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도 정치의 발호
조선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고 그 과정을 가속화하였던 것은 세도 정치의 전개였었다.
18세기 영조와 정조는 탕평책을 통해 정국을 안정시켰으나 오랜 세월 당파가 결집되어 왔고 유력 가문이 크게 성장해 있어서 강력한 국왕권을 제도적으로 확립하지는 못하였다.
1800년 6월 정조가 50세로 갑자기 승하한후 순조가 11세의 나이로 즉위하자 영조 계비인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고 그 친정 인물들이 중심이 된 벽파가 정치를 주도했다. 그때 정조의 선택을 받았었던 김조순은 정적인 벽파의 국정 주도 속에서도 1802년(순조 2) 자기 딸을 왕비로 들이는 데 성공하여 국구의 지위를 확보 하였다. 1804년에 순조의 친정이 시작되었으나 1809년 기근과 1811년 홍경래의 난으로 실패한 후 1812년에서 1826년까지는 김조순이 확고한 정치 주도력을 행사했다.
순조 27년부터 30년 5월까지는 효명세자가 부왕 순조의 명령을 받아 대리청정하면서 권력의 새로운 기반을 조성하려 했으나 이른 나이에 사망하였다. 김조순은 효명세자가 모은 정치세력을 축출하고 권력을 다시 강화했고 그가 죽은 뒤에는 아들인 김유근이 권력을 계승하여 1834년에 순조가 사망할 때까지 흔들림이 없었다.
순조는 죽기 전에 효명세자의 장인인 풍양 조씨 조만영의 가문에 속한 조인영에게 헌종을 돌볼 것을 부탁했다. 그리하여 헌종이 즉위하여 김조순의 딸 순원왕후 가문 인물들이 균형을 이룬 가운데 연합하여 정국을 주도했다.
그 뒤 1849년까지 헌종이 친정할 때는 조만영 가문이 헌종의 원조를 기반으로 권력 행사에서 유리한 입장에 있었다. 한편 헌종도 그 나름대로 국정 주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이룰 수 없었다. 헌종이 죽자 대왕대비 순원왕후는 강화도에서 농부로 살고 있던 왕족 원범을 국왕으로 선택했고, 따라서 그 재위기간에는 김좌근을 중심으로 하는 김조순 가문이 앞 시기보다도 훨씬 심화된 권력 독점을 누렸다.
상기와 같이 19세기 전반 순조, 헌종, 철종의 3대 60여 년 동안 안동 김씨 와 풍양 조씨 등 노론 출신의 몇몇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여 국정을 주도하던 부서인 비변사를 비롯한 주요 관직과 군영을 완벽히 장악하였던 것이다.
세도 정치의 폐단과 개혁 노력을 살펴 보면;
첫재, 왕권이 약화 되었다. 세도 가문이 국정을 주도하며 의정부와 6조 및 삼사의 기능도 약화 되었다. 둘째로, 정치 기강이 문란하였다. 과거제도 문란해지고 매관매직아 성행하였으며 경제적 이익은 세도 가문이 독점하였다. 셋째, 개혁의 노력으로 정부에서 암행어사를 파견하였고 내부 비판 세력도 등장했으나 세도 가문의 권위로 인해 성과를 거두기 어려웠다.
다산 정약용은 '여유당 전서'에서 세도정치의 적폐를 아래와 같이 비판하였다.
"떵떵거리는 수십 집안이 대를 이어가며 국록을 먹는다. 서로를 돌아가며 싸우고 죽이면서 약한이를 고기심아 힘센 놈이 먹어 치우네. 세력을 휘두르는 대여섯 집안, 재상자리 대감자리 모두다 차지하고 관찰사 절제사까지 다 치지하네."
철종 승하후 1863년 고종이 정권을 계승하였을때 조선은 이미 세도정치의 결과로 최악의 사태를 맞이하였다. 국력이 지나치게 약해져 거의 빈사 상태에 이른 지경이었고 그 상태에서 조선을 노린 여러 강국들이 침범이 시작되었다. 그후 고종 시대에 대원군관 명성황후의 대립과 국정의 혼란으로 국정 개선의 기회들은 사라져 버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 상황에서 결정적 패망의 일타를 가한것은 일신의 안위만을 추구했던 매국노들이 청일전쟁과 노일전쟁의 승리를 통해 동북아의 강자로 부상했던 일본에게 나라를 들어 바쳐 버렸던 것이다.
혹자들은 고종이 대한제국으로 건국한 이후 근대화를 차근차근 이뤄 나가고 있었고 몇년만 더 그렇게 나갔다면 일제 식민지 시대가 없었을 것이라는 가정의 논리를 펴는 학자들도 있으나 그것은 당시 국제 정치의 실상과 힘의 논리라는 관점에서 볼때 무리한 생각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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