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illy의 해외여행 Foreign Tour

오스트리아에서 이탈리아로/베네치아, 2011 9 15 (2)

Billy Soh 雲 響 2011. 10. 11. 00:23

 

달리는 차창 너머로  북부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고산 지대 풍경이 펼처진다. 산위에 있는 마을들과

중세의 성이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다.

 

귀에 익은 이탈리아 가곡 '오 쏠레 미오(오 맑은 태양)' 을 들으며 창밖을 보니 온통 절벽 산이

끝없이 이어진다.

 

또다른 모습의 절벽 산들.

 

 

세계의 명소인 해상 도시 베네치아를 향해 쾌속선이 달린다. 베네치아는 본래 해상에 존재하는

자연의 섬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 졌다. 그런 거대한 해상 도시를 만들었던 것은 역시

전쟁으로 부터 보호하거나 또는 전투에서 유리한 방어 작전을 하기 위한 것이 근본적인 목적이

었다. 

 

 

베네치아는 육지 부분과 해상도시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육지 부분의 항구에서 승선하여

달리다 보면 해상 베네치아 의 선착장에 닿게 된다. 십자군 전쟁이 한창이던 1200년대 가장

번성했던 베네치아는 유럽 각국에서 모여든 십자군 기사단의 주요 출정 기지였다.

이곳을 출발한 셀수도 없는 기사단이 기독교 성지 예루살렘을 이교도로 부터 탈환하기

위하여 수백년 동안 전쟁을 치뤘던 것이다.

 

바닷속 깊이 통나무를 박으면 시간이 흐르면서 통나무는 바다 속 갯벌과 하나가 되어  굳어지고

흔들림 없는 기초 기둥이 되었다. 그 기둥들 위에 판을 깔고 건물을 건축 했던 방식이 베네치아의

건설이었다. 1200 년대 가장 무서운 적은 아시아로 부터 침입해온 훈족, 즉 몽고족었다. 육지전에는

강한 몽고군 이었지만 해전에는 약했으므로 물의 도시 베네치아는 그 침략으로 부터 지켜내어

드디어는 해상권과 무역을 장악하고 부를 축적해 갔던 것이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 몇년 마다 한번씩 바닷물의 수위가 높아져 베네치아가 점점 바다 속으로 잠기게

되지 않을까 걱정 하고 있다. 유네스코와 이탈리아 중앙 정부는 거센 조류의 흐름으로 부터 베네치아

를 보호 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현재 진행 중이다. 요컨대 바닷속에 물막이 보를 설치하고 수문 부분만

열어두어 부식해가는 물속 통나무를 보존하는 방식이다.

 

 

4계로 유명한 안토니오 비발디는 베네치아 출신이다.

 

해상도시 베네치아를 보러 1년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세계의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 육상 교통 수단은 없다. 수상 택시나 옛날식 곤도라가 그대로 지금도 교통 수단이다.

 

 

어느시대 어느나라나 범죄자들은 있게 마련. 이곳은 1200 년대 베네치아의 죄수들을 수용하던

감옥이었다.

 

 

여기는 1200 년대 흥성했던 베네치아 왕국의 해군 기지였다. 이곳에서 유럽 각국의 기사단이

집결해 십자군으로서 출정했었던 모습을 그려 보았다. 지금은 곤도라의 선착장 이 되어 있지만..

 

 

이 건물은 Palazzo Ducale(팔라조 두칼레/두칼레 궁전)이다.베네치아 왕국의 정궁이었으며

모든 정치는 이곳에서 행하여 졌었다. 꼭대기에 ㅆ는 조각상의 여신이 들고있는 오른손의

칼은 베네치아의 함과 권위를 상징하며 왼손의 저울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재판을 의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