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을 모르고 살아왔다. 산을 싫어하는 무슨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지만 그다지 여유 있는 시간을 즐겨 보지 못하였다. 거의 주말도 없이 앞만을 바라보며 질주해왔던 생활이니 언제 산을 즐길만한 여건이 되질 않았었나 보다. 물론 주변에도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니 산에 다니는 사람을 만나본 적도 없다. 처녀 산행이라 해도 좋을게 기껏 가본게 삼성산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해발 1200m의 산이란 그야말로 내가 태어나서 가장 높은 곳을 걸어 올라가본 것이다. 사실은 이것도 부끄럽지만 내가 가고 싶어서 간게 아니다. 의사의 권유로 어쩔 수 없이 몸관리를 위해 떠밀려 올라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째든, 조심하라는 가족들의 만류도 물리치고 따라 나섰으니 참 나로서는 경험하지 못한 결정이었다. 그것도 엄청난 설산엘 가겠다고 출발하였으니.
2013년 1월 19일 토요일 08:00 사당역을 출발한 미니버스에 동승하여 설레는 마음으로 고속도로를 달린다. 차속에서는 산에는 워낙 문외한이니 아주 기본적인 산행 지식을 연수받으며 10:30분 경에 청태산 아래의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나는 아이젠도 착용해 본적이 없으니 그것도 지도를 받아가며 겨우 끼우고 둔한 몸으로 출발 하였다.
주차장에서 막 출발하면 휴양림 답게 아주 잘 만들어놓은 목제 데크를 따라 갈지자로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모든 시설은 잘 갖추어져 있지만 산 아래에서부터 벌써 눈이 쌓여 있는게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림된 겨울 나무의 숲사이로 걸어가는 길은 참 신비로운 아름다움이었다.
하지만 불과 얼마 올리가지 않아 이 청태산이 그리 호락 호락하게 즐기기만 할 수 있는 산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3번 등산로의 데크가 끝나자 마자 급경사사 시작된 것이다. 급 경사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보니 정상까지 1,7km의 표지판이 보였다. 나는 1.7km라는 거리가 그렇게 멀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산에는 도사가 되신 리더와 멤버들이 눈길을 잘도 헤치고 올라 가시는데 나는 숨이 턱에 차는것 같았다. 사진을 찍고 뭣할 여유도 없었다.
본래 나는 낯을 좀 가리니 처음 만난 분들과 사진을 찍는건 여간해서 어렵지만 국내나 세계의 여행지에서는 주로 해설을 곁들여 동영상 자료를 제작하여 외국인 들에게 소개하고 인터넷에 올리는 것이 취미인데 본격적인 산에서는 그것이 어렵다는 것도 알았다. 목소리도 잘 안나오는데 어떻게 해설을 하여 외국인들에게 소개할 것인가.
줄줄 흐르는 얼굴의 땀을 식히기 위해 눈을 얼굴에 문질러 대며 숨을 헉헉 내쉬며 올라가니 어느덧 청태산
정상에 닿았다. 거의 무아 지경으로 올라온 것이다. 이곳 정상을 기점으로 동북쪽은 평창군이며 남서쪽은 횡성군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산 아래는 운무에 쌓여 아득할 뿐 어디가 어딘지 정확한 분간은 어려웠다.
정상에서 내려와 9부 능선 정도에 마침 개활지가 있어서 리더님은 그곳에 점심 식사 자리를 잡았다.
눈위에서의 점심식사. 그것도 또한 처음해본 경험이다. 하지만 너무 숨이 가프게 올라왔던 탓인지 식욕은
그다지 솟지 않았다. 그래도 라면과 샌드위치를 맛나게 먹었는데 여러 멤버들이 준비해온 음식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러나 식사후 내려가는 길은 눈이 더욱 많이 쌓여 있었다. 옆으로 한걸음만 잘못
디뎌도 눈이 허벅지까지 빠질 정도였다. 멤버들중에는 비닐 썰매를 타고 미끄러져 내려가며 환성을 지르기도 하였다.
내려오면서 바라본 청태산 정상 해발 1200m 봉이다. 칼바람 소리가 날카롭게 귓전을 스친다. 본래 이 청태산의 유래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관동지방(강릉 방면)을 가던중 이곳 삽교리를 지나가게 되었다. 마침 횡성 수령이 점심을 준비하였으나 그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마침 좀 떨어진 곳의 커다란 바위에 푸르고 가로 15자 세로 20자난 되는 넓은 이끼가 낀 곳에서 어수리를 드셨다. 태조는 이곳의 아름다운 산세에 반하고 큰 바위에 놀라 청태산 이란 휘호를 직접 써서 횡성 수령에게 하사하여 부르게 되었다는 산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바위가 어디에 있는지 보고 싶었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올라갈 때와는 다른 코스로 내려오니 어느덧 걷기 좋은 길도 나타났다. 이곳은 낙엽송의 군락지였다. 잎을 잃고 눈에 서있는 낙엽송들은 이제 곧 봄이 오며 연푸른 새싹을 틔우리라. 그때가 되면 또 얼마나 싱그러운 분위기를 연출할 것인가. 멤버들이 걸어가는 모습은 전혀 피로의 기색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뭔가 부족하다는 듯이 씩씩하게 보인다.
거의 주차장 가까이 까지 내려온 곳에 자작나무 군락지가 나타났다. 나는 자작나무의 그 하얀 줄기를 너무나 좋아 하는지라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산을 내려오며 어떤 남자 회원님이 내게 질문을 하였다. "운향님은 그럼 지금까지 산에도 안가보시고 무슨 일을 하며 사신 거예요? 무슨 취미가 있었어요?" 난 숨도 차고 엉겁결에 받은 질문이라 "글세요, 뭔가 하긴 했을텐데요.." 하고 말았다. 걸어내려 오면서 스스로 생각해 보았다. 내가 뭘 했었지? 생각해 보니 내가 살아온 길이 있긴 있었다. 20대의 주말에는 대개 종로 2가 3가의 학원가에서 살았다. 좌우지간 안다녀본 학원이 없을정도.. 파고다학원 YMCA학원 헤럴드학원 공평학원 시사일본어학원 등등 수도 없다.
30대에 들어서면서 부터는 석사과정을 공부하였고 7-8년간의 주말에는 주로 미8군 영내에서 성가대를 하고 사람들과도 사귀며 살았었나보다. 주로 그기간에는 어학을 하는것이 무엇보다 재미있는 취미였다. 그후에는 일본 스위스 시드니등 해외생활과 지구촌에 걸친 출장등 10년, 그리고 30살 정도부터 지금까지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끊임 없이 즐겨온 취미가 있다. 그것은 부동산 투자 게임이다. 그당시 내 컴퓨터의 즐겨찾기에는 거의 100퍼센트 부동산 싸이트 밖에는 없었다.
부동산 투자 게임이란 이런것이다. 주중에 무슨일을 하든 점심후 등 틈나는 시간에 대법원의 부동산 경매 싸이트를 검색하여 주로 아파트, 주택, 토지 등 서울과 수도권의 유망한 물건들을 2-3건 발굴해 내는 것이다. 그리고 각종 부동산 전문 싸이트에 들어가 그 건의 물건 정보를 검색해보고 권리분석을 해보는 것이다. 금요일까지는 2,3건 꼭 확정을 한다. 토요일이 되면 해야할 학원이나 일을 마친뒤 혼자서 차를 몰고 현장 답사를 위해 출발한다.
때로는 시간이 늦어서 밤에야 현장에 도착하는 시간도 있었다. 캄캄한 밤에 혼자서 현장을 확인하기 위하여 으스스한 언덕 산을 올라가기도 하였다. 현장을 확인한 후에는 현지의 부동산들과 협의 문의를 해보는 것이다. 현지 전문가의 관점과 예측은 언제나 가장 중요한 레퍼런스이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행동들을 가족들은 통상 '바람쐬러 다닌다.' 고 하였다. 그렇게 해서 최종 권리 분석이 끝난 물건을 경매일 입찰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직접 응찰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스스로 응찰가를 설정해 보는 것이 게임이다. 후에 낙찰가를 확인 해보면 내가 응찰한 가격이 낙찰을 받았는지 떨어졌는지 확인 할 수가 있다. 낙찰을 받았다면 시가와의 차액이 바로 내가 올린 수익이다. 주로 이런 게임들을 해 보는 것처럼 재미있는것은 없었다. 최근에는 내가 좀 게을러져서이기도하고 그런 열정이 좀 식기도 하였지만 오랜기간 그것이 내가 직무관련 시간외에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취미였다.
위와 같이 살았으니 내가 산에 올라갈 틈이 언제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런 취미도 등산하는것과 비슷한 면도 있다. 정상에 올랐을때는 환희가 넘치고 뜻대로 되지 않았거나 예측이 빗나가서 유망한 물건을 놓쳤을때는 속상함과 안타까음도 맛보아야 하니 말이다..
위 부분은 산행기와 직접 관련은 없는 내용이나 질문에 답을 제대로 못드렸기에 그 대답으로서 써본 것이다.
이제는 산에 다니신 분들에게 좀 배워야 되겠다는 바램을 가슴에 생각하면서 ...
<운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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