의 군인이 사무실로 들어오니 조사관들이 모두 일어서서 겨례를 하였다. 그것을 보고 나는 속이 뒤틀리었다. 그들 스스로 나는 병사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대위가 중사한테 일어서서 먼저 경례하는 군대는 없는 것이다.
중사가 조서를 건네 받아서 검토하는 동안 나는 기다리고 서있었다. 한참후 중사가 " 이거 전역하기 어렵겠구만."하고 겁주듯이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중사가 조서를 가자고 보안대장 방으로 들어가며 나를 들어오라하니 나도 따라 들어갔다. 보안대장은 군복을 입고 있었다. 계급은 소령이었다. 조서를 건네 받아 잠깐 훑어 보더니 " 응 알있어. 나가봐."하고 중사에게 말했다. 중사가 나가고 나서 나는 바짝 얼어 있는데 보안대장이 잡시 나를 쳐다보고 있더니 "야 소중위, 취직 공부는 좀 했냐?" 하는 것이었다. 나는 왜그런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뭔가 살벌한 분위기에서 조사 받은 것하고는 전혀 다른 따뜻한 느낌에서 가슴이 울컥하였다.
다시 보안대장이 "야 잘 좀 해 놓고 나가있지 그랬나. 나 학군 5기야." 하는 것이었다. 7년 선배 였다. "이건 내가 알아서 처리 할 테니까 나가봐. 공부 열심히 하고 좋은 데 취직하기 바란다. 담에 어디서 만나면 아는체나 해라." 하며, "야 정문으로 금방 나가면 조사관들이 좀 이상하게 생각할 거니까 이쪽으로 나가라." 하면서 뒷문을 열어 주는 것이었다. 나는 감사의 인사를 하고 열어주는 문으로 나왔다. 이상하게도 뒷문으로 나오니 인가도 없는 논두렁이 되었다. 나는 아이쿠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얼른 보안대 지역을 벗어나 부대로 돌아왔다. 그후에는 6월 전역시 까지 오래 나가 있지는 않고 잠깐씩 서울에 나갔다가 돌아오곤 하였다.
말년에 위기가 있었지만 고마운 선배의 도움으로 벗어나고나니 금방 시간이 흘러 6월30일 전역의 날이 다가왔다. 소대나 중대 대대에서의 모든 송별회도 다 끝나고 전역일 오후에 사단으로 갔다. 만 2년의 자대 생활의 많은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쳤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무사히 군생활을 마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연병장에 동기들이 집합하였다. 사단 군악대의 팡파레가 울리고 전역식이 시작되어 사단장님의 훈시로 끝났다.
동기들이 모두 사단 버스에 타고 서울역으로 출발하는데 사단 정문을 나설때 군악대가 힘차게 연주를 하고 사단 기간 정교들은 도열하여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런데 유난히 나의 4중대 시절 친우인 Y중위가 버스를 타지 않고 밖에 서있는 것이었다. Y중위는 대학시절 2년동안 학군단 장학금을 받았기 때문에 2년간 복무 연장이 된 것이었다. 나는 혼자 밖에 서있는 Y중위를 보니 너무 마음이 아퍼서 잠시후 버스를 세워 달래서 다시 사단으로 들어가 Y중위를 만나 같이 M읍으로 나왔다. 기차를 타고 서울역으로 나와 하루 밤을 놀며 같이 시간을 보냈다. 후의 일이지만 Y중위는 동기들이 전역한 직후 군 장학금으로 연세대 교육대학원을 마치고 교육 사령부에서 근무하다가 중령으로 전역하였다. 서로 사느라고 바빴으니 그후 서로 만나진 못하였고 소식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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