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구 자
윤해영 작사, 조두남 작곡 , 대우합창단
일송정 푸른솔은 늙어늙어 갔어도
지난날 강가에서 말달리던 선구자
용두레 우물가에 밤새소리 들릴때
이역하늘 바라보며 활을쏘던 선구자
용주사 저녁종이 비암산에 울릴때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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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송정 푸른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두고 흐른다 ..." '선구자'는 구구절절 배인 애국의 충정으로 듣는이의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웅장하고 씩씩한 민족 가곡이다.
작곡자 조두남 선생은 1912년 평양에서 독립 사상에 충만한 갑부 가문의 3대 독자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미국 콜럼비아 대학을 나온후 안창호 선생의 독립 운동을 돕다가 투옥되어 조두남이 18세때 세상을 떠났다. 부친을 여읜 조두남이 만주를 방랑하던 21세때 우연히 윤해영이라는 청년을 만나 받은 가사가 '용정의 노래' 였다. 조두남은 일제의 압제에 짓밟혔던 조국의 굽힘없는 기상을 기리는 뜻에서 자신이 작곡한 이곡의 제목을 해방후 '선구자'라고 고쳤던 것이다.
사흘 후면 8.15 광복절 67주년 이다. 역사에 우연한 결과는 없다. 역사의 모든 결과는 바꿀수 없는 필연의 원인 위에 서있는 것이다. 망국의 한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1800년 6월 28일 갑작스럽게 승하하신 조선 왕조 22대 정조 대왕 이후에 조선의 기상은 사실상 단절되고 말았다. 그후 23대 순조, 24대 헌종, 25대 철종, 26대 고종 연간까지 근 1세기 동안 조선은 안동김씨, 풍양조씨 여흥민씨의 외척 세도 정치하에서 세계 정세의 변화에 아무런 준비도 공부도 하지 않은채 무지 몽매하게 허송세월만 하였던 것이다.
그동안 일본은 에도시대 삼백년 동안 축적된 교역의 경제력과 서구 문물의 도입으로 아시아에서 한발 앞서 메이지 유신에 성공한후 통일 일본의 신정부는 서구 열강 대열에 끼기 위해 엄청난 속도로 전 국가적 준비를 하였던 것이다. 그후 조선은 제국 주의 열강에 의해 갈기갈기 뜯어 먹히고 시달리다가 운요호사건, 강화도 조약, 동학 혁명, 을미사변, 청일 전쟁, 러일전쟁, 을사늑약을 거치는 수순에 따라 일본 제국주의 야망의 먹이가 되었고 급기야 1910년에는 아예 일제에 합병되어 조선이라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랴. 그후 우리 민족이 겪은 피눈물의 참상은 차마 필설로 형언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36년 동안의 일제 폭압에서 꿈에도 그리던 광복을 맞기까지 우리 민족은 끝까지 저항 하였다. 그간에 고귀한 생명을 아낌없이 민족의 제단에 바쳤던 상해 임시정부 영웅 열사들과 독립군의 저항은 끝없이 이어졌다. 1932년 4월 29일 상하이의 홍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왕 생일과 상하이 전승 기념 행사에서 윤봉길 의사는 도시락 물통 폭탄을 던져 단상에 명중 시켰다 이 의거로 중국 주둔 일본군 총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 대장, 상하이 일본 거류민단장 카와바타 사다쓰구 등을 죽이고 총영사 무라이,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 키치사부로 중장, 제9사단장 우에다 켄키치 중장, 주 중국 공사 시게미쓰 마모루 등에게 중상을 입혔다.
당시 중국의 국민당 총통이었던 장제스는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중국의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했다니 정말 대단하다."라며 감탄하였다. 그외 수많은 의거들은 전승 연합국 측을 감동시켰으며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 루스벨트 처칠 장제스 등의 연합국측 지도자들이 드디어 일본 패망후 한국을 독립 시키기로 결정케한 원동력이 되었던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후 독립된 조국은 분단되어 다시 전쟁이 터지고 산하는 피로 물들어 폐허화 되고 말았다. 남한만의 자유 민주주의 정권을 수립했던 우리 한국이 전쟁후 자원하나 없는 나라에서 5천만의 국민이 몸하나를 일으켜 오늘날 세계 제 9위의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어 국운이 다시 상승하기까지 1910년부터 꼭 1세기가 걸렸던 것이다. 생각해 보라. 제국주의 열강 먹이의 나라가 금번 런던 올림픽에서는 세계 5위의 나라가 되었으며 일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우리를 먹었던 쟁쟁한 제국들이 우리 대~한민국의 발바닥 아래에 있는 형국이 된 것이다. 상상이나 할 수 있었던 일인가.
이제 광복 67주년. 우리 민족은 다시한번 허리띠를 졸라매고 냉정하게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아직 샴페인을 터트릴 때가 아니다. 아직 우리는 갈길이 멀다. 스포츠에서는 이만큼 올라갔다해도 노쇠한 선진의 나라들은 아직도 우리 위에 있다. 총체적 국력으로 그들을 우리 발아래 두기까지는 머나면 길이요 아직 우리는 배가 고프다. 우리가 만일 단결하여 국익을 위한 총력전으로 나가지 못하고 모처럼 상승하는 국운과 민족의 기맥을 다시 약화 시킨다면 세계사의 무대에서 한민족이 선진 강국으로 꽃피어질 날은 어쩌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후손들에게 그 오욕을 어떻게 당하게 할 것인가. 그 부끄러움을 무엇으로 씻을 것인가.
타 부문은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이다. 부디 정치가 국익만을 중심으로 생각하여야 한다. 당익 파벌익 사리를 위해 싸우는자들은 민족의 반역자들이다. 그들의 자손은 역적의 자식들이 될 것이다. 역사는 분명히 평가할 것이다. 조선 중 후기를 통하여 희대의 간신과 국가를 전횡하고 가문의 이익만을 위해 진흙탕 개싸움을 했던 무리들이 누구인지 우리는 알고 있지 않는가. 역사의 눈길은 매서운 것이다. 후세의 평가를 정치가들은 부디 두렵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운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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