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illy의 좋아하는 詩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 모윤숙

Billy Soh 雲 響 2010. 6. 10. 19:00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나는 광주 산곡을 헤매다가 문득 혼자 죽어 넘어진 국군을 만났다                         

                           모 윤 숙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지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구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나는 죽었노라 스물 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원수가 밀어오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숨지었노라

 

      내 손에는 범치 못할 총자루 내 머리엔 깨지지 않을 철모가 씌워져

      원수와 싸우기에 한번도 비겁하지 않았노라

      그보다도 내 핏속엔 더 강한 대한의 혼이 소리쳐

      달리었노라 산과 골짜기 무덤과 가시숲을

      이순신같이 나폴레옹같이 시저같이  

      조국의 위험을 막기 위해 밤낮으로 앞으로 앞으로 진격! 진격!

      원수를 밀어가며 싸웠노라

      나는 더 가고 싶었노라 저 원수의 하늘까지

      밀어서 밀어서 폭풍우같이 머나먼 적진까지

      밀어가고 싶었노라

 

      내게는 어머니 아버지 귀여운 동생들도 있노라

      어여삐 사랑하는 소녀도 있었노라

      내 청춘은 봉오리지어 가까운 내 사람들과

      이 땅에 피어 살고 싶었었나니

      아름다운 저 하늘에 무수히 날으는

      내 나라의 새들과 함께

      자라고 노래하고 싶었노라

      그래서 더 용감히 싸웠노라 그러다가 죽었노라

      아무도 나의 죽음을 아는 이는 없으리라

      그러나 나의 조국  나의 사랑이여!

      숨지어 넘어진 이 얼굴의 땀방울을

      지나가는 미풍이 이처럼 다정하게 씻어 주고

      저 푸른 별들이 밤새 내 외롬을 위안해 주지 않는가!

 

      나는 조국의 군복을 입은 채

      골짜기 풀숲에 유쾌히 쉬노라

      이제 나는 잠시 피곤한 몸을 쉬이고

      저 하늘에 날으는 바람을 마시게 되었노라

      나는 자랑스런 내 어머니 조국을 위해 싸웠고

      제 조국을 위해 또한 영광스레 숨지었노니

      여기 내 몸 누운 곳 이름 모를 골짜기에

      밤 이슬 내리는 풀숲에 아무도 모르게 우는

      나이팅게일의 영원한 짝이 되었노라

 

      바람이여! 저 이름 모를 새들이여!

      그대들이 지나는 어느 길 위에서나

      고생하는 내 나라의 동포를 만나거든

      부디 일러다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달라고

      저 가볍게 날으는 봄나라 새여

      혹시 네가 날으는 어느 창가에서

      내 사랑하는 소녀를 만나거든

      나를 그리워 울지 말고 거룩한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 일러다오

 

      조국이여! 동포여! 내 사랑하는 소녀여!

      나는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 간다

      내가 못 이룬 소원 물리치지 못한 원수

      나를 위해 내 청춘을 위해 물리쳐 다오

 

      물러감은 비겁하다 항복보다 노예보다 비겁하다

      둘러싼 군사가 다 물러가도 대한민국 군군아! 너만은

      이땅에서 싸워야 이긴다 이땅에서 죽어야 산다

      한번 버린 조국은 다시 오지 않으리라 다시 오지 않으리라

      보라 폭풍이 온다 대한민국이여!

      이리와 사자떼가 강과 산을 넘는다  

      내 사랑하는 형과 아우는 서백리아 먼 길에 유랑을 떠난다

      운명이라 이 슬픔을 모른 체하려는가

      아니다 운명이 아니다 아니 운명이라도 좋다

      우리는 운명보다 강하다! 강하다!

      이 원수의 운명을 파괴하라 내 친구여!

      그 억센 팔 다리 그 붉은 단군의 피와 혼

      싸울 곳에 주저말고 죽을 곳에 죽어서

      숨지려는 조국의 생명을 불러 일으켜라

 

      조국을 위해선 이 몸이 숨길 무덤도 내 시체를 담을

      작은 관도 사양하노라

      오래지 않아 거친 바람이 내 몸을 쓸어가고

      저 땅의 벌레들이 내 몸을 즐겨 뜯어가도

      나는 유쾌히 이들과 함께 벗이 되어

      행복해질 조국을 기다리며

      이 골짜기 내 나라 땅에 한 줌 흙이 되기 소원이노라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운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지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구나

      가슴에선 아직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모 윤 숙

  (1910-1990) 원산 출생. 1935년 <시원(詩苑)> 동인으로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시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문학은 물론 정치 외교 여성운동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호는 영운 嶺雲.
 
1931년 이화여자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북간도 룽징[龍井]에서 명신여학교 교원으로 근무하였다. 서울로 온후 배화여고 교사를 거쳐 '삼천리' 기자, 경성방송국 기자 등을 지냈으며. '시원' 동인이었던 김광섭 김상용 오일도 노천명 등과 사귀면서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하였다. 1940년 일제에 저항하는 내용의 시 '조선의 딸'  '이 생명을' 등 2편을 발표하여 경기도 경찰서에 구류되기도 하였으나, 1940년 이후 전쟁이 확산되고 전국이 비상체제로 들어가자 친일인사들이 주로 참여하는 '매일신보''삼천리' '신시대' 등에 친일적인 글을 발표하였다. 또한 1941년 '조선 임전 보국단'에 들어가 반미에 관한 내용과 학병을 격려하는 내용의 연설을 했던것이 그녀의 가슴 아픈 친일 행적이다.
그러나 6.25 한국전쟁시에는 우익 인사로서 북한 체제를 극열히 비판하고 선무방송등에 임하기도 하였다.

 

행군의 아침


 

                                         출처 http://blog.daum.net/chodongil/16145186

 

 

작사 작곡: 김영삼, 김동준

 

1. 동이 트는 새벽꿈에 고향을 본 후

외투입고 투구 쓰면 맘이 새로워

거뜬히 총을 메고 나서는 아침

눈 들어 눈을 들어  앞을 보면서

물도 맑고 산도 고운 이 강산 위에

서광을 비추고자 행군이라네

 

2. 잠깐 쉴 때 담배 피며 구름을 본 후

배낭 메고 구두끈을 굳이 매고서

힘있게 일어서면 열려진 앞길

주먹을 두주먹을 힘껏 쥐고서

맑은 하늘 정기 도는 이 강산 위에

오랑캐 내쫓고자 강행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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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이 오면 언제나 가슴이 울렁거린다. 대단한 애국자는 아니지만 어린시절 밤이면 아직 남아있던 산속의 잔적 빨치산과 교전하는 국군의 총성, 간간히 솟아 오르는 조명탄을 보며 무서운 생각에 어머니 품으로 고개를 묻곤 했다. 그렇게 자란 나에게는 본능적으로 안보에 대한 의식이 싹텄었는지도 모른다.

 

그후 성인이 되어 두 어깨에 소위 계급장과 푸른견장을 달고 최전방 육지의 남방 한계선이 시작되는 1번 철주부터 상당거리를 책임지고 북적의 방어에 젊음의 시간들을 보냈다. 그시절 어느핸가 2,3월쯤의 생일자파티(파티라고 해야 라면 막걸리 새우깡등)가 지금도 어제같이 눈앞에 생생하다. 그 통나무 식탁위에 음식을 올려놓고 생일자들과 함께 전 병사들이 모여 "눈녹은 삼팔선에 봄은 왔건만..."을 소리쳐 부르면서 눈물을 훔치지 않는 병사가 없었다. 그 사나이들의 청춘과 열정이 지금도 가슴에 전해 오는듯 하다.

 

한편 위의 군가 '행군의 아침'은 그시절 내가 군가 경연대회에 소대를 인솔해 나가 전진 부대 사단 전체에서 입상하여 소대 전원이 포상 휴가를 갔던 곡이다. 지금도 누렇게 바랜 그때의 표창장이 남아있다. 나름대로 안무를 구성하고 독특하고 절도있는 반동을 고안하여 틈만나면 아침이고 저녁이고 우리 소대를 연병장에 집합시켜 놓고나서 내가 직접 시범을 보여가며 정말 열심히 연습시켰었다. 

 

그때의 인상이 얼마나 깊이 남아 있었는지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힘드는 일이 있거나 나자신에 실망하여 힘을 잃고 주저 앉아 있을때 나도 모르게 그 군가를 떠올리곤 한다. 내가 직작생활에서 23년을 지낸 귀족같은 외자계를 떠나 빡세기로 소문나 가지 말라고 말리는 내국회사로 왔을때 출근하는 새벽이면 혼자서 차를 몰고 이 군가를 부르며 힘을 주곤했다. 젊은 날의 내모습을 떠올리며 두주먹을 불끈 쥐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모윤숙 시인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를 보신분들은 무엇을 느끼실까. 특히 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젊은 분들, 싸움을 월급받으며 먹고사는 직업으로 삼고 건들 꺽둥거리는 정치인들.. 우리나라 이만큼 된것 눈꼽만큼도 공짜 없었다는것, 비참한 댓가를 치뤘다는것, 부모덕에 풍족히 자랐고 국민의 세금으로 세비 고연봉 받아 호의호식 하고 있었다는것 깨달아주면 업드려 큰절 하고싶다. 그만큼 덕보고 혜택 챙겼으면 이젠 국가 제단위에 무엇을 바칠건지 생각해야 한다는것을 불초 소생 본좌 간곡히 간곡히 진언 드린다.

 

<雲響齊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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