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나 자신의 인간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내가 얼마나 높은 사회적 지위나 명예 또는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 자신의 영혼과 얼마나 일치되어 있는 가이다 <법정 스님 말씀중>
법정 스님에게
신록이 점점 짙어지는 계절인데 스님, 편히 계시지요? 저는 스님을 직접 뵌 적은 없지만 21살 겨울 방학때 조그마한 잡지에 실린 스님의 글을 보고 ‘이슬처럼 참 맑은 영혼을 가지신 분이구나’ 하고 감명을 받았으니 그것을 인연으로 친다면 참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후에 제가 외국 손님이 오실 때 마다 가끔 찾곤 했던 한식 요정 OO각이 스님에게 헌납되었다는 소식과 스님께서 그곳을 완전히 수행의 도장으로만 삼으셨다는 소식을 듣고 또 한번 감동을 받았었습니다.
그러신 스님께서 지난 3월 11일 입적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왜 그리 허전 하던지요.
하지만 더욱 가슴을 울렸던 충격은 유언으로 의식도 행하지 말고 관도 준비하지 말고 수의도 입히지 말며 평소 승복 그대로 다비하라고 하셨다는 말씀이었습니다. 3월 13일 오전 11시 순천 송광사 경내의 조계산 자락에서 열린 다비식에는 일만 오천여의 추모객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지켜보고 무소유 정신을 되새기며 오열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스님은 그렇게 모든 인연을 맺은 분들께 감사하고 잘못에 대해 참회 하시며 떠나셨습니다. 스님의 그 무소유를 실행하신 한평생은 정말 진흙 속에서 피어난 한 떨기의 연꽃처럼 고고하고 아름답습니다. 무한한 존경을 드립니다.
그런데.. 스님
제가 이렇게 글을 드리게 된 것은 한가지 제가 여쭤보고 싶었던 질문이 언제나 가슴속에서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스님의 무소유의 정신에 대해 제 삶의 현실 속에서는 아직 접목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님은 일찍이 출가하셨고 대처스님도 아니시니 부양해야 할 가족이 계신 것도 아니고 평생을 수행 하시며 고고한 경지에 다다르셨겠지요.
하지만 저는 철저한 자본주의적 교육을 받고 자본주의의 기업 전쟁터에서 평생을 살고 있습니다. 남보다도 더 많이 업적을 창출해 내야 하고 연도별로 분기별로 월별로 달성해야만 하는 공격적인 목표가 있고 그것을 위한 무한 경쟁 속에서 수도 없이 경쟁사들을 밟기 위한 전략을 짜고 그 실행을 진두에 서 지휘 하였습니다.
그것을 해내지 못한다면 제가 조직으로부터 사라져야 할 운명이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지요. 매 기간별로 평가를 하고 평가를 받으며 그 평가 결과에 따라 사람은 급이 생기며 인격의 여하를 막론하고 조직 속에 처한 사람들은 그 평가 결과 만큼의 계급으로만 인정 받게 됩니다. 그러니 신분 상승하고자 하는 그 경쟁심과 보이지 않는 계급에 따른 대우 속에서 발전하고자 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체제 원리 이겠지요.
더 불쌍한 것은 우리 모두, 특히 조직사회에 몸담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질주하는 호랑이 등에 올라타 있기 때문에 내리기도 멈춰서 한 숨 돌리기도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저 저 멀리 보이는 얼룩말만을 바라보며 앞으로 내 달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제가 제 상사에게 아니면 제 부하 중 누가 저에게 만일 “저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실천하고 싶기 때문에 업적 투쟁은 좀 삼가하고 욕심 없이 살고 싶습니다.” 한다면 바로 “그래라” 할 것입니다. “즉시 좋은대로 해라. 단, 회사 조직 바깥에서…”
그렇습니다 스님. 이것이 제가 살아온 삶터인데, 그리고 아직도 이곳에서 그렇게 투쟁하고 있는데 스님의 그 ‘무소유’ 정신을 어떻게 접목해야 하겠습니까? 스님의 말씀이 너무 멀어 보입니다.
물론 스님, 저는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런대로 조금 있으면 조금은 욕심 없는 마음으로 돌아갈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제 후배들이나 자손이 계속 이런 상황에 놓여 있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스님, 피안의 정토에 계시더라도 부디 저의 고민을 알아 주시고 “이렇게 해라” 하고 대답 좀 보내 주시면 정말 답답한 마음이 좀 풀릴 것 같습니다. 스님, 제가 이렇게 말해도 저는 스님을 존경합니다. 많은 스님들이 다산의 자본주의에 물들어 더 큰 사찰, 주지의 명예와 권력 금력에 빠지는 사건들을 간혹 접하기 때문이지요. 거기에다 저는 더 부끄럽습니다. 제가 속한 개신교에서는 스님만한 분을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지요. 저 자신도 스님의 정신을 못 따라 가는데 누구를 원망 하며 무욕, 무소유를 실천하라고 말 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저는.. 욕심은 에너지의 일종이므로 갖되, 소유는 추구하되, 분수를 잊지 않고 균형을 잃지 않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스스로 말하곤 합니다. Y사, H사, D사. 심지어는 글로벌의 G사등 한 시대를 풍미하다 사라져간 총수들을 보며 보다 저에게 현실적으로 생각했지요. 패가망신의 지름길은 무한 욕망을 제어 할 브레이크를 잃어 버리는 것 이라구요.
스님 부디 평안 하시구요. 저의 마음이 편안해질 명쾌한 해답 좀 보내 주시기를 거듭 부탁 드립니다.
그럼 이만 총총…
2010 5 17 운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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