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슬픔을 위로하듯 봄비가 온땅을 적시고 있다. 소리없이 내리는 봄비는 수많은 추억과 영상을 가져다 주는 걸까. 불현듯 젊은날 군생활의 장면이 다시 떠오른다. 언제나 봄이면 생각나는 장면이다. 1975년 봄. 4월 초쯤이나 되었을까. 쌍용부대 10중대 1소대장이던 나는 휴전선이 시작되는 서부전선의 1번 철주부더 약 1500m 정도의 정면을 책임지고 있었다. 겨울동안 어디선가 시작되어 온통 시커멓게 불타버린 비무장 지대에도 봄이 오면 다시 파란 새싹이 돋아나고 노루들은 바로 눈앞의 철책선까지 다가와 새순을 뜯곤 하였다. 적막한 전선에도 생기가 찾아오는 것이었다.
봄비가 내리는 어느날 저녁에 중대 본부의 바라크 식당에서 월 생일자 회식이 벌어졌다. 회식이라고 해봐야 무슨 대단한 음식을 차리는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찌그러진 반합 뚜껑에 막걸리를 부어놓고 모처럼 한잔을 마시며 서로 생일자들을 축하하고 그리운 가족과 고향의 생각을 더듬는 것이었다. 그때 단골로 부르던 노래가 위의 '삼팔선의 봄'이었다. 모두가 목이 터져라 같이 합창을 할때 그 폐쇄된 군생활 속에서의 회한과 가족이나 연인에 대한 그리움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공감이었다. 어깨를 얼싸안고 모든 병사들의 가슴은 아련한 아픔으로 벅차오르곤 하였다. 수많은 날이 흘러 오늘에 이르렀어도 그 젊은 날의 영상들은 하나도 빛이 바래지않고 신기하게도 선명하게 머리속에 남아있다. 그때의 중대장님은 지금도 건강하게 지내신다. 소식 끊어진 전우들과 같이 한번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위의 노래를 부른 원로가수 최갑석선생은 이미 2004년에 세상을 떠났다. 1938년 전북 임실읍 이도리에서 태어나 뛰어난 가창력으로 6.25 한국전쟁후의 폐허 속에서 시대의 아픔과 고향을 떠난 사람들의 그리움을 수많은 히트곡으로 표현 하였다. 그후 사업에 실패하고 좌절 속에서 미국으로 이민하여 어려운 생활을 했던 탓일까. 2004년 미국 필라델피아의 템플대학 병원에서 수술후의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66세로 별세하였으니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는 고인이 되었지만 2013년 11월 임실군과 군민들이 정성을 모아 관광지 사선대에 최갑석 노래비를 제막하였다. 그의 노래와 생애를 알리고 기리기 위한 아름다운 마음이었다. 그렇다. 사람은 그렇게 떠나가도 노래는 언제까지나 남아있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