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5년 2월 23일 독일 작센 지방의 Halle 에서 성공한 외과의사인 아버지와 루터교 목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음악의 어머니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George Fridrich Handel)은 1759년 4월 19일 열조에게로 돌아갔다. 그는 바하와 같은 시대에 태어나 바로크 음악을 총정리한 대 음악가였으며 합창을 중심으로 작곡된 그의 오라토리오는 대중들에게도 오라토리오를 접할수 있는 계기를 제공 하였다.
이 대 음막가가 경제적인 실패와 좌절 속에서 실의의 나날을 보내고 있을때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의 자선 음악 단체인 필 하모니 협회가 헨델에게 신작 의뢰를 한것이 바로 이 메시아 이다. 그는 눈물과 감격 속에서 식음을 전폐 하다시피 하며 불과 24일 만에 이 놀라운 53곡 전곡을 완성해 내었다 한다.
나는 언제나 메시아를 연주하거나 들을때 마다 그 영적인 감동에 이끌려 열기에 뜬 눈으로 곡을 써내려 가는 56세의 헨델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져 벅차 오르는 감격을 억제 하기가 어렵다. 1742년 4월 13일 헨델 자신이 지휘한 메시아 초연의 감격은 정말 대단했을 것이다. 입장권은 완전 매진되고 입장권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4월 8일 총연습도 일반에게 공개 하였다 한다. 1743년 3월에는 런던에서 초연 되었고 1750년 연주에서는 "할렐루야" 합창을 듣고 감동한 국왕 죠지 2세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모든 청중들이 일어난 일로 인해 지금도 "할렐루야" 합창 부분에서는 모두가 일어나는 전통을 가지게 되었다. 메시아의 초연후 그가 65세 되던 해에는 헨델은 완전한 승리자가 되었다. 메시아 공연만 해도 34회나 되었으며 그는 영국의 국가적인 음악가로서 존경을 받게 되었다.
이곡 "죽임 당하신 어린양"은 53번 마지막 곡으로서 들을때마다 가슴 깊은곳의 감동을 자아낸다. 이곡은 "죽임 당하신 어린양" 으로 시작되는 유명한 아멘 코러스이다. 죽음을 당하여 그 피를 흘려 우리를 구하신 어린 양 이야말로 찬송과 존귀, 영광, 지혜, 권능을 받기에 합당한 분이다」라고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최고의 상승 음계로 찬양 해서 노래한다.
1750년 이후 런던으로 돌아온 헨델은 1739년에 설립돤 Foundling Hospital 고아원을 위해 매년 자선 음악회를 열었다. 이러한 이유로 오늘날에도 연말 크리스마스가 되면 세계 각지에서 할렐루야의 자선 연주가 행해지는 전통을 가지게 되었다 한다.
평생 독신으로 지냈던 헨델에게도 가슴아픈 사랑 이야기가 있었다. 이발사의 딸을 사랑했던 헨델은 사랑하는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직접쓴 메시아의 악보를 선물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그 세기의 보물을 알아 볼만한 눈을 갖고있지 못했다. 음악사에 찬란히 빛나야할 그 악보는 찢겨져 한순간에 버려지고 말았으니 그 애통함을 어찌 지울수 있으랴. 그 모습을 본 헨델은 비로소 눈을 떠 그 아가씨를 잊을수 있었다 한다.
1759년 4월 20일. 74세로 시련과 영광의 나그네 길을 마치고 돌아가는 한 위대한 작곡가, 헨델과 이별하기 위해 모인 3000여명의 군중들이 애도하는 앞에서 그는 웨스트 민스터 사원의 시인 묘역에 묻혔다. 그는 가난한 음악가 구제회에 1000파운드를 남겨 놓고 떠났다. 베토벤의 말처럼 헨델이야 말로 공전의 위대한 대 음악가였다.
인천 내리교회 연합 성가대. 메시아 전곡울 연주한 전통있는 성가대이다.
'★ Billy 의 배경음악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켜간 사랑 - 노사연 (0) | 2008.11.09 |
---|---|
O Come All Ye Faithful (참 반가운 신도여) (0) | 2008.11.08 |
First of May (0) | 2008.10.03 |
처음 사랑 (0) | 2008.10.03 |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였음을 (0) | 2008.1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