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에게 - 유심초
출처 http://cafe.daum.net/c6c1958
인생을 살아기는데 있어 주인의식만큼 중요한것도 더 없을것이다. 모든 의사 결정을 자신이 내리고 그 올바른 판단과 결정을 위하여 많은 전문가나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나 최종의 인생 목표와 전략과 할일 일정 등은 자신이 결정하여 추진해 가는 것이다. 또한 다가올 일이나 상황에 대하여 주인의식을 가진자는 미리미리 예측하며 수시로 그 예측의 오류를 수정하기 위하여 끊임없는 재 검토와 분석을 그치지 않는 것이다. 위험 요소를 안고 더 큰 결과물을 얻기 위하여 맹진할 것인가 위험 요소에 대한 도전의 난이도를 낮추고 안전한 결과물을 추구할 것인가의 결정 또한 주인의식을 가진자의 중대한 결정의 몫이다.
오늘은 여말 선초의 학자이며 대 정치가였던 삼봉 정도전의 일생을 생각하며 대 천재인 그가 왜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비명에 생을 마감했던가를 생각하며 타산지석으로 삼고자 한다.
정도전(鄭道傳, 1342~98) 하면 흔히 반란을 일으키거나 역적 노릇을 한 사람쯤으로 알고 있다. 방원(芳遠, 뒤의 태종)이 아우로부터 왕의 자리를 빼앗는 과정에서 장애인물인 정도전을 제거하고 나서 그에게 온갖 혐의를 덮어씌웠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정도전을 아주 막돼먹은 인물로 역사에 기록했던 것이다. 또 한편, 조선조 건국에 절대적인 공헌을 한 정도전은 두 임금을 섬긴 변절자로 낙인 찍으면서 자기들 손으로 죽인 정몽주는 충신으로 내세웠다. 이런 이율배반의 논리가 어떻게 성립될 수 있었을까?
정도전은 개혁파였다. 그가 비록 고려 왕조를 저버렸지만 조선조로서는 정도전이 없는 새 나라의 건설을 생각할 수 없었다. 그가 자신을 ‘장량’으로 비유했는데, 장량은 나라를 세운 뒤에 “사냥개는 써먹힌 뒤 늙으면 주인에게 잡아먹힌다”며 조정에서 물러나 야인생활을 한 탓으로 목숨을 부지했다. 하지만 정도전은 끝까지 일을 벌이다가 비명에 갔다. 뿐만 아니라 방원은 사후의 그를 여지없이 깎아내려 ‘악명’을 남겼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사 교과서에서조차 그를 경망한 인물, 분란을 일으키는 인물로 써 놓아 세상 사람들을 현혹시켰다. 그가 정립한 유학의 숭상과 사대의 표방 같은 것이 후대에 와서 폐단을 일으켰지만, 이 모든 것을 전부 그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고려의 불교도 말기에는 타락했다. 조선의 유교가 후대에 와서 헛된 이야기로 흘러간 것을 그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는 적어도 고려말, 정치적 · 경제적 모순을 바로잡고 사회적 혼돈을 수습하려고 나선 혁명가요, 또 실질적인 통치이념을 정립한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재상의 나라”를 꿈꾸었던 정도전은 훌륭한 재상을 선택하여 그 재상에게 정치의 실권을 부여하여 위로는 임금을 받들어 올바르게 인도하고, 아래로는 신하들을 통괄하고 백성들을 다스리는 중책을 부여하자고 이른바 '신권정치'를 주장하였다.
즉, 정도전은 임금은 단지 상징적인 존재로만 머물고 나라의 모든 일은 신하들이 회의를 거쳐 결정하는 나라를 이상적인 나라로 생각하고 있었다. 태조 때의 정치는 태조와 그의 신임을 받은 정도전 등 소수의 재상이 이루었다. 한편 조선은 각 지역에 관리를 파견하여 “중앙집권 관료국가”가 되었다. 이것은 이전까지 지방 세력을 인정하는 봉건국가와는 비교되는 정체였다.
이와 같이 정도전의 사상과 실행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으며 그로 인하여 선초의 국기를 다지게 되었다고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방원의 칼아래 비명횡사하고 말았던것은 대체 무엇때문이었을까. 대체 삼봉은 어느시점에서 무엇을 놓쳐 그런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던가. 무엇만 잘했었다면 그런 비극이 없었을까.
그것은 인간에게 가장 제어하기 어려운 굴레인 '욕심'이 아니었을까. 삼봉정도 되는 천재에게도 그것은 통제의 한계를 벗어난 욕망이었다. 또한 다른 관점에서 말하면 '지나친 주인의식'이었다. '주인의식'이란 고귀한 개념이지만 그것 역시 과유불급의 굴레를 초월하지는 못한다. 그 '욕심'과 '지나친 주인의식으로 인해 삼봉은 자신이 통치자가 아니리 통치자의 신하라는 자기위치에대한 인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인간에게 있어 한번 사라져버린 균형감각은 그리 쉽사리 회복되지 않는다. 그로인해 삼봉은 비탄의 길로 내달리고 말았으니 이 어찌 애통한 일이 아니랴. 그러고 보면 만사에 '균형감각'처럼 중요한것도 없어 보인다. 놓칠수 없는 타산지석이다. <운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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