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의 노래
홍윤숙
헤어지자... 우리들 서로
말없이 헤어지자.
달빛도 기울어진 산마루에
낙엽이 우수수 흩어지는데
산을 넘어 사라지는 너의 긴 그림자
슬픈 그림자를 내 잊지 않으마
언젠가 그 밤도
오늘밤과 꼭 같은 달밤이었다.
바람이 불고 낙엽이 흩어지고
하늘의 별들이 길을 잃는 밤
너는 별을 가리켜 영원을 말하고
나는 검은 머리 베어 목숨처럼 바친
그리운 이 있었다, 혁명이 있었다.
몇 해가 지났다.
자벌레처럼 싫증난 너의 찌푸린 이맛살은
또 하나의 하늘을 찾아
거침없이 떠나는 것이었고
나는 나대로 송피처럼 무딘 껍질 밑에
무수한 혈흔을 남겨야 할
아픔에 견디었다.
오늘밤 이제 온전히 달이 기울고
아침이 밝기 전에 가야 한다는 너
우리들이 부르던 노래 사랑하던 노래를
다시 한 번 부르자.
희뿌연히 아침이 다가오는 소리
닭이 울면 이 밤도 사라지려니
어서 저 기울어진 달빛 그늘로
너와 나 낙엽을 밟으며
헤어지자... 우리들 서로
말없이 헤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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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연백에서 출생한 홍윤숙은 서울에서 성장하였고 동덕여자사범학교와 경성여자사범학교를 거쳐 서울대 교육학과에 입학하였다.
1947년 문예신보에 '가을', 신천지에 '낙엽의 노래', 예술평론에 '가마귀'를 발표하면서 등단하였으며, 한국여류문학인회 회장, 한국시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1975년에 제7회 한국시인협회상을, 1985년에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하였고, 1991년 예술원 회원으로 선정되었다.
홍윤숙은 감상주의적 애상에서 벗어나 존재의 근원적 문제와 삶의 권태감, 도시문명에 대한 비판, 어둠과 삶의 비리성을 풍자하며 거친 피의 도전을 과감히 발산하였다. 그녀는 중년 여성의 허위의식을 신랄히 풍자하는 등 이른바 한국 여류시의 지성적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또한, 타오르는 생명의 불꽃을 차가운 이성과 의지로 억누르며 고뇌를 벗겨내는 냉철한 지성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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