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illy의 잊지못할 추억의 명화

발지대전투 - Battle of Bulge (1944. 12. 16~1945. 1. 16).

Billy Soh 雲 響 2014. 8. 24. 01:16

발지 대전투

감독
켄 아나킨
출연
헨리 폰다, 로버트 쇼, 로버트 라이언, 데이너 앤드류스
개봉
1965 미국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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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

 


출처 http://cafe.daum.net/dulumt/lvuB/384

 

 

 

 

Panzerlied(전차 행진곡) 


독일 군가의 대명사로 불리는 판쪄리트 전차행진곡이다. 영화 "발지대작전"에서 독일 전차병들이 노래하고 있는 영상을 보면 잘못된 지도자 히틀러를 만나 독일은 패망하였지만 게르만족의 투혼만은 죽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수 있다. 이러한 그들의 임전 무퇴 불굴의 정신이 전후의 폐허 속에서 독일 부흥의 에너지가 되었을 것이며 분단의 국가를 통일한 저력이 되었다고 보아도 큰 무리는 없을듯하다. 위의 노래는 우리나라의 기갑부대에서도 "충성전투가"라는 군가로 개사하여 부르고 있는 유명한 군가이다.

Ob"s stirmt oder schneit.
[옵쉬티름 오더 쉬하이트]
폭풍이 부나 눈이 오나.

Ob die Sonne uns lacht.
[옵디 존네 운즈 라히스]
태양이 우릴 향해 웃거나.

Der Tag glehend heiß .
[데어 타그 그뤼엔 하이스]
날씨가 아주 좋거나.

Oder eiskalt die Nacht.
[오더 아이스 칼티 나흐트]
얼음처럼 차가운 밤이나.

Bestaubt sind die Gesichter.
[베스타웁트 진트 디게 지히터]
불타듯이 더운 날씨에도.

Doch froh ist unser Sinn, Ja unser Sinn.
[더 프로이스트 운저 진 야 운 저 진]
얼굴은 먼지 투성이지만 우리는 행복하다네.

Es braust unser Panzer Im Sturmwind dahin.
[에스 브라우스트 운저 판저 임 슈름 빌 다힌]
그래, 행복하지. 우리의 전차는 폭풍처럼 몰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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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지 전투 장면

이하 사진출처 http://blog.daum.net/ch1301/8739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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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지전투

Battle of Bulge

(1944. 12. 16부터 1945. 1. 16까지)

 

히틀러의 최후의 도박'이라고 일컬어지는 발지전투는 히틀러가 아르덴 산림지대의 130Km에 걸친 유령전선에서 기습을 성공시키겠다는 전략이었다. 유령전선이라고 한것은 이곳이 살을 에이는듯한 추위와 태고의 정적에 잠겼는데 여기서 연합군과 독일군 양군이 두달 가까이나 대치하여 감시를 계속해 왔는데도 불구하고 서로 도발적인 군사행동을 회피하려 한데서 유래 되고 있었다. 이 유령전선에는 미8군단이 배치되어있었는데, 2개사단은 전투손실이 심했고 나머지 2개사단은 모두가 신병으로 편성되어 경험이 부족했다. 히틀러는 여기에 집중공격을 가하고 돌파구를 열어 뮤즈강까지 신속히 전진하려 하였다. 그 여세를 몰아 독일 기갑군을 동원해 단숨에 안트와프까지 전진해 연합군을 보급항구로 부터 차단시켜 패배의 날을 연기 시키는 것이 무조건 항복하기 보다는 유리한 강화 조건을 얻을 시간을 벌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주공부대는 요제프 디티리히 SS대장이 지휘하는 제 6장갑군으로, 이들은 아르덴느 북방을 돌파하고 뮤즈강을 건너 안트워프를 탈환한다. 그 남쪽에서는 폰 만토이펠 중장의 제 5장갑군이 뮤즈강을 건너 주공부대의 좌익을 엄호하며 에리히 브란덴베르거 중장의 제 7군은 주공부대의 남쪽에서 연합군의 반격을 견제한다. 마지막으로 권터 블루멘트리트 중장의 제 15군 역시 돌파지역의 남쪽에서 동일한 임무를 수행하게 하였다. 독일군은 처음부터 처음부터 이 작전에 예비병력을 두지 않고 모든 전력을 총 투입하여 모험을 걸었던 것이다.

그러나 히틀러의 이러한 무모한 작전은 이미 연합군에 비하여 병력, 장비와탄약, 연료, 의약품등 모든 보급이 절대적으로 열세였던 독일군의 패망을 앞당기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던 것이다. 

 

어제, 8월 22일은 1910년 일본의 테라우치 마사타케 총독과 조선의 이완용 내각 총리대신 사이에 한일 강제 병합 조약이 조인된 날이다. 오천년 역사를 자랑하던 한민족의 운명이 세계 정세의 변화를 읽지못하고 잠자고 있던 우리들의 선조들과 그 위기에서도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 하였던 매국 난적들에 의해 이렇게 스러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아무런 주관도 국가관의 무게 중심도 철학도 없이 패거리의 이익을 위해 무한 투쟁을 벌이는 작금의 정치 행태를 보며 불현듯 일본 제국과 삼국 동맹을 맺으며 연합군에 대항하였던 독일군과 전황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던 발지 대전투가 생각난던것은 왜일까. 70년전의 상황과 현재의 상황 특히 극동 아시아의 한반도를 둘러싼 첨예한 국익의 대립에서 위기의 구름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운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