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시내에 위치한 바티칸 시국. 세계에서 가장 적은 초 미니 나라이다. 아침 9시에 도착했으나
이미 입장하려는 관광객들로 긴줄이 붐비고 있었다. 중세처럼 각국의 황제를 승인하던 권력기관
은 아니지만 전세계 카톨릭의 본산으로서 그 위치는 확고하게 보인다. 다만 교황님이 타 종교와
도 좋은 관계를 유지 한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1929년에 독립한 초 미니국가 바티칸 시국의 내부 풍경이다. 넒이는 15,000평이며 둘레는 4Km
이다. 세계 각국으로부터 밀려오는 관광객들로 1년 내내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이다.
바티칸 시국내 박물관에 들어갔다. 세계의 유수한 작품들이 전시되어있다. 특이한 것은 석상들의
일부가 훼손되어있고 특히 성기가 훼손 된것이 많았다. 그 연유는 1307년에 신임 교황이 부임하여
보니 이교도의 석상이 너무나 많아서 그 외경심을 저해 하고자 석상을 훼손하였다한다. 또한 다른
설로는 당시 불임 여자가 이 석상의 성기를 잘라 가지고 있으면 임신할 수 있다는 풍설이 있어
그로인해 훼손 된것도 있다한다.
이곳은 회전의 전람실이라 불리우는 방으로서 12,3세기에 유럽을 지배하였던 영웅이나 성인들의
모습이 조각되어있는 전람실이다.
이곳은 성베드로 대성당이다. 세계 최대의 성당. 여기에 두번째 들어와 보지만 언제나 그 거대하
고 웅장한 규모에 압도당하는 마음이다. 중간에 많은 순례객들이 몰려있는 곳은 직전의 교황님
이셨던 요한 바오로 2세가 묻혀계신 곳이다. 모두가 그곳에 촛불을 밝히고 묵도를 드린다.
이렇게 거대한 성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노동력과 재원이 소요 되었을까. 노동력은
세계에서 몰려온 자원 봉사자가 많았고 유료 노동력도 있었다고한다. 그러나 그 재원이 어마어마
하였을 것이다. 그 조달을 위해 면죄부를 판매 할 수 밖에 없었으니 그것은 참 지금 생각해도
유감스러운 역사적 사실이며 그로인해 또 종교개혁이 연유 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역사란 모든것이
인과의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는 생각을 지울수 없었다.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시몬 베드로는 스승인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날 체포 될것 같은
두려움에 떨며 그 스승을 모른다고 세번이나 부인하였다. 그러나 곧 스승님의 말씀이 생각나 밖
으로 나가 통곡하며 후회 하였다 그 후 곧 로마로 돌아와 예수를 증거하다가 체포되어 처형 당하
였다. 스승님과 같이 바로 서서 십자가에 못박힐수 없다며 거꾸로 매달린 십자가에 처형 되었다.
그 대 사도 시몬 베드로의 시신은 지금도 저 앞 대 제단 아래에 잠들어 계신다. 진정한 의미에서
의 교황은 성 베드로 한분이시다.
성 베드로 대성당을 나오면 성당앞의 대광장이다. 이곳에서 부활절 미사가 열릴때면 세계의 각국
으로부터 카톨릭 성도들이 몰려오고 교황님이 저 창문을 열고 운집한 참배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시는 곳이다. 1020년에 이렇게 거대한 성딩을 지었으니 참 대단한 곳이다.
로마의 뒷골목 길이다. 다른 이탈리아의 도시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7,800년 전에 지은 이
건물들에서 지금도 그 자손들이 살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아파트들은 왜 20년만 되어도 재건축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일까. 우리나라도 무언가 건축법을 개선해야만 할 것 같다.
로마시내의 중심부이다. 스페인 광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이곳은 서울로 말하자면 명동이나 청담동 같은 곳이다. 세계의 유명브랜드 가게들이 모두 이곳에
모여있다. 저 맞은편으로 보이기 시작한 하얀 계단이 바로 스페인 계단이다. 18세기에 스페인에
의해 건축되었다.
오른쪽은 당시의 스페인 대사관 건물이며, 윗쪽의 하얀 첨탑은 성삼위 교회이다. 그러나 이 계단
이 유명해 진건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이 주연했던 영화 '로마의 휴일'이 세계의 인기를 끌면
서 부터이다. 오드리 헵번은 아마도 이 계단 중간쯤 어디에 앉아 있었을 것이며 머리를 컷트한곳은
저왼쪽 거리 어디쯤의 미용실일 것이다.
여기는 스페인 광장으로 부터 가까운 거리에 있는 트레비 분수이다. 트레비 분수란 우리말로 하면
삼거리 분수라는 의미이다. 대단한 뜻이 있는건 아니다. 그러나 세계의 관광객이 이분수를 보기위
해 모여들고 특히 연인들은 모두 이곳에 동전을 던지며 그들의 사랑이 영원하기를 기원한다.
동전은 매일 아침 수거되어 불우한 사람들을 돕는 자선사업에 쓰인다.
언덕위에 우뚝선 건물은 빅토리아 임마뉴엘 2세의 기념관이다. 그다지 오래된 건축물은 아니고
1세기 정도 되었다. 그러나 로마 시민들은 이건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연과의
조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나..
이곳은 베네치아 광장이다. 1861년에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를 재통일 하기전에 중세의 이탈리아는
27개의 공국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소라색 건물은 그 당시 베네치아 공국의 대사관 건물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고대로 부터의 속담이 있었지만 로마에서의 모든 길은 또한 이 베네치아
광장으로 통한다.
이 건축물은 로마의 트라니아누스 황제가 동유럽의 루마니아를 정복한후 그 정복을 기념하기위해
지은 건축물이다. 루마니아 정복과 관련되어 유일하게 남아있는 건물이다.
여기는 포로 로마노, 즉 로마의 건국 발상지이다. 세계제국을 건설하였던 로마는 BC 257년에
로물루스가 테베레 강가의 저 팔라틴 언덕에 나라를 세웠던 것이다. 5현제 시대의 강력했던
로마 제국도 5현제중 마지막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그 아들 코모두스에 의하여 암살
되고 자질이 부족했던 코모두스가 황제에 오른후 부터 국력이 약해지기 시작하였었다. 왼쪽의
갈색 건물은 당시의 의사당 건물이다.
이곳은 본래 로마제국의 폭군 네로 황제의 동상이 서 있었던 자리이다. 그후 이 원형 경기장인
콜로세움을 건축 하였다. 이 거대한 경기장은 당시에 5만명을 일시에 수용하였는데. 80개의
문으로 5만명이 입장하는데 단 15분이 소요 되었으며 퇴장시에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다. 이번
엔 그 내부까지 볼 시간이 없었지만 수년전 들어가본 기억에 의하면 아주 잘 정돈된 계단들이
신분에 따라 좌석이 배치 되어 있었으며 검투사들은 경기장의 지하 아래에서 대기하고 이름이
불리워지면 지상의 경기장으로 올라와 한사람이 죽을때까지 검투를 계속하였던 것이다.
스펜인 광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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