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을 사경속에 헤매던 장남은 언제인지부터 위험했던 고비를 넘어 나날이 회복의 길로 들어섰다. 부모님의 생명을 건 기원과 윤장로님및 목사님의 간절한 기도를 응답 받으신 것이다. 장남이 완전히 회복되자 부모님은 새 세상을 만난듯 하였다. 기독교란 생각해 본적도 없었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전혀 들어본적 없이 오직 부모님에 대한 유교적인 순종과 효도, 가족간의 화목 등만을 최대의 가치로 알고 사시다가 하나님이 베푸신 기적을 믿게되고 예수님의 구원이 믿어졌던 것이다.
그토록 사람이 할 모든 노력을 다해도 아무 효험이 없이 위험 일로를 헤매던 장남이 기적적으로 회복 되는 과정을 보고 어찌 그런 믿음이 생기지 않았겠는가. 하나님의 능력을 실제로 경험 하게되고 이른바 첫 믿음의 꽃신앙이 불일듯 일어나게 된것이었다. 아버지는 드디어 조상 대대로 살아왔던 전통적인 생활 방식이 답답하게 느껴지고 모든 생활의 습관을 기독교식으로 고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마치 옛 생활을 완전히 뒤집어 엎는 혁명같은 것이었다.
어머님과 할머니는 묵시적으로 동조하고 따르셨지만 평생을 지방 토호로서 유교의 예법괴 신분과 질서를 신념으로 알고 살아오신 할아버지를 설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갈등은 날로 심해져 갔다. 일본에서의 보장된 안정 생활과 엘리트의 직장마져 포기한채 오직 할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집안을 지키기 위해 귀국하셨던 효성 지극한 아버지셨는데 다른 모든 것은 다 들어 드려도 기독교에 대한 할아버지의 반대에는 한치도 포기나 타협을 하지 않고 대립하셨으니 집안의 분위기가 어찌 되었겠는가.
날로 사사건건 격화되어 가던 대립은 어느날 드디어 폭발하고 말았다. 대대로 유교의 전통을 지키며 조상에 대한 제사를 지극 정성으로 모셨던 집안이니 아랫방의 제기 뒤주에는 값비싼 칠기 제기 들이 가득하였었다. 어느날 아버지는 이 제기들을 모두 끌어내 마당 가운데에 쌓으셨다. 힐아버지는 놀라서 "이놈아 이게 무슨일이냐. 하늘과 조상이 두렵지도 않느냐" 하시면서 소리를 지르시고 거의 실신하실 지경이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 아버님, 우리 조상님의 육신은 흙이 되셨고 영혼은 모두 하늘나라에 계십니다. 아버님, 그걸 믿으셔야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신 분입니다. 하나님 외에 우상에게 절하고 섬겨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죄가 되는 거라구요." 하시면서 마당 한가운데 산처럼 쌓아놓은 각종 제기와 젯상에 석유를 끼어 얹으시고 급기야 불을 부쳐 버리고 말았다. 불은 순식간에 타올라 그 소중하던 것들이 재로 변해가고 있었다.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것이 고통스러워 아버지도 눈물을 흘리셨지만 아버지의 신앙적 소신은 흔들림이 없으셨다. 당시의 지식인으로서 아버지의 신앙적 결단과 실행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 하였다. 만일 지금의 나라면 과연 집안의 풍파를 각오하고서 그렇게 실행 할 수가 있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 후 세월이 흘러 내가 태어나고 지라서 초등학교 상급반 정도가 되었을때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일곱살때 돌아가셨으니 이미 계시지 않았다. 그 시절에는 일 주일에 한번 정도 침침한 호롱불 아래에서 아버지의 인도로 가족이 모두 가정예배를 드리고 예배가 끝나고 나면 아버지의 말씀을 듣거나 가족들이 이야기를 나누곤 하였다. 어쩌다 한번씩 아버지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기 위하여 우상숭배의 상징인 제기를 불태우던 이야기를 가끔 말씀하시곤 하셨다. 그때의 아버지의 표정과 마음은 할아버지를 거역했던 기억이 얼마나 괴로우셨던지 언제나 그것이 마음에 걸리는 한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말씀이 나올때마다 마지막에는 언제나 "부모님께 순종하고 효도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더할 수 없이 중요한 일이지만 성경에는 주안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되어있다. 지금 그때가 다시 온다해도 하나님을 섬기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니 어쩔 수 없이 다시 그리해야 할것이다" 하고 같은 말씀을 하셨다. 그 사건이 얼마나 엄청난 일이었고 우리짐안의 전환점이 되었는지 어린시절이나마 막연히 느껴지곤 했었다.
그렇게 완고하시던 할아버지의 임종이 가까워지셨을때 아버지는 매일처럼 할아버지의 귓전에다 예수님의 구원을 믿으셔야 한다는것을 끊임없이 말씀하셨다. 예수님을 믿으셔야해요. 이제 예수님의 손을 잡아야 천국에 가시는 거라구요 하고 말씀 드리고 기도하시니 자식의 그 간곡한 정성 때문이셨는지 마지막에는 믿는다고 고개를 끄덕이시며 임종하셨다. 그렇게 우리 집안은 많은 굴곡과 갈등의 과정을 딛고 기독교에 귀의하게 되었던 것이다.
'★ 일어나 저 강을 건너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등학교 합숙생활과 교회생활 (0) | 2019.10.25 |
---|---|
초등학교 입학과 유년기 생활 (0) | 2019.10.24 |
해방후 아들의 발병과 기독교와의 만남 (0) | 2019.02.04 |
부모님의 무사귀국과 해방 (0) | 2015.04.07 |
불안과 고난의 귀국선 (0) | 2015.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