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쉬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 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기쁨의 날은 오리니
마음은 언제나 미래에 사는것
현재는 언제나 슬픈것
모든것은 하염없이 사라져 가나
지나가 버린것은 그리워 지는 것이다
모든 러시아인들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시인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쉬킨은 러시아로 이주한 아프리카 족장의 4대 후손으로 1799년 6월 6일(구력 5월 26일) 모스크바의 네메츠카야 슬라바다 가에서 태어났다.
1831년 2월 18일, 푸쉬킨은 나탈리야 곤차로바와 모스크바 대승천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녀는 대단한 미인 이었던 반면 위대한 시인의 아내로서 갖추어야 할 교양과 도덕을 지니지 못했다. 나탈리야는 남편을 속이고 네덜란드 외교관이며 해군 장교인 단테스 남작과 염문을 뿌렸다.
단테스는 푸쉬킨의 아내 나탈리야를 흠모하였고 그녀의 언니와 결혼한 뒤에도 여전히 그녀를 잊지 못해 했다. 사교계는 이 염문으로 들끓었고 푸쉬킨을 부정한 여인의 남편이라고 빈정거리는 익명의 편지까지 받았다. 자신과 아내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푸쉬킨은 단테스에게 결투를 신청하였다. 1837년 1월 27일 상뜨 뻬쩨르부르크에서 벌어진 결투에서 푸쉬킨은 단테스가 쏜 총알에 하복부 치명상을 입고 이틀 후인 1월 29일 꽃다운 젊음 38세에 마침내 눈을 감고 말았다.
세월을 넘어 세계인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이 명시를 지은 푸쉬킨은 아름다웠지만 부정한 아내를 맞이한 운명으로 인해 슬픔의 날을 맞이하고 말았던 것이다.
젊은 남자들에게 자신의 미모를 뽐내길 좋아했던 여인 나탈리야.
심지어 러시아 황제 짜르에게까지 속된 표현으로 꼬리를 쳤다고 한다
17,8세의 Teen ager 무렵, 자의식 속에서 인생을 방황 할때 나는 일기장 첫 페이지에 이 시 '삶'을 써놓곤 매일 일기를 쓸때면 한번씩 외다 시피 하였다. 이상하게도 이 시를 읽으면 힘든 현실을 위로 받는듯 하였다. 그 동경을 잊지 못해서 였을까. 푸쉬킨의 발자취를 따라 모스크바와 상트 뻬쩨르부르크를 여행 하였다. 그의 동상 앞에 섰을때 사랑을 잃은 슬픔과 분노의 삶을 살았던 푸쉬킨의 마음이 전율처럼 가슴을 찔렀다. 글을 쓰던 그가 어찌 훈련된 군인의 총탄을 피할 수 있었으랴. 세월 저편에 잃어버린 천재의 삶이 안타까움으로 다가옴을 금할수 없었다.
'★ Billy의 좋아하는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월이 오면 - 도종환 (0) | 2009.04.14 |
---|---|
귀천- 천상병 (0) | 2008.11.12 |
별 헤는 밤 The Night I Count the Stars (0) | 2008.10.31 |
세월이 가면... 박인환, 그의 사랑과 슬픔과 시와 낭만 (0) | 2008.07.14 |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세계 (0) | 2008.0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