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는 목적은 강성하던 한 국가인 조선왕국이 어떤 계기로 쇠퇴의 길을 걷고 종국에는 멸망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자세히 살펴 봄으로서 현재 대한민국의 타산지석으로 삼고자 함이다. 역사는 언제나 살아 움직이는 생물체이며 그 역사를 구성하고있는 구성원들의 상태에 따라 한치의 오차도 없이 반응하며 한순간의 계기에 흥망의 다른 길을 걸어가기 때문이다.
왕조 또는 국가가 일어나 흥성하고 멸망해 가는 과정에서 지도자의 역량과 역할은 절대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1392년 태조 이성계에 의해 창업된 조선왕조가 4대 세종대에 이르러 강성한 국가와 문예 부흥의 절정을 이루었으나 정확히 창업 이백년후인 1592년 선조대에 발생한 임진왜란으로 국토는 잿더미의 폐허로 변하고 말았다. 이순신 장군의 살신활약으로 7년간의 전쟁은 마무리 되었지만 사실상 조선왕조의 실제적인 멸망 과정은 이때부터 시작 되었다고 보는 관점이 맞을 것이다.
전쟁후의 잿더미 속에서 조선왕조는 재건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당파별로 갈팡질팡하였으며 선조는 지도력을 회복하지 못하였다. 정신적 가치도 무너져 내려 집권층의 문란은 날로 극심해지고 민심은 피폐일로를 걸을 수 밖에 없었다. 부패와 문란의 대표적인 과정이 바로 삼정의 문란이다. 삼정, 즉 전정 군정 환정의 문란 과정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이렇게 무너져가는 국가가 살아남게 되었다면 그것은 진리의 세상이 아닐 것이다.
1.전정의 문란
전정이란 토지에 대한 관리와 정책이다. 토지란 모든 생산과 국부의 기본적 요소인 만큼 토지정책의 성패는 정권의 흥망에 직결 된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전란후 대부분의 국토가 황폐해진 상태에서 왕실의 직할지인 궁방전과 병영의 관할인 둔전 등의 면세지와 양반 토호들이 조작하여 토지 대장에 오르지 않은 숨은땅 은결의 증가로 국고 수입은 격감되었으며 무력한 농민의 부담만 과중하게 만들었다. 조선시대의 토지 단위는 결인데 이는 토지의 절대 면적이 아니라 수확량을 기준으로 책정하였다.
즉 1결이란 곡식 300말을 생산하는 토지를 말하였으며 현재의 평 개념으로 환산한다면 그 등급에 따라 대략 3000~10000평 정도의 토지라고 볼 수 있다. 조선 전기에 농민은 그 토지 1결에 전세 4말, 삼수미 2말 2되, 대동미 12말, 결작 2말을 내면 되었다. 그러나 중기부터 전정은 부패하고 왜곡되어 갔으며 각종 명목으로 부과 되는 세금과 수수료를 바쳐야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관리들은 황폐해서 못쓰는 땅에도 세금을 부과하고 심지어 조선 중기 이후에는 백지징세라하여 실제로는 토지가 전혀 없는데 가전적, 즉 가짜 장부를 만들어 세금을 징수하거나 토저히 생산을 할 수 없는 황폐한 진전의 경우에도 세금을 징수하는 경우가 있었다.
또한 도결도 성행하였는데 이는 조선 후기에 지방 관리가 공금이나 군포를 사사로이 횡령하고 이를 미봉하기 위하여 결세를 정액 이상으로 마구 부과하고 징수하였던 경우였다. 이러한 수탈을 당하는 백성들의 원성과 고초가 어떠하였을까는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을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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