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에서 일본의 이마리 야키(도자기) 전이 특별 전시 되고있었다.
이마리야키의 뿌리는 조선이다. 임진왜란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들의 후예이다.
심양(구 봉천)의 거리
9.18 항일 기념 박물관의 입구이다.
관람하기 전에;
9.18 사변은 20세기에 있어서 세계를 진동 시켰던 역사적인 대 사건이다. 그것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중국 침략전쟁의 시작이었으며 세계사상 처음으로 파시즘 국가가 일으켰던 침략의 전화이기도하다. 그 발발은 제2차 세계대전의 개막이었고 동북부 인민의 14년에 걸친 전쟁의 발단이기도 하였다. 그날부터 일본 제국주의는 끊임 없이 대학살을 자행하고 지금 생각하여도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듯한 죄악을 저질렀다. 이날부터 중국인민은 하늘에 가득한 원한을 품고 5000일간 이상의 항일 투쟁하였던 것이다. ...
일본 군국주의 대륙정책의 형성. 메이지 유신 세력인 쵸슈, 사츠마 현를 중심으로한 일본 군벌의 총수였으며 당시 일본 제국의 수상이었던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사진이다. 그는 아시아에 대한 침략적 군국주의의 모든 기초를 닦았고 실행 하였던 인물이다.
야마가타 아리토모 정권이 1990년에 발표한 외교정책; 국가의 독립과 자위를 위하여 아국 주권선에대한 타국의 침략을 용납치않고 나아가 국가 이익의 확보를 위한 이익선의 수호를 위해 무력을 강화한다 ... 등등이다.
당시 밥공기에도 일본 군국 주의가 배어있다. "대일본 만세" 라고 쓰여있다.
일본은 군국주의 하에서 대륙 정책을 결정한후에 급속히 대외 침략을 진행하였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통하여 중국 남만주에서의 침략 기반을 확립하였다. 그후 일본은 만주와 몽고 독립운동을 책동하고 한걸음씩 만주 몽고에서의 침략 활동을 확대해 나갔다.
당시 만주의 지도
당시 일본 육군의 94식 산포
일본 위성국이었던 만주국의 국새
만주국 대지도
일본 군국주의 괴뢰정권 만주국의 부의 황제.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를 만주국 황제로 세워 이용하였다.
부의 황제 부처
초기에는 소위 731부대가 부대명이었으나 1936년 부대명을 바꿔 관동군 방역 급수부라 하였다. 또는 사령관의 이름을 따 이시이 부대로도 불렸던 사상 전무후무의 생체 실험 부대 배치도이다.
일본 관동군의 재 동북 만주 방면 세균전 부대 분포도이다. 하얼빈의 731 부대 본부를 비롯하여 심양 장춘 목단강 등 각지에 예하부대가 배치되어 극악 무도한 인체 생체실험을 자행하였다.
세균 전범 731세균부대 제2부대장 키타노 마사츠구 사진
세균전 부대의 총사령관 이시이 시로 중장
극악한 생체실험의 증거자료들. 731 부대에서 희생된 실험 인간은 주로 중국인 항일 인사들이 가장 많았으며 백계 러시아인 몽골인 조선인등 침략지에서 생포한 항일 운동의 투사들이 주로 희생 되었다. 세균전 부대에서는 사람을 인간이라 하지않고 '통나무(마루타)라고 불렀다. 동상을 실험 하기 위하여 영하 40도 겨울에 외부 물속에 사람의 손발을 몇시간 넣게했다가 얼음처럼 얼어 버리면 뜨거운 물에 넣어 살이 어떻게 떨어져 나가는지 관찰 실험하거나 통증 실험을 위해 마취하지 않고 배를 갈라보거나 콜레라나 장티프스 균등을 뱃속에 주사하여 고통으로 죽어가는 과정을 연구하고 세균의 위력을 연구하는등 이루 말로 표현 할 수도 없는 범죄를 저지른 부대의 자료들이다.
중국인 항일 부대가 눈속에서 이동하는 모습
항일 부대가 산속의 은신처에서 작전 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
심양역사. 엄청 큰 규모로 신축하였다. 보통의 평일인데 엄청난 사람들이 붐비고 있다. 우리도 베이징행 표를 사고 대열에 서서 기다렸다.
베이징행 기차 내부. 깨끗하고 조용하였다.
자금성의 정문이다. 이 앞이 천안문 광장이다. 모택동 시진과 함께 '중화 인민 공화국 만세'라 쓰여있다.
천안문 광장에서 한컷.
아침부터 발디딜 틈 없이 몰려드는 관광객들
구름처럼 몰려서 입장하고 있는 관광객들. 매일 이런 상태다.
자금성 경내
자금성의 정전인 건청궁이다.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궁 이름과 도시명은 당시 중국의 것을 본따 지어졌다. 조선의 통치 이념은 유교의 주자학과 중화 사상에 대한 사대를 기본으로 하고 있었으므로 당연한 일 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경복궁 가장 후면에 위치한 전각 이름도 건청궁이다. 1895년 을미 사변시 명성 횡후가 일본 깡패 낭인 사무라이들에 의해 시해당한 민족의 통한이 서린 곳이나 그 현장에는 아무런 관련 표식도 없는 것은 언제 가보아도 또다른 한이다. 우리 민족은 씻을수 없는 민족의 역사적 한을 소홀히 기억하고 가르치지도 않는다.
아뭏든 청의 황제들은 정전인 이 건청궁에서 조선을 비롯한 모든 조공국의 사신들을 접견하였다.
황제의 용상. 조선의 사신들은 이곳에서 황제를 알현하고 왕은 물론 세자의 책봉 윤허 등을 받았을 것이다.
이화원의 원경
서민들의 골목안 풍경
쿤밍호
첨단 공원의 카드 놀이
첨단 공원의 어르신 장기판
기년전. 황제가 설에 국태 민안을 빌던 전각
만리장성의 인파. 진나라 시대무터 명대까지도 건축 되었던 난공 불락의 이 성도 몽골의 원과 만주의 청에 의해 뚫리고 말았다. 이성을 넘어가 변방족인 그들이 한족의 무릅을 꿇렸던 것이다.
~~~~~~~~~~~~~~~~~~~~~~~~~~~~~~~~~~~~~~~~~~~~~~~~~~~~~~~~~~~~~~~~~
이번 여행에서 새롭게 느꼈던 점은 중국의 과거 역사 인식이 우리보다 훨신더 확고하다는 점이었다. 일본 군국주의에 당한 씻을 수 없는 민족의 비통함이야 어찌 우리가 중국보다 못할 것인가. 중국은 자신들이 당한 처참한 역사와 일본제국의 전쟁 범죄자들에 대한 사진과 범죄 자료를 확실히 확보하고 있으며 대중에게 공개 전시하여 역사 교육의 장으로 잘 활용하고 있다.
우리는 독도 문제가 터져 나왔을때나 감정적으로 일본을 싫어하지 역사적인 자료에 대한 냉철한 연구와 증거 확보가 빈약하다는 것을 언제나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천안의 독립기념관이나 서대문 형무소에 가면 다소의 자료가 있을뿐 본격적인 항일 박물관은 아무 곳에도 없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언제나 우리도 항일 독립운동 박물관등을 서울에 개설하여 민족의 정기를 보다 확고히하고 힘 없어서 침략당한 쓰라린 선조들의 과거를 후손들에게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날이 올것인가. 민족에 대한 사명감은 찾아 볼 수 없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쟁만 일삼는 정치가들이 너무나 야속하다.
<운향>
'★ Billy의 해외여행 Foreign Tour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유럽 기행-뮌헨,멜링겐,베를린,드레스덴,2013 3/24-25 (0) | 2013.04.28 |
---|---|
항가리의 부다페스트 (0) | 2012.11.26 |
중국에서 생긴일 - 3 (0) | 2012.10.25 |
중국에서 생긴일 - 2 (0) | 2012.10.23 |
중국에서 생긴일 - 1 (0) | 2012.1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