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illy의 한국사 이해

한민족이여, 92년전의 3.1절, 그 함성 그 절규를 정녕 잊었는가 (4)

Billy Soh 雲 響 2011. 3. 1. 22:05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태화관에 모인 민족대표 33인중 29인.  처 http://cafe.daum.net/ycnambu

 

 

한민족이여, 92년전의 3.1절, 그 함성 그 절규를 정녕 잊었는가

 

그날 ,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인사동 태화관에서 한용운이 읽었던 기미 독립 선언서를 다시 한번 읽어 보았다.

어려운 한문으로 씌어 있으니 때로는 이해가 어려운 부분도 있다. 그러나 우리민족 불굴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명문이니

후손으로서 가슴에 새겨 마땅하리라 생각한다.

 

아울러 나는 이기회를 빌어 국가의 정책을 주관하는 사람들에게 제안 하고 싶다.

 

첫째, 헌법에 명기된 3.1정신을 숭고히 여기고 앙양하는 교육 정책을 실행해 나가야 한다.

이는 민족의 자존과 정체성이니, 이러한 민족혼을 잃어버리고도 전도가 빛나는 국가를 이룩하리라는 기대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진국 아니라 세계의 어떤 국가나 민족으로 부터도 우리민족 보다 나은 학문과 제도나 기예에 대해서는

일각이라도 신속히 우리것으로 만들어 도입 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 모든 변화에는 한민족의 정체성과 혼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 주체적인 민족혼도 버리고 분별없이 겉으로 들어나는 외래 문화에만 휩쓸린다면 그것은 아무리 상부

문화가 화려하게 발달한다 하더라도 뿌리가 없어 지속적인 자양분을 공급하지 못하고 어떤 환경의 시련을 만난

다면 하루 아침에 물거품 처럼 사라질 운명에 필연적으로 처하게 될 것이다.

 

둘째, 민족정신의 이론적 교육에 수반하여, 민족의 얼이 빛나는 선열들의 유적지 방문 프로그램을 교육 과정에

필수 포함 시켜야한다.

이론과 실습은 언제나 바늘과 실의 관계이다. 실습 없이 이론은 확립 될 수 없다.

 

셋째, 독립 운동의 후손들을 적극 발굴하여 그 업적을 기리고 존경하는 분위기를 고양 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국가 위기시에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쳐 지키려 할 것인가.

 

넷째, 현대의 공정한 애국 차원에서 과거에 병역을 미필한 국가 지도층 인사들에 대하여 재평가 복무

할 수 있는 솔선 수범 기회를 우선적으로 부여 하여야 한다.

각종 원인으로 적령 병역을 필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현재 그 미필의 사유가 해소 또는 개선 되었다면 현역,

보충역 또는 국가 봉사등의 방법로 복무토록 하여야 한다. 만일 그 모든 방법도 어렵고 가능치 않다면 금전적 방법으로

라도 군필에 필적하는  조치를 스스로 솔선 수범 토록 법규 제정을 하여야 한다.자본 주의 국가이므로 모든 신역은 금전의

가치로 환산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여의 방법은 현재의 소득 정도나 재산의 소유 정도에 따라 차등 부여 하는

것이 옳다. 있는 사람은 돈 좀 내서 군대 빠지고 없는 사람만 위험한 군대에 가란 말이냐 하고 반대가 있을 것이므로

그러한 국민 정서를 보상하기에 충분한 차등 부여를 하여야 한다. 납부한 충분한 그 예산으로 현역 복무자를 만족할

만한 수준에서 보상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진정한 공정사회로 가는 길이 아니겠는가. 뿐만 아니라 미필자들도

국가를 위하여 똑같은 비율로 부담했다는 자부심이 고양될 것이며 떳떳하게 큰소리 칠수도 있을테니 얼마나 좋은 제도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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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글을 마치며 우리 가정과 관련되는 사항이 있어 자손을 위해서라도 잊지 않도록 기록해 두고자 한다.

민족 대표 33인(그날 모임은 29인)이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고 스스로 일제 경찰에 체포당하여 갔던 장소 태화관에

관한 이야기이다. 태화관은 현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에 있는 12층 태화 빌딩이 서있는 자리인데, 이곳은 본래 

조선 전기에는 중종반정에 가담해 정국공신 2등에 책록된 구수영이 태화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살았던 곳이다. 조선

후기에는 안동김씨 세도가 김흥근의 소유를 거쳐 다시 헌종의 후궁인 경빈 김씨의 순화궁이 되었다가, 일제강점기

초기에는 이완용의 소유로 넘어갔다.


1918년, 궁내부 주임관과 전선사장으로 있으면서 고종에 이어 순종의 어수라를 책임 지고있던 안순환이 인수해 명월관의

별관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안순환은 궁중에서 퇴임한후 명월관(현재 동아일보사 자리)을 설립하였으며 인수한

건물인 태화관은 조선의 정통 궁중요리를 대접하였기 때문에 서울의 부호들이 많이 이용하였다. 또한 크고 작은 방이

많았기 때문에 중국이나 만주에서 활동하는 독립 투사들과 국내 조직간의 연락을 주고 받는 장소로도 이용 되는 서울의 최고

명소였다.

 

안순환은 민족 정기를 되살리는 데에 뜻을 두어 3.1운동 거사 당일, 태화관을 손병희를 비롯한 민족대표 33인 (그날은 

김병조, 길선주, 유여대, 정춘수등 불참한 4인외 29명) 이 모여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는 장소로

제공 하였다. 일제는 3.1운동을 잔인하게 진압한후  태화관을 탄압하여 폐쇄 하였으며 안순환은 몰락 하였다. .

그러나 그 후 재기하여 다시 금천구 시흥동 169-53 일대에 녹동서원을 설립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일에 전력하였다.

 

 안순환 (安淳煥, 1871∼1942), 그 분이 바로 내 아내의 외 증조부, 즉 장모님의 할아버님이 되신다.내 아내는

어린시절 외할머니 댁에서 주로 자랐는데 그 외할머니의 아버님이 되시는 것이다. 내가 결혼 후에는 맞벌이 하는

우리 부부를 위해 외할머니가 우리집으로 오셔서 우리 애들을 길러 주기도  하셨으니 아내에 이어 2대를 길러주신 은혜를

입은 분이다. 거기다 아내는 조선 말기 60년간의 지나친(?) 세도정치로 국정을 주도했고, 태화관을 소유했던 안동김씨의

가문 출신이니.. 참, 어찌 태화관등 역사의 안타까운 인연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났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집안 얘기하여 죄송하며.. 이만 줄입니다.)             (雲 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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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립 선 언 문 (현대문 해석)

 

우리는 여기에 우리 조선이 독립된 나라인 것과 조선 사람이 자주하는 국민인 것을 선언하노라. 이것으로써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가 평등하다는 큰 뜻을 밝히며, 이것으로써 자손만대에 일러 겨레가 스스로 존재하는 마땅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도록 하노라.

 

반만년 역사의 권위를 의지하고 이것을 선언하는 터이며, 이천만 민중의 충성을 모아 이것을 널리 알리는 터이며, 겨레의 한결같은 자유 발전을 위하여 이것을 주장하는 터이며, 사람된 양심의 발로로 말미암은 세계 개조의 큰 기운에 순응해 나가기 위하여 이것을 드러내는 터이니, 이는 하늘의 명령이며, 시대의 대세이며, 온 인류가 더불어 같이 살아갈 권리의 정당한 발동이므로, 하늘 아래 그 무엇도 이것을 막고 누르지 못할 것이라. 낡은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 강권주의의 희생을 당하여, 역사 있은 지 여러 천년에 처음으로 다른 민족에게 억눌려 고통을 겪은 지 이제 십년이 되도다. 우리가 생존권마저 빼앗긴 일이 무릇 얼마며, 정신의 발전이 지장을 입은 일이 무릇 얼마며, 겨레의 존엄성이 손상된 일이 무릇 얼마며, 새롭고 날카로운 기백과 독창성을 가지고 세계문화의 큰 물결에 이바지할 기회를 잃은 일이 무릇 얼마인가!

 

오호, 예로부터 억울함을 풀어보려면, 지금의 괴로움을 벗어나려면, 앞으로의 두려움을 없이하려면, 겨레의 양심과 나라의 도의가 짓눌려 시든 것을 다시 살려 키우려면, 사람마다 제 인격을 옳게 가꾸어 나가려면, 불쌍한 아들딸에게 부끄러운 유산을 물려주지 않으려면, 자자손손이 길이 완전한 행복을 누리게 하려면, 우선 급한 일이 겨레의 독립인 것을 뚜렷하게 하려는 것이라. 이천만 각자가 사람마다 마음 속의 칼날을 품으니, 인류의 공통된 성품과 시대의 양심이 정의의 군대가 되고, 인륜과 도덕이 무기가 되어 우리를 지켜주는 오늘, 우리가 나아가 이것을 얻고자 하는데 어떤 힘인들 꺾지 못하며, 물러서 계획을 세우는데 무슨 뜻인들 펴지 못할까!

 

병자수호조약 이후, 시시때때로 굳게 맺은 약속을 저버렸다 하여 일본의 신의 없음을 탓하려 하지 아니하노라. 학자는 강단에서, 정치인은 실생활에서, 우리 조상 때부터 물려 받은 이 터전을 식민지로 삼고, 우리 문화민족을 마치 미개한 사람들처럼 대하여 한갓 정복자의 쾌감을 탐낼뿐이요, 우리의 영구한 사회의 기틀과, 뛰어난 이 겨레의 마음가짐을 무시한다 하여, 일본의 옳지 못함을 책망하려 하지 아니 하노라. 자기를 일깨우기에 다급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원망할 여가를 갖지 못하였노라. 현재를 준비하기에 바쁜 우리에게는 예부터의 잘못을 따져볼 겨를도 없노라. 오늘 우리의 할 일은 다만 나를 바로잡는 데 있을 뿐, 결코 남을 헐뜯는데 있지 아니하도다. 엄숙한 양심의 명령을 따라 자기 짐의 운명을 새롭게 개척하는 일일 뿐, 결코 묵은 원한과 일시의 감정을 가지고 남을 시기하고 배척하는 일이 아니로다. 낡은 사상과 낡은 세력에 얽매인 일본의 위정자의 공명심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부자연스럽고 불합리한 이 그릇된 현실을 고쳐서 바로잡아,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올바른 바탕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이라. 처음부터 이 겨레가 원해서 된 일이 아닌 두 나라의 합병의 결과는 마침내 억압으로 이뤄진 당장의 편안함과, 차별에서 오는 고르지 못함과 거짓된 통계수자 때문에, 이해가 서로 엇갈린 두 민족 사이에 화합할 수 없는 원한의 도랑이 날이 갈수록 깊이 패이는 지금까지의 사정을 한번 살펴보라. 용감하게 옛 잘못을 고쳐 잡고, 참된 이해와 동정에 바탕한 우호적인 새 시대를 마련하는 것이, 서로 화를 멀리하고 복을 불러들이는 가까운 길인 것을 밝히 알아야 할 것이 아니냐! 또한 울분과 원한이 싸이고 싸인 이천만 국민을, 힘으로 붙잡아 묶어둔다는 것은 다만 동양의 영원한 평화를 보장하는 노릇이 아닐뿐 아니라, 이것이 동양의 평안함과 위태함을 좌우하는 사억 중국사람들의 일본에 대한 두려움과 새암을 갈수록 짙어지게 하여, 그 결과로 동양 전체가 함께 쓰러져 망하는 비운을 초래할 것이 뻔한 터에, 오늘 우리의 조선독립은 조선사람으로 하여금 정당한 삶과 번영을 이루게 하는 동시에, 일본으로 하여금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 동양을 버티고 나갈 이로서의 무거운 책임을 다하게 하는 것이며, 중국으로 하여금 꿈에도 피하지 못할 불안과 공포로부터 떠나게 하는 것이며, 또 동양의 평화가 중요한 일부가 되는 세계평화와 인류복지에 꼭 있어야 할 단계가 되게 하는 것이라. 이것이 어찌 구구한 감정상의 문제이겠느냐!

 

아아 새 하늘과 새 땅이 눈 앞에 펼쳐지누나. 힘의 시대는 가고 도의의 시대가 오누나. 지나간 세기를 통하여 깍고 다듬어 키워온 인도적 정신이, 바야흐로 새 문명의 서광을 인류의 역사 위에 던지기 시작하누나. 새 봄이 온 누리에 찾아들어 만물의 소생을 재촉하누나. 얼음과 찬 눈 때문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것이 저 한 때의 시세였다면, 온화한 바람, 따듯한 햇볕에 서로 통하는 낌새가 다시 움직이는 것인 이 한 때의 시세이니, 하늘과 땅에 새기운이 되돌아오는 이 마당에, 세계의 변하는 물결을 타는 우리는 아무 주저할 것도 없고 아무 거리낄 것도 없도다.

 

   우리가 본디 타고난 자유권을 지켜 풍성한 삶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것이며, 우리가 넉넉히 지닌 바 독창적 능력을 발휘하여 봄기운이 가득한 온 누리에 겨레의 뛰어남을 꽃 피우리라. 우리는 그래서 분발하는 바이라. 양심이 우리와 함께 있고, 진리가 우리와 더불어 전진하나니, 남자.여자,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음침한 옛집에서 힘차게 뛰쳐나와 삼라만상과 더불어 즐거운 부활을 이룩하게 되누나. 천만세 조상들의 넋이 우리를 안으로 지키고, 전 세계의 움직임이 우리를 밖으로 보호하나니, 일에 손을 대면 곧 성공을 이룩할 것이라. 다만 저 앞의 빛을 따라 전진할 따름이로다.

 

공약삼장

 

<
하나> 오늘 우리들의 이 거사는 정의.인도.생존.번영을 찾는 겨레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의

정신을 발휘할 것이고,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치닫지 말라.

 

<하나> 마지막 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마지막 한 순간에 를 때까지, 민족의 올바른 의사를 시원스럽게 발표하라.

 

<하나> 모든 행동은 먼저 질서를 존중하여, 우리들의 주장과 태도가 어디까지나 공명정대하게 하라.

 

나라를 세운지 사천이백오십이년 되는 해 삼월 초하루

 

조선민족대표 

 

병희 길선주 이필주 백용성 김완규 김병조 김창준 권동진 권병덕 나용환 나인협 양전백 양한묵 유여대 이갑성 이명룡 이승훈 이종환 이종일 임예환 박준승 박희도 박동완 신흥식 신석구 오세창 오화영 정춘수 최성모    한용운 홍병기 홍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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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 立 宣 言 文

吾等(오등)은 玆(자)에 我(아) 朝鮮(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 此(차)로써 世界萬邦(세계 만방)에 告(고)하야 人類平等(인류 평등)의 大義(대의)를 克明(극명)하며, 此(차)로써 子孫萬代(자손만대)에 誥(고)하야 民族自存(민족 자존)의 政權(정권)을 永有(영유)케 하노라.

半萬年(반만년) 歷史(역사)의 權威(권위)를 仗(장)하야 此(차)를 宣言(선언)함이며, 二千萬(이천만) 民衆(민중)의 誠忠(성충)을 合(합)하야 此(차)를 佈明(포명)함이며, 民族(민족)의 恒久如一(항구여일)한 自由發展(자유발전)을 爲(위)하야 此(차)를 主張(주장)함이며, 人類的(인류적) 良心(양심)의 發露(발로)에 基因(기인)한 世界改造(세계개조)의 大機運(대기운)에 順應幷進(순응병진)하기 爲(위)하야 此(차)를 提起(제기)함이니, 是(시)ㅣ 天(천)의 明命(명명)이며, 時代(시대)의 大勢(대세)ㅣ며, 全人類(전 인류) 共存 同生權(공존 동생권)의 正當(정당)한 發動(발동)이라, 天下何物(천하 하물)이던지 此(차)를 沮止抑制(저지 억제)치 못할지니라.

舊時代(구시대)의 遺物(유물)인 侵略主義(침략주의), 强權主義(강권주의)의 犧牲(희생)을 作(작)하야 有史以來(유사이래) 累千年(누천 년)에 처음으로 異民族(이민족) 箝制(겸제)의 痛苦(통고)를 嘗(상)한 지 今(금)에 十年(십 년)을 過(과)한지라. 我(아) 生存權(생존권)의 剝喪(박상)됨이 무릇 幾何(기하)ㅣ며, 心靈上(심령상) 發展(발전)의 障애(장애)됨이 무릇 幾何(기하)ㅣ며, 民族的(민족적) 尊榮(존영)의 毁損(훼손)됨이 무릇 幾何(기하)ㅣ며, 新銳(신예)와 獨創(독창)으로써 世界文化(세계문화)의 大潮流(대조류)에 寄與補裨(기여보비)할 奇緣(기연)을 遺失(유실)함이 무릇 幾何(기하)ㅣ뇨.

噫(희)라, 舊來(구래)의 抑鬱(억울)을 宣暢(선창)하려 하면, 時下(시하)의 苦痛(고통)을 파탈하려하면 장래의 협위를 삼제하려 하면, 民族的(민족적) 良心(양심)과 國家的(국가적) 廉義(염의)의 壓縮銷殘(압축소잔)을 興奮伸張(흥분신장)하려 하면, 各個(각개) 人格(인격)의 正當(정당)한 發達(발달)을 遂(수)하려 하면, 可憐(가련)한 子弟(자제)에게 苦恥的(고치적) 財産(재산)을 遺與(유여)치 안이하려 하면, 子子孫孫(자자손손)의 永久完全(영구완전)한 慶福(경복)을 導迎(도영)하려 하면, 最大急務(최대급무)가 民族的(민족적) 獨立(독립)을 確實(확실)케 함이니, 二千萬(이천만) 各個(각개)가 人(인)마다 方寸(방촌)의 刃(인)을 懷(회)하고, 人類通性(인류통성)과 時代良心(시대양심)이 正義(정의)의 軍(군)과 人道(인도)의 干戈(간과)로써 護援(호원)하는 今日(금일), 吾人(오인)은 進(진)하야 取(취)하매 何强(하강)을 挫(좌)치 못하랴. 退(퇴)하야 作(작)하매 何志(하지)를 展(전)치 못하랴.

丙子修好條規(병자 수호 조규) 以來(이래) 時時種種(시시종종)의 金石盟約(금석맹약)을 食(식)하얏다 하야 日本(일본)의 無信(무신)을 罪(죄)하려 안이 하노라. 學者(학자)는 講壇(강단)에서, 政治家(정치가)는 實際(실제)에서, 我(아) 祖宗世業(조종세업)을 植民地視(식민지시)하고, 我(아) 文化民族(문화민족)을 土昧人遇(토매인우)하야, 한갓 征服者(정복자)의 快(쾌)를 貪(탐)할 뿐이오, 我(아)의 久遠(구원)한 社會基礎(사회기초)와 卓락(탁락)한 民族心理(민족심리)를 無視(무시)한다 하야 日本(일본)의 少義(소의)함을 責(책)하려 안이 하노라. 自己(자기)를 策勵(책려)하기에 急(급)한 吾人(오인)은 他(타)의 怨尤(원우)를 暇(가)치 못하노라. 現在(현재)를 綢繆(주무)하기에 急(급)한 吾人(오인)은 宿昔(숙석)의 懲辯(징변)을 暇(가)치 못하노라.

今日(금일) 吾人(오인)의 所任(소임)은 다만 自己(자기)의 建設(건설)이 有(유)할 뿐이오, 決(결)코 他(타)의 破壞(파괴)에 在(재)치 안이하도다. 嚴肅(엄숙)한 良心(양심)의 命令(명령)으로써 自家(자가)의 新運命(신운명)을 開拓(개척)함이오, 決(결)코 舊怨(구원)과 一時的(일시적) 感情(감정)으로써 他(타)를 嫉逐排斥(질축배척)함이 안이로다. 舊思想(구사상), 舊勢力(구세력)에 기미(기미)된 日本(일본) 爲政家(위정가)의 功名的(공명적) 犧牲(희생)이 된 不自然(부자연), 又(우) 不合理(불합리)한 錯誤狀態(착오상태)를 改善匡正(개선광정)하야, 自然(자연),又(우) 合理(합리)한 政經大原(정경대원)으로 歸還(귀환)케 함이로다.

當初(당초)에 民族的(민족적) 要求(요구)로서 出(출)치 안이한 兩國倂合(양국병합)의 結果(결과)가,畢竟(필경) 姑息的(고식적) 威壓(위압)과 差別的(차별적) 不平(불평)과 統計數字上(통계숫자상) 虛飾(허식)의 下(하)에서 利害相反(이해상반)한 兩(양) 民族間(민족간)에 永遠(영원)히 和同(화동)할 수 없는 怨溝(원구)를 去益深造(거익심조)하는 今來實積(금래실적)을 觀(관)하라. 勇明果敢(용명과감)으로써 舊誤(구오)를 廓正(확정)하고,眞正(진정)한 理解(이해)와 同情(동정)에 基本(기본)한 友好的(우호적) 新局面(신국면)을 打開(타개)함이 彼此間(피차간) 遠禍召福(원화소복)하는 捷徑(첩경)임을 明知(명지)할 것 안인가.

또 二千萬(이천만) 含憤蓄怨(함분축원)의 民(민)을 威力(위력)으로써 拘束(구속)함은 다만 東洋(동양)의 永久(영구)한 平和(평화)를 保障(보장)하는 所以(소이)가 안일 뿐 안이라, 此(차)로 因(인)하야 東洋安危(동양안위)의 主軸(주축)인 四億萬(사억만) 支那人(지나인)의 日本(일본)에 對(대)한 危懼(위구)와 猜疑(시의)를 갈스록 濃厚(농후)케 하야, 그 結果(결과)로 東洋(동양) 全局(전국)이 共倒同亡(공도동망)의 悲運(비운)을 招致(초치)할 것이 明(명)하니, 今日(금일) 吾人(오인)의 朝鮮獨立(조선독립)은 朝鮮人(조선인)으로 하여금 邪路(사로)로서 出(출)하야 東洋(동양) 支持者(지지자)인 重責(중책)을 全(전)케 하는 것이며, 支那(지나)로 하여금 夢寐(몽매)에도 免(면)하지 못하는 不安(불안),恐怖(공포)로서 脫出(탈출)케 하는 것이며, 또 東洋平和(동양평화)로 重要(중요)한 一部(일부)를 삼는 世界平和(세계평화), 人類幸福(인류행복)에 必要(필요)한 階段(계단)이 되게 하는 것이라. 이 엇지 區區(구구)한 感情上(감정상) 問題(문제)ㅣ리오.

아아, 新天地(신천지)가 眼前(안전)에 展開(전개)되도다. 威力(위력)의 時代(시대)가 去(거)하고 道義(도의)의 時代(시대)가 來(내) 하도다. 過去(과거) 全世紀(전세기)에 鍊磨長養(연마장양)된 人道的(인도적) 精神(정신)이 바야흐로 新文明(신문명)의 曙光(서광)을 人類(인류)의 歷史(역사)에 投射(투사)하기 始(시)하도다. 新春(신춘)이 世界(세계)에 來(내)하야 萬物(만물)의 回蘇(회소)를 催促(최촉)하는도다. 凍氷寒雪(동빙한설)에 呼吸(호흡)을 閉蟄(폐칩)한 것이 彼一時(피일시)의 勢(세)ㅣ라 하면 和風暖陽(화풍난양)에 氣脈(기맥)을 振舒(진서)함은 此一時(차일시)의 勢(세)ㅣ니, 天地(천지)의 復運(복운)에 際(제)하고 世界(세계)의 變潮(변조)를 乘(승)한 吾人(오인) 아모 주躇(주저)할 것 업스며, 아모 忌憚(기탄)할 것 업도다. 我(아)의 固有(고유)한 自由權(자유권)을 護全(호전)하야 生旺(생왕)의 樂(낙)을 飽享(포향)할 것이며, 我(아)의 自足(자족)한 獨創力(독창력)을 發揮(발휘)하야 春滿(춘만)한 大界(대계)에 民族的(민족적) 精華(정화)를 結紐(결뉴)할지로다.

吾等(오등)이 滋(자)에 奪起(분기)하도다. 良心(양심)이 我(아)와 同存(동존)하며 眞理(진리)가 我(아)와 幷進(병진)하는도다. 男女老少(남녀노소) 업시 陰鬱(음울)한 古巢(고소)로서 活潑(활발)히 起來(기래)하야 萬彙군象(만휘군상)으로 더부러 欣快(흔쾌)한 復活(복활)을 成遂(성수)하게 되도다. 千百世(천 백세) 祖靈(조령)이 吾等(오등)을 陰佑(음우)하며 全世界(전세계) 氣運(기운)이 吾等(오등)을 外護(외호)하나니, 着手(착수)가 곳 成功(성공)이라. 다만, 前頭(전두)의 光明(광명)으로 驀進(맥진)할 따름인뎌.

公約三章(공약 삼 장)

-. 今日(금일) 吾人(오인)의 此擧(차거)는 正義(정의), 人道(인도),生存(생존),尊榮(존영)을 爲(위)하는 民族的(민족적) 要求(요구)ㅣ니, 오즉 自由的(자유적) 精神(정신)을 發揮(발휘)할 것이오, 決(결)코 排他的(배타적) 感情(감정)으로 逸走(일주)하지 말라.


-. 最後(최후)의 一人(일인)까지, 最後(최후)의 一刻(일각)까지 民族(민족)의 正當(정당)한 意思(의사)를 快(쾌)히 發表(발표)하라.


-. 一切(일체)의 行動(행동)은 가장 秩序(질서)를 尊重(존중)하야, 吾人(오인)의 主張(주장)과 態度(태도)로 하여금 어대까지던지 光明正大(광명정대)하게 하라.

 

朝鮮 民族 代表

ㅇ천도교: 손병희(孫秉熙), 권동진(權東鎭), 오세창, 임예환(林禮煥), 나인협(羅仁協),

   홍기조(洪基兆), 박준승(朴準承), 양한묵(梁漢默), 권병덕(權秉悳), 김완규(金完圭),

   나용환(羅龍煥), 이종훈(李鍾勳), 홍병기(洪秉箕), 이종일(李鍾一), 최린(崔麟)

   이상 15명
ㅇ기독교: 이승훈(李昇薰), 박희도(朴熙道), 이갑성(李甲成), 오화영(吳華英),

   최성모(崔聖模), 이필주(李弼柱), 김창준(金昌俊), 신석구(申錫九), 박동완(朴東完),

   신홍식(申洪植), 양전백(梁甸伯), 이명룡(李明龍), 길선주(吉善宙), 유여대(劉如大),

   김병조(金秉祚), 정춘수(鄭春洙) 이상 16명
ㅇ불교: 한용운(韓龍雲), 백용성(白龍城) 이상 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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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clamation of Korean Independence

"We herewith proclaim the independence of Korea and the liberty of the Korean people. We tell it to the world in witness of the equality of all nations and we pass it on to our posterity as their inherent right.

We make this proclamation, having behind us 5,000 years of history, and 20,000,000 of a united loyal people. We take this step to insure to our children for all time to come, personal liberty in accord with the awakening consciousness of this new era. This is the clear leading of God, the moving principle of the present age, the whole human race's just claim. It is something that cannot be stamped out, or stifled, or gagged, or suppressed by any means.

Victims of an older age, when brute force and the spirit of plunder ruled, we have come after these long thousands of years to experience the agony of ten years of foreign expression, with every loss to the right to live, every restriction of the freedom of thought, every damage done to the dignity of life, every opportunity lost for a share in the intelligent advance of the age in which we live.

Assuredly, if the defects of the past are to be rectified, if the agony of the present is to be unloosed, if the future oppression is to be avoided, if thought is to be set free, if right of action is to be given a place, if we are to attain to any way of progress, if we are to deliver our children from the painful, shameful heritage, if we are to leave blessing and happiness intact for those who succeed us, the first of all necessary things is the clear cut independence of our people. What cannot our twenty million do, every man with sword in heart, in this day when human nature and conscience are making a stand for truth and right? What barrier can we not break, what purpose can we not accomplish?

We have no desire to accuse Japan of breaking many solemn treaties since 1636, nor to single out specially the teachers in the schools or government officials who treat the heritage of our ancestors as a colony of their own, and our people and their civilization as a nation of savages, finding delight only in beating us down and bringing us under their heel.

We have no wish to find special fault with Japan's lack of fairness or her contempt of our civilization and the principles on which her state rests; we, who have greater cause to reprimand ourselves, need not spend precious time in finding fault with others; neither need we, who require so urgently to build for the future, spend useless hours over what is past and gone. Our urgent need to-day is the setting up of this house of ours and not a discussion of who has broken it down, or what has caused its ruin. Our work is to clear the future of defects in accord with the earnest dictates of conscience. Let us not be filled with bitterness or resentment over past agonies or past occasions for anger.

Our part is to influence the Japanese government, dominated as it is by the old idea of brute force which thinks to run counter to reason and universal law, so that it will change, act honestly and in accord with the principles of right and truth.

The result of annexation, brought about without any conference with the Korean people, is that the Japanese, indifferent to us, use every kind of partiality for their own, and by false set of figures show a profit and loss account between us two peoples most untrue, digging a trench of everlasting resentment deeper and deeper the farther they go.

Ought not the way of enlightened courage to be to correct the evils of the past by ways that are sincere, and by true sympathy and friendly feeling make a new world in which the two peoples will be equally blessed?

To bind by force twenty millions of resentful Koreans will mean not only loss of peace forever for this part of the Far East, but also will increase the ever growing suspicion of four hundred millions of Chinese - upon whom depends the danger or safety of the Far East - besides strengthening the hatred of Japan. From this all the rest of the East will suffer. To-day Korean independence will mean not only daily life and happiness for us, but also it would mean Japan's departure from an evil way and exaltation to the place of true protector of the East, so that China, too, even in her dreams, would put all fear of Japan aside. This thought comes from no minor resentment, but from a large hope for the future welfare and blessing of mankind.

A new era wakes before our eyes, the old world of force is gone, and the new world of righteousness and truth is here. Out of the experience and avail of the old world arises this light on life's affairs. The insects stifled by the foe and snow of winter awake at this same time with the breezes of spring and the soft light of the sun upon them.

It is the day of the restoration of all things on the full tide of which we set forth, without delay or fear. We desire a full measure of satisfaction in the way of liberty and the pursuit of happiness, and an opportunity to develop what is in us for the glory of our people.

We awake now from the old world with its darkened conditions in full determination and one heart and one mind, with right on our side, along with the forces of nature, to a new life. May all the ancestors to the thousands and ten thousand generations aid us from within and all the force of the world aid us from without, and let the day we take hold be the day of our attainment. In this hope we go forward.

Three Items of Agreement

1. This work of ours is in belief of truth, religion and life, undertaken at the request of our people, in order to make known their desire for liberty. Let no violence be done to any one.

2. Let those who follow us, every man, all the time, every hour, show forth with gladness this same mind.

3. Let all things be done decently and in order, so that our behavior to the very end may be honorable and upright".

The 4,252nd year of the Kingdom of Korea, 3rd Month.
Representatives of the people.
The signatures attached to the document are:
Son Pyung-Hi, Kil sun-Chu, Yi Pil-Chu, Paik Yong-Sung, Kim Won-Kyu, Kim Pyung-Cho, Kim Chang-Choon, Kwon Dong-Chin, Kwon Byung-Duk, Na Yong-Whan, Na In-Hup, Yang Chun-Paik, Yang Han-Mook, Lew Yer-Dai, Yi Kop-Sung, Yi Mung-Yong, Yi Seung-Hoon, Yi Chong-Hoon, Yi Chong-Il, Lim Yei-Whan, Pak Choon-Seung, Pak Hi-Do, Pak Tong-Wan, Sin Hong-Sik, Sin Suk-Ku, Oh Sei-Chang, Oh Wha-Young, Chung Choon-Su, Choi Sung-Mo, Choi In, Han Yong-Woon, Hong Byung-Ki, Hong Ki-Cho. 

 

독립 선언문 출처 http://blog.naver.com/seedwin/150017218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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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3일 (목)

위의 독립 선언문을 작성한 사람은 당대의 천재 육당 최남선(1890~1957)이다. 조국의 독립을 바라보며 민족이 공감할 명문을 다듬었던 육당의 고뇌가 눈앞에 그리어 진다. 그러나 가슴 아픈 일은 태화관에서의 만세후 자진하여 일경에 체포 당했던 육당은 모진 고문과 회유에 견디지 못하고 친일의 행적으로 변절했던 일이다.

 

육당은 조선사 편수회 편찬위원으로 가담하여 조선사와 단군을 부정하는 일본 학자들과 함께 하였으며, 일제 통치 정책의 앞잡이 기구였던 중추원 참의직을 맡았던 일은 참으로 육당으로서는 씻을수 없는 과오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적 정리로야 나는 육당에게 그 잘못을 질책 할 수 있는 자신이 솔직히 없다. 나 자신 국가와 공의를 위하여 지금 이순간 생명과 가족의 안위를 던질수 있는냐고 누가 즉답을 요구 한다면 당연이지 하고 가슴을 내밀며 나설수 있다는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육당뿐 아니지만 견딜수 없는 고문과 자신 및 가족의 생명을 위협 받아 굴복하였던 민족의 지도자 분들에게 한 없이 안타깝고 눈물어린 연민의 정을 끊을 수 없다. 

 

한편, 중앙일보 3월 1일 자에 육당의 장손 최학주 씨가 쓴  '나의 할아버지 육당 최남선' 의 책에 대한 소개를 읽으며 더욱 가슴이 아팠다. 그의 주장은 육당은 조선사 편수회에 들어가 일제 사학자들로 부터 단군과 조선사를 지키려고 노력하였으며, 중추원에는 가본적도 없다고 어린시절에 할아버지에게 들었다는 것이다. 육당의 꿈은 조선의 세계화 였으며 친일 했다는 것은 오해라는 것이다.

 

나는 육당 시대의 사람이 아니니 그 진정한 상황은 물론 알 길이 없다. 다만, 한 나라가 통째로 무너 졌을때 그 구성원 개인들, 특히 의식있는 엘리트들이 당해야했던 고통이 어느정도였을까 하는것은 뼈져리게 느낄 수 있다. 그러면 지금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지워진 역사의 사명은 다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반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나 개인은 육당의 친일을 책하기 전에, 그토록 대단한 명문장으로 우리 민족혼을 일깨우려 했던 천재 선각자의 의식을 존경한다. 그의 친일에 돌을 던지고 싶은자가 있다면, 먼저, 오늘 이 순간에 나자신은 민족과 나라를 위하여 부끄러움 없는 의식으로 준비하는 역사적 삶을 살고 있는가 자문해볼 일이다. 힘없는 민족, 미래의 비젼과 준비가 없는 민족, 현재의 풍요만을 즐기는 민족에게는 비참한 역사의 눈물이 요구된다는 것을 잊지않는 절차탁마로 삼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운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