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계속 이어지는 연예인들의 자살, 그 방법을 따르는 일반인의 모방 자살, 거기에 최근에는 급기야 톱 탤런트 ㅊ씨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일까지 일어나 큰 충격을 주었다. 우리사회는 자살이 마치 유행처럼 번지는 듯 하다. OECD국가 중에서도 우리나라가 최고의 자살율을 기록하는 자살 왕국이 되었다 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많은 전문가들이 여러가지 진단을 내놓고 있다. 인터넷의 악플에 시달려 그 자괴감을 더 이상 견딜수 없었던 사례, 사업에 실패한 좌절감, 일어날 희망이 없어 보이는 미래, 대중의 인기로 부터 멀어진것 같은 소외감.. 자살 해야만 하는 이유는 한없이 많다.그 이유들이 모두 일리가 있고 잘못된 모욕죄나 비방에 대해서는 합당한 처리가 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그 이유를 생각해 보고 싶다. 우리 사회가 정신적으로 황폐해 진것은 산업화 과정에서 추구 되었던 높은 지위, 출세, 큰인기, 많은 재물, 일류 학교, 강한 권력등 욕망과 탐욕이 쓰나미 처럼 우리 사회를 휩쓸고 미화 되었으며, 작은것, 아름다운것, 소중한것들에 대한 인식이 가벼워 졌기 때문은 아닐까? 숭배된 가치를 향한 무한 질주와 경쟁의 과정에서 조금만 지체 되거나 떨어지면 그것을 자타가 용인 하기 어려운 사회적 관점이 우리들의 인내력을 약화 시키고 삶의 의욕을 상실케 하였다고 생각한다.
한편 나는 욕심과 의욕을 혼동케 하는 지나친 가르침도 인성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종교들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마음을 모두 비우면 걱정과 근심과 괴로움이 다 사라질 것이라 한다. 욕심을 버렸으면 자살하지 않았을 것이라 한다.지극히 맞는 말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네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어라. 그 후에야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 산처럼 살라하네 물처럼 살라하네.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데 무엇에 집착할 것인가. 놓으면 자유요 집착은 노예로다. 이런 훈계 보다 더 이상적이고 맞는 말은 없을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이 이렇게 실천 할 수만 있다면 이미 이세상은 전쟁도 시기도 질투도 없는 천국이 되었을텐데, 그런데 왜 그렇게 말하는 교계의 지도자 선거에서는 아직도 물질과 파벌이 횡행하며, 왜 주요 사찰의 주지 스님이 바뀔때는 각목이 날고 박이 터지는 것일까? 그들은 해법을 공허한 말로 제시만 하지 자신들에게도 똑같이 접목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적은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그 제시된 방법이 우리가 불가 항력적으로 몸담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와는 현실적으로 너무나 괴리가 큰, 실현 가능성이 거의 희박한 해법이기 때문은 아닐까. 욕심을 버려라. 그것은 극히 일부의 사람들, 사막의 골짜기에서 석청을 따먹고 살거나 삭발하고 세상과의 연을 완전히 끊으며 누더기 옷 한벌만 걸치고 구도하는 사람 외에는 받아 들이기가 어려운 말이다. 태생적으로 타고난 인간의 갖고 싶은 본능, 이루고 싶은 비젼의 기본적 욕구를 부정하고 억제하고 거부하는 말이다. 그러니 그 말을 아무리 외쳐도 세상의 변화는 코끼리 비스켓 만큼 밖에는 오지 않는다.
윌리엄 스미스 클라크(1826 ~ 1886) 박사는 미국인으로서 일본 정부의 초청을 받고 홋카이도 개발을 위해 평생 노력 하였다. 일본을 떠나며 제자들에게 남긴 말이 바로 저 유명한 "Boys, be ambitious!" 이다. 중학 1학년 때 부터 '삼위일체 영어' 첫페이지에 나오는 그 글을 보고 외우며 자랐다.
이제 누군가는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하고, 달성 가능하고 사회와 개인을 행복하게 할 제3의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것 아닐까. 그것이 무엇일끼. 소년들이여 야망을 품어라. 그것만으로는 안된다. 세상을 점점 약육강식의 정글로 몰아갈 것이다. 인간들이여 욕심을 버려라.그것만으로도 안된다. 사회와 개인의 발전에 꼭 필요한 적절한 목표와 비젼 그것을 이루려는 신념과 의욕 마져도 소극적으로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 그러면 사회와 개인은 점차 소극적이고 퇴화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나는 그 대안이 바로 Balanced Person(균형인) 이라고 생각한다. 즉 우리는 적절한 야망과 의욕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욕심과는 구별되는 개념으로 가르쳐져야 한다. 모든 괴로움은 욕심으로 부터 온다고 하는 말은 그'욕심'앞에 (지나친) 이라는 괄호를 아주 지워 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청결을 잃게하는 탐욕스러운 욕심을 절제하는것. 자신의 발전을 추진하고 사회와 약한자들을 배려 하고 공헌할수 있는 건강한 의욕을 갖추도록 후진을 교육 하는 것만이 우리 사회를 지켜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자기 통제력과 균형이 그물처럼 잘 짜여진 가치관의 사회에는 어느덧 자살이 스며들 틈이 없어지고 나라는 힘차게 발전해갈 것이다.
그렇다면 부적절한 욕심과 건강한 의욕의 평가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그 경계선은 어디인가? 욕심이란 그 목표를 이루었어도 존경과 인정을 받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위화감, 어려움, 또는 피해를 주거나 전체의 페어 플레이 룰을 어기는 것이다. 의욕이란 그것을 이룸으로서 전체에 공헌하고, 주변을 밝게하고 도움을 주며, 존경받고, 주변 사람들을 화목하고 즐겁게 하는 것이며,후세에게 미래를 꿈꾸게 할수 있는 바람직한 롤 모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세상을 살면서 의욕은 꼭 필요한 것이다. 지금보다 무엇이든지 더 잘 해 보겠다는 의욕이 없으면 발전이 없게 되므로 의욕은 꼭 필요한 마음가짐이다. 문제는 의욕이 지나치면 욕심이 되므로 의욕을 분수에 맞게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한편 자기 능력을 과대 평가하여 경거망동 동키호테가 되어도 안 되지만, 과소 평가해도 안 된다. 과소 평가는 겸손이 아니요,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개발하지 않고 게으른 자가 된다는 의미와 유사하다. 주신 재능을 부지런히 갈고 닦아 받을 준비와 내공이 축적된 사람에게 정신적 물질적 축복의 성과물이 주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인생이 총체적으로 행복해 지기 위하여는 건강한 의욕을 갖고, 분수를 알고 과한 욕심은 절제 하며, 균형인 으로서 주어진 달란트를 부지런히 절차탁마하여 올바른 결과물을 얻고 사회를 위하여 어떤 형태로든 공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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