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illy의 좋아하는 산문, 단편

전혜린의 일기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 중에서 - 2

Billy Soh 雲 響 2019. 7. 17. 11:46

모든 평범한 것, 사소한 것, 게으른 것, 목적 없는 것, 무기력한 것, 비굴한 것을 나는 증오한다. 자기 성장에 대해 아무 아무 사고도 지불하지 않는 그런 존재를 나는 경멸한다. 모든 유동하지 않는 것, 정지한 것은 퇴폐이다. 저열한 충동으로만 살고, 거기에도 만족하지 않는 여자를 나는 경멸한다. 피상적이고 자신에게 진지하지 못한 사람들.

나무는 하늘 높이, 높이 치솟고자 발 돋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별에까지 닿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비록 그것이 허락되지 않더라도...동경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닿을 수 없는 것, 불가능한 것의 추구,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인간이 아니고, 그저 좀 교활한 동물일 뿐이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은, 지껄이기 위해 지껄이는 사람, 철두철미하게 판에 박은 사고만을 가진 사람, 우쭐하고 유치하며 책임감이 없는 사람, 굴욕 앞에 치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 정신의 품격이 없는 사람이다.

가난하지만 자랑스러워야 한다. 어두운 골목길에서 타오르는 별들을 올려다본다. 모든 것은 봄과 동경으로 숨 쉬고 있다. 나는 착하고 믿을 수 있는 친구가 될 것이다.

- 대학시절, 맑고 영롱한 빛을 발하는 ‘전혜린’을 읽고 난 후 몇날, 몇일을 앓았는지...같은 여자로서 단연 동경의 대상이었던 자랑스런 한국인 전혜린, 그녀가 다시 생각나는 주말입니다. ‘한영애’씨의 ‘파도였나요’ 들을 수 있을까요?


                                                  

우리의 삶이란 결국 부단히 나에 이르는 길 이외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이것을 잊지 말고올해는 보다 나에 성실하게, 보다 진정한 실존으로서 존재하고 싶다. 나와 내 죽음의 본질을 파악하려고 모색하고 싶다. 온갖 정신의 게으름이나 낭비를 두려워하자. 무엇보다도 속화(俗化)에의 그것은 방지되어야 한다. 나의 생활을 시작하면 곧 등장할 내 속의  속물(俗物)을 미리 공포스럽게 혐오하고 멀리 하자. 언제나 언제나 너 자신이어야 한다.  아무 앞에서도 어디에서도......  우리의 일회성(一回性)을 명심하고 일순간을 아끼자. 미친 듯이 살자.
……
생명이 타오르는 실감이 있는 팽팽한 활줄같이 귀중한 순간들의 연결선으로 된 1년을 만들어야겠다. 과감할 것, 견딜 것,  그리고 참 나와 참 인간 존재와 죽음을 보다 깊이 사색할 것을 계속할 것,  가장 사소한 일에서부터 가장 큰 문제에 이르기까지 자기 성실을 지킬 것,  언제나 의식이 깨어 있을 것.  이것만이 어떤 새해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나의 의무(Sollen)인 것이다. 


권태란 우리를 소모시키고 파괴시키는 격렬한 열정이다.

권태란 이제 서로 신뢰할 수 없게 된 옛 공범자 두명 사이의 무서운 증오감이다.

나는 추구한다. 창백하고 순수한 달의 그 무감각한 냉정을 나는 갈망한다.

나는 끈끈한 것, 숨이 뜨거운것, 야비한 것, 친숙한 것을 증오한다.

나는 평범한 것을 증오한다.

 

나는 절대를 추구한다.

그러나 생은 나에게 평범과 피상의 것 외에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는다.

나는 중세와 대리석을 동경한다. 그릴파르처의 '절대세계'를 나는 동경한다.

무섭게 깊은 사랑, 심장이 터질듯한 환희, 죽고 싶은 환멸 등등,,,

일상 생활의 평면성이, 내용없는 인간들이 나를 질식시킨다.

나를 절망속으로 몰아 넣는다.

 

그리고 너의 사랑의 발작을 주의하라!

고독한 자는 그가 만난자에게 너무도 빨리 손을 내민다.

너는 많은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서는 안되고 단지 앞발을 내밀어라.

 

그리고 네 앞발에 발톱도 있기를 바란다.

정신속에서 나를 구제하지 않는다면 생이란 제로인 것이다.

존재에, 욕망에, 메커니증에 빠져서 응결되어 흐름이 없는 생이라면 계속할 이유가 없다.

어떤 순간에라도 정신의 비약이 느껴지는 순간이면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사랑이란 끝없는 겸손과 신뢰와 회의, 투쟁과 오해의 총체인거 같다.

그것을 감정적으로 본다면 '불안'일 것이다.  

무언지 허전하고 가슴이 답답한 느낌이 든다.

나무라도, 돌이라도 굳은 것을 안고 엉엉 울거나 막 취해 웃고싶은 느낌!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데서 오는 허망.

 

끝없는 회의의 숨가쁜 교차, 그리고 둔중한 단조, 이것이 생활의 리듬인 것 같다.

될 수 있는 대로 감정은 질식시켜버릴 것.

오로지 맑은 지혜와 의지의 힘에만 기댈 것.  

이것이 사람이 도달 할 수 있는 최고의 곡예사(Akrobat)인 것 같다.

그 상태에서는 야심을 느낀다. 다른 모든 것은 아무래도 좋다.

물같이 맑은 의식의 세계에서 늙은 잉어같이 살고 싶다.

 

니체의 말, '이모든 괴로움을 또다시!'가 얼마나 숨막히게 무서운 말인가를 느낀다.

온갖 싫은 일들, 너저분하고 후줄그레한 일들,

시시하고 따분한 일들이 깔려있는 운명의 아스팔트지만 이 길이 끝이 안났으면 하는,

또는 또 한번 하는 의욕은 실로 무겁고 기름진 삶의 욕구의 사고(思考)일 것이다.

... 

 의식하는 나와 생활하는 나,

내 손의 상부 구조와 하부 구조,

내 의식 속의 남의 의식, 남의 의식 속의 나의 의식,

커뮤니케이션의 너무나 드물고 너무나 짧은 데서 오는 단절감, 비애,

영혼과 영혼이 완전한 고독 속에서 맞부딪치는 어려움,

쉬운 길, 만인의 길, 자기를 내 던지고 유한성과 탁월성에 눈 감는 길의 크나큰 유혹,

나만이 어떤 오식 활자같이 거꾸로 박혀 있는 것 같은 콤플렉스.......

기타 삶의 메카니즘이 요구하는 의무 반감 및 무력이

모든 갈등에 넘친 가시밭 같은 길이 우리의 삶의 질이다.

매일 우리는 그 길 위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땀과 피를 흘리는지 모른다.

공동 사회는 우리의 의식이 실존하는 것에 반대밖에 되지 못하고

세계는 개체와 분쟁 상태로 대립해 있는 것이고 또

 우리는 타자 존재 없이는 생각할 수도 없는 세계 속의 존재인 것이다.

얼마나, 얼마나 모순에 넘친 가엾은 존재가 인간인 것일까?

언제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살아야 한다.

그것이 소제기같이 우리를 분말화하는 것에 불과하고 삶이란

 풍화작용의 일종에 불과한 것일지라도 우리는

이 무서운 허무감에 눈을 뜨고 응시해야 한다.

 

무無를 견딜 수 있는 경지를 내 속과 내 주변에 만들어야 한다.

우리 삶이란 결국 부단히 나에 이르는 길 외에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이것을 잊지 말고 올해는 보다 나에 성실하게, 보다 진정한 실존으로서 존재하고 싶다.

나와 내 죽음의 본질을 파악하려고 모색하고 싶다.

온갖 정신의 게으름이나 낭비를 두려워하자.

무엇보다도 속화俗化에의 그것은 방지되어야 한다.

나의 생활을 시작하면 곧 등장할 내 속의 속물을 미리 공포스럽게 혐오하고 멀리 하자.

언제나 언제나 너 자신이어야 한다.

아무 앞에서도 어디에서도.......

우리의 일회성을 명심하고 일순간을 아끼자.

미친 듯이 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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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린 (1934-1965)

 

법학자인 아버지를 두었고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서울법대에 입학하였으나 적성에 맞지 않음을 고민하다가 1955년 독일 뭰헨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문학과 철학 공부하며 4년을 보냈다. 귀국해서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글을 쓰고 번역에 매진하였다. 

 

그렇게 순간을 아끼며 미칠듯이 살다 요절하였다. 명민함이 가득했고 유난히 크고 진한 눈망울이 인상적이던 그녀는 항상 열정적으로 살면서도 늘 부족함을 느끼며 뭔가를 부단히 갈구하던 삶이었다. 그 속에서 떨칠 수 없었던 불안과 신경과민, 인간 본연의 고독과 외로움, 독립에 대한 애착, 한 없는 호기심애 가득찬 그녀느이 일생은 그녀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슬픔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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