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수뇌부의 주인이 되기위한 대통령 선거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상황을 생각하며 청와대 경내를 돌아보고 칠궁까지 답사하였다. 청와대란 명칭은 본관의 지붕이 파란색으로 인해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이곳은 일찌기 고려 숙종때인 1104년에 건축했던 남경의 이궁이 있었던 자리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세종 8년인 1426년에 경복궁을 창건하면서 궁궐 후원으로 삼아 이곳에 연무장, 융무당, 경농재, 및 과거장이 마련되었으며 왕의 친경지로도 사용되었던 곳이다.
그후 일제 강점기에 조선 총독부가 경복궁 안에 청사를 신축하면서 1927년 오운각외의 모든 건물과 시설을 철거하고 총독 관저를 이곳에 지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면서 미군정이 시작되자 군정 장관이었던 하지 중장의 관저로 사용되는등 외세에 의해 수난을 겪기도 하였다.
1948년 정부 수립후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경무대로 명명하고 대통령 집무실및 관저로 사용하였다. 경무대란 명칭은 경복궁의 경자와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의 무자를 딴것이다. 그러나 이 이름이 독재의 권부처럼 인식되는 바람에 4.19혁명후 윤보선이 제2공화국의 대통령이 되면서 청와대로 개칭하였다.
1993년 8월에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로 일제 강점기의 조선 총독이 기거하였던 구 본관은 철거되었다.
상춘재의 가을 풍경이다. 상춘재는 1983년 4월 준공된 전통적인 한식 가옥으로 외빈 접견등에 사용되고 있다. 이자리에는 일제때 원래 20여평 정도의 일본식 관사 별관 건물이 있었으며 매화실이라 하였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 상춘실로 그 명칭을 바꿔 시용하였다. 1983년까지만 해도 청와대 경내에는 전통 한옥식 건물이 단 한채도 없었다. 외국 손님이 와도 우리나라 가옥 양식을 소개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이에 1982년 200년 이상 된 춘양목(홍송)을 사용하여 전통 한식 가옥인 상춘재를 짓게 되었다.
본관은 대통령의 집무와 외빈 접견에 사용되는 건물이다. 이 본관 건물은 1989년 22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원회의 많은 의견을 수렴한 뒤 1991년 9월 4일 신축되었다. 이 건물은 정부와 국가를 대표하는 우리의 얼굴과도 같은 곳이기 때문에 전통 목조 가옥 구조와 궁궐 건축 양식을 기본으로하여 내부는 현대적인 구조와 시설을 갖추도록 하였다. 또한 2층 본관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단층 별채를 배치했으며 우리나라 건축양식중 가작 격조높고 아름답다는 팔작지붕을 올리고 한식 청기와를 이었다. 약 15만장이나 되는 청기와는 일반 도자기를 굽듯이 한개 한개 구워내어 100년 이상을 견딜 수 있는 강도를 지녔다고 한다.
영빈관은 대규모 회의와 외빈 국빈들을 위한 공식 행사를 개최하는 건물로서 1978년 1월에 착공하여 그해 12월에 준공 되었다. 이곳 영빈관은 18개의 돌기둥이 건믈 전체를 떠받치고 있는 웅장한 건물이다. 특히 전면에 있는 4개의 돌기둥은 높이 13m에 둘레 3m로 2층까지 뻗어있다. 내부는 무궁화, 월계수, 태극무늬가 형상화 되어있다.
칠궁은 청와대의 서남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조선 시대에 왕을 낳은 후궁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현재는 청와대를 방문한 사람만이 이곳을 방문할 수 있다. 이곳은 숙종의 후궁이자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신위를 모신 육상궁, 선조의 후궁 인빈 김씨를 모신 저경궁, 숙종의 후궁 희빈 장씨를 모신 대빈궁, 영조의 후궁 정빈 이씨를 모신 연호궁, 영조의 후궁 영빈 이씨를 모신 선희궁, 정조의 후궁 수빈 박씨를 모신 경우궁, 고종의 후궁 엄씨를 모신 덕안궁 등 7개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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