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끝나고 9월초 2학기를 시작하며 바빴지만 겨우 시간을 내어 R과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에게 다가온 것은 만남의 기쁨이 아닌 헤어짐의 시련이었다. 학교앞에서 만난 R의 표정은 어딘가 어두운 것이었다. 우리는 말도 별로 없이 버스를 타고 을지로 입구로 나갔다. 당시 을지로 입구의 훈목 다방은 서울 시내에 몇 안되는 클래식 다방이었다. 클래식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즐겁게 들리고 원하는 곡을 DJ에게 신청해 들을 수도 있었다. 전에도 같이 가본적이 있지만 그날은 웬지 분위기가 너무나 무거웠다.
R은 학업의 부담도 물론 있었지만 나의 마음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부담이 갔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모든 일에 부담을 느끼고 한동안 마음을 쉬고 싶어하는 상태였다. "언제까지 일지 는 모르지만 어떻든 우리 조금 안만나 보는게 좋을 것 같아요" 하고 침울하게 말하는 R에게 그렇게 못하겠다고는 말할 수가 없었다. 왜 그러는지 몇마디 물어 보았지만 명확하게 그 이유도 말하지 않았다. 서로 말도 없이 찻잔을 바라보며 앉아있다가 차도 마시는둥 마는둥 다방을 나와서 무표정하게 헤어졌다. 돌아서는 길 명동거리엔 오가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지만 내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세상이 멈취버린듯 적막하기만 하였다.
그렇게 시작된 2학기의 분위기는 매일 계속 되었다. 학업에 바쁘고 또 가정교사 알바까지 해야하니 눈코 뜰새 없는 매일의 연속이었지만 가슴은 언제나 바위로 누르는듯 무겁고 말 수도 적어지고 있었다. 틈 날때 혹시하고 기독학생회 회의실에 들러 보아도 R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모든 것들이 다 시들해져 보였다. 2학기 중간고사도 끝나고 캠퍼스는 점점 갈색으로 물들어갔다. 푸르던 잔디들도 점차 말라가니 마음은 더 쓸쓸하기만 하였다. 무엇하나 스스로를 위로할 방법이 없었다. 떨어져가는 낙엽들을 바라보며 리칭의 '스잔나를 부르면 더 진한 외로움이 몰려왔다. "해는 서산에 지고 쓸쓸한 바람 부네. 날리는 오동잎 가을은 깊어만 가네. 꿈은 사라지고 바람에 날리는 낙엽 내 생명 오동잎 닮았네.." 마치 내가 그 영화의 주인공인것만 같았다.
어느날 하루의 모든 일과를 마치고 기숙사의 방에 돌아왔을때 밖에는 차가운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아끼는 소니 소형 라디오를 가지고 있었다. 모양이 정사각형이라 빵떡 라디오라고 불렀다. 작지만 소리가 아주 좋은 성능이었다. 나는 코트깃을 세우고 주머니에 빵떡 라디오를 넣고 무작정 밖으로 나가 일감 호반을 걸었다. 가을 비바람이 차가우니 인적도 드물었다. 홍예교를 건너가는데 마침 라디오에서 송창식의 '창밖에는 비오고요'라는 노래가 흘러 나왔다.
그때는 아직 젊은 송창식의 그 바이브레이션의 목소리와 멜로디가 얼마나 마음에 부딪혔는지 바람속에서 걸음을 멈추고 들었다. 학교앞에는 'OB 캐빈'이라는 작은 카페가 있었다. 그 당시는 카페라는 이름이 좀 생소하기도 했는데 그곳은 약간 가건물 같은 구조에 아저씨는 서부의 사나이 복장을 하고 있었고 실내 장식이나 분위기가 서부 개척시대의 바처럼 멋이 있는 분위기였다. 생각없이 그 캐빈에 들어가 국산 위스키 한잔을 시켜 마셨다. 한참을 멍하니 혼자 앉아있으니 좀 마음이 가라앉는 것도 같았다. 얼마나 앉아 있었는지 늦게야 기숙사로 돌아와 잠을 청한 날도 있었다.
2학기가 저물어가고 캠퍼스에 쓸쓸한 낙엽이 날리기 시작할때 R을 사랑하면 할 수록 미래에 대한 나의 불안은 반비례로 커져만 갔다. 자신있게 대쉬할수도 없었다. 다만 마음만 안타까울 뿐이었다. 마음의 상태야 어떻든 매일매일 해야하는 일과는 바쁘게 돌아갔다. 쉬는 시간도 별로 없었다. 초겨울이 다가오고 일감호반의 벤치에는 추위에 떠는 마른잎들만 날릴뿐 젊음의 활기는 사라져 가고 있었다. 시간은 계속 흐르니 어느새 기말 고사가 다가왔다.
기말 고사가 끝나면 긴 겨울 방학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나는 점차 가슴이 두근거리고 가슴이 조여왔다. 며칠후 기말고사가 끝나고 방학으로 들어가는데 이대로 R을 못만나고 헤어지고 말면 정말 이게 끝일것 같았다 그게 두려웠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만나보아야 할지 이미 한 학기동안 만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연락을 하고 뭐라고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만나자는 명분이 없었다. 몇날을 고민하고 궁리한 끝에 드디어 하나의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12월 4일 기말 고사가 마지막 끝나는 날 저녁에 내가 다니는 자양교회 청년회에서 조그만 음악모임을 열기로 생각한 것이다.
나는 겨우 R을 만나 그 프로그램이 있다고 소개하고 같이 듀엣으로 출연하지고 권유했다. 한학기동안 만나지도 못하고 지내왔는데 갑자기 나타나 같이 노래를 하자고 권하니 R도 난감했겠지만 마지못해 승락하는 눈치였다. 그때부터 곡은 동요인 '겨울나무'로 정하고 듀엣 연습을 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시간이 없으니 그리 많이 연습하진 못하고 평소 실력대로 하기로 하였다. 본래 둘이서 많이 노래를 하였던 전력이 있으니 화음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드디어 시험이 끝나고 12월 4일 저녁에 우리는 간단히 저녁을 먹고 자양교회로 갔다. 같이 기타를 치면서 동요를 노래하였다. "나무야 나무야 겨울 나무야 눈쌓인 응달에 외로히 서서 아무도 오지 않는 추운 겨울에 나무는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우리의 노래는 언제나 담백하고 화음에 기초를 둔 노래이니 누가 들어도 레몬처럼 상큼한 느낌의 노래가 되었다. 환호를 받고 모든 순서가 끝난뒤 우리는 교회를 나왔다. 밖은 추위가 몰려 오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서울역으로 나왔다. 어차피 R은 귀가해야하니 서울역은 지나가는 길이었던 것이다. 서울역앞 염천교 방향으로 그때는 포장마차가 한도 없이 줄지어 있었다. 그중 한 곳으로 권유해 들어갔다. 추위에 몸도 얼었으니 가락국수를 말아먹고 오뎅을 먹으며 얘기를 나누었다. 지난 2학기동안 만나지 못하는 사이에 생각했던 것들과 너무나 힘들었다는 것을 얘기하였지만 R은 별다른 얘기도 없었다. 다만 지난 여름 학기초처럼 싸늘한 느낌은 어느정도 가시고 없었다. 서로 지금부터 다시 만난다는 언약을 한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지난번 처럼 만나지 말자는 얘기를 다시 확인하지도 않았다. 어찌됐든 긴 방학으로 들어가며 무언가 다시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자했던 나의 계획은 어느정도 적중한 셈이었다.
겨울 방학에 수원의 형에게로 내려갔다. 형이 출근하시고 나면 낮 시간은 사실상 혼자 지내기때문에 여유가 있었다. 당시 '러브 스토리' 라는 영화가 장안의 화제여서 어느날 낮에 혼자서 영화를 보러갔다. 미국 동부의 전통있는 대 부호의 아들인 올리버(라이언 오닐)와 이태리 이민 가정의 가난한 음대생 제니(알리 맥그로우)가 신분의 장벽과 가정의 반대를 극복하고 결혼으로 맺어지는 진실한 사랑 이야기는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하버드 법대를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 올리버와 제니는 주변의 냉대에도 불구하고 둘만의 행복한 생활을 가꾸어 나간다. 하지만 너무나 행복한 그들의 사랑을 하늘의 천사들이 시기하였던 것일까. 모짜르트와 바하, 비틀스와 그리고 올리버를 사랑하였던 제니. 그녀는 회복할 수 없는 백혈병으로 그토록 애타게 사랑했던 올리버를 떠나게 되는 이야기였다.
그 영화를 보고난 후 한동안 그 감동과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추운 겨울날, 사소한 말다툼 끝에 밖으로 뛰어나간 제니를 찾으러 미친듯이 헤매던 올리버가 탈진하듯이 집으로 돌아왔을때 제니는 집앞 계단에 앉아 올리버를 기다리며 울고 있었다. 올리버가 제니를 껴안으며 화냈던 것을 사과하고 "미안해" 라고 말했을때, 제니가 "사랑은 미안하다고 말하는게 아니예요" 라던 둘의 대화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주옥같은 세리프이다. 영화의 허탈감은 마치 나의 이야기처럼 자기 대입 되었던 것이다. 명문 레드클리프 음대에 다니던 제니의 사랑과 이미지는 후에 나의 이상형 여성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오니 수원장로교회 찬양대에서는 크리스마스 칸타타를 준비하였다. 열심히 연습하고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성탄 축하 음악예배도 무사히 마치었다. 당시만해도 온 거리 거리마다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 퍼지고 가슴부푼 축하무드에 들뜬 청춘 아베크족들로 거리는 넘쳐나고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얼마나 쓸쓸하고 고독하였던가. 다정한 커플들을 바라볼 때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R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가슴을 움켜쥐게 만들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 마음을 알지 못하니 마음을 감추고 음악예배후 찬양대장의 집에서 크리스마스 이브를 같이 축하하며 보냈다. 그 이브의 밤에 내가 기타를 치며 많은 캐롤도 모두 같이 불렀지만 특히 이연실의 '수양버들 춤추는 길에'를 부르던 화음이 귀에 쟁쟁하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 올때 사실은 혼자 생각했던 것이 있었다. 어떻게 하든 R을 한번 봐야 할것 같았다. 하지만 보아서는 안된다는 마음도 또한 한편에서 자신을 질책하였다. 나는 아뭏든 이 힘든 시간을 마감하고 싶었다. 마음을 정리하고 학업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수없이 스스로 다짐하였다. 나는 기나긴 편지를 썼다. 다분히 아주 어색하고 의도적인 어투로 나의 괴로운 마음과 현실의 불확실을 얘기하고 이제 더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를 썼다. 그리고 내가 빌려줬던 악보집은 나에게는 소중한 것이니 소포로 좀 보내 주면 고맙겠다고 썼다.
며칠후 R에게서 답장이 왔다. 무엇때문에 힘드는 것인지 모르겠으며 또한 왜 악보집마져도 그렇게 소포로 보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대답이었다. 그것은 일변 냉정했지만 그 냉정함 속에서 나는 알 수 없는 따뜻한 느낌과 다행이라는 생각도 하며 한숨을 쉬었다. 사실 R이 나에 대한 한점의 느낌도 없었더라면 그 악보집을 그냥 소포로 나에게 보내 버렸으면 둘의 사이는 완전히 종말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이상하게 빌린 악보집을 보내 줄 수는 없다. 만나서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12월 28일 서울역 시계탑 아래서 보겠다는 답장이었다. 그 것은 나에게는 아마도 하늘이 내린 계기였을 것이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28일에 기차를 타고 약속된 정오 12시 정각에 서울역 시계탑 아래로 갔다. 곧 이어 얼마 지나지 않아 R의 모습이 나타났다. 겨울 방학이 시작될때 남들처럼 변변히 방학 잘 보내라는 헤어짐의 말도 하지 못하였었으니 그토록 꿈에도 보고 싶은 얼굴과의 다시 만남이었다. 그래도 간단히 짜장면이나마 점심을 먹고 수원행 열차를 다시 탔다. 악보집은 받았지만 만나기전에 이젠 만날 수 없다고 그토록 준비했던 할말은 정작 한마디도 하지 못하였다. 그러기는 새로이 오히려 반대로 수원에 가 형 한번 보지 않겠느냐고 권하였던 것이다. R은 사실 갑자기 형님을 뵌다는 것이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마지 못해 못하겠다는 말도 못하고 같이 기차에 올랐던 것이다.
수원에 내려 팔달문 근처의 작은 찻집에 R을 기다리게 해놓고 형에게로 가서 간단히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나는 실은 형에게 내가 R을 좋아 한다는 것을 털어놓고 형이 R을 어떻게 보는지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인데 내말을 들은 형도 갑자기 민망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내가 말하니 형은 나를 따라 찻집으로 나오셨다. 인사를 나누고 학창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형이 해주시며 모두 현실이 어려울텐데 교제를 하므로서 학업이 소홀해지지 않겠느냐는 우려의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R은 약간 당돌한 어조로 "그럴일은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나는 형 앞에서 난처해지는 느낌이었다. 어쨌던 형은 얘기를 마무리한후 만두국 저녁을 사주시고 헤어졌다.
나는 식사후에 R을 다시 집까지 바래다 주려고 이번엔 시외 버스를 탔다. 보고 싶은 사람을 보아서 좋은 마음과 흔쾌히 사귈 수도 없는 어려운 현실앞에서 어두워지는 마음이 교차하고 있었다. 어찌됐든 마음을 추스려서 R을 상도동 집까지 바래다 주고 발길을 돌려 수원으로 돌아오니 밤늦은 시각이었다. 들어오는 나를 보자마자 형의 대갈 일성이 떨어졌다. "장학금 못받으면 학업을 계속하기도 어려운 형편에 있는 놈이 도대체 니가 정신이 있는 놈이냐 없는 놈이냐 " 하고 고함을 치고 야단 하시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우선 소나기는 피해야 되니 만나지 않고 공부에 집중하겠다고 대답하였다. 그렇게 방황 속에서 그 겨울을 쓸쓸히 지내고 드디어 겨울방학도 끝나 3월 개강이 시작되니 서울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교비 장학생은 유지하게 되어 학업을 계속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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