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속삭임 - 리쳐드 클레이더만
출처 http://blog.daum.net/eeecc/18041617
교룡산의 초가을. 남원시 산곡동에 위치한 이 독립산은 해발 518m 로서 주봉인 밀덕봉과 남쪽의 복덕봉이 거의 같은 높이이며 마치 두마리의 용이 꼬여 뒤틀려 승천 하는것 같은 형상으로 인해 교룡산으로 불리게 된것이다. 교룡산의 7부 능선에는 임진. 정유 양란 당시 1만여명이 전사한 유명한 전적지 남원 산성이 위치해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나는 사계가 변하는 이 교룡산, 산성의 모습을 보며 자랐다.
산성 아래 팩제이의 옥답. 어렸을때 이곳의 상당 부분이 집안의 답이었으므로 벼가 익어갈 무렵에는 이곳에 새막을 짓고 참새를 보는 일이 많았었다.
선산 아랫길 이곳에 차를 세워놓고 성묘를 가는 주차장(?)이다.
내가 태어나기 며칠전 생수가 콸콸 터졌던 잡안의 꽤 깊은 우물이다. 기나긴 세월 속에 이렇게 잡초로 메워져 간다.
태어나서 13살 까지 자라난 우리집이다. 500여평의 대지에 안채 사랑채 아랫방 건물이 ㄷ자로 배치된 집이다. 어린시절 상머슴 꼴머슴과 일꾼들, 가을이면 추수볏섬이 바리바리 들어오던 집이었다. 지금은 완전히 잡초와 대밭으로 우거진 폐허가 되어가고 있다.
내가 꿈을 키우며 공부하던 사랑방. 마루의 벽에는 당시 아버님이 붙여 놓으신 휘호에 ' 四時光風 '이라고 독특한 서체로 쓰여있었는데.. 물론 지금은 자취도 없다.
집앞의 문전 옥답 뒷들. 지금은 누가 농사를 짓고 있을까.
이 뒷들의 옥답 거의 대부분은 집안의 답이었다.
어린시절 어느 여름날 보았던 불가사의한 불덩어리가 등성이를 따라 올라가던 뒷들 야산이다.
제방뚝의 갈대.
이 저수지 아래 옥답이 거의 집안의 답이었으니 선친께서 직접 관리하며 물을 조절 하셨는데.. 지금은 오랜 세월에 메워져서 저수지가 조그맣게 보인다.어렸을땐 시퍼런 물이 넘실 넘실 해서 낮은곳에서만 주로 헤엄을 치며 놀았었다.
이 제방 뚝에서 달리기 시합도 곧잘 하던곳이다.
마을 뒷산 왕재. 송이버섯, 느타리 버섯, 국수버섯 등이 나며 그 자연산의 버섯맛과 향은 일품이었었다. 우리 집안의 멘터이셨던 김영수 목사님은 매년 추석 전날이면 낮에 우리집에 오셨다가 이곳에 올리가시면 해가 질 무렵에 눈이 벌겋게 되셔서 내려 오시곤 하셨다. 1.4후퇴때 모든 가족을 이북에 두시고 홀로 월남 하신 분으로서 가족을 그리며 눈물로 기도 하셨을 것이다. 많은 존경을 받으시던 그 분도 말년에 서울의 광석교회로 오셔서 시무하시다가 소천 하신지가 오래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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