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illy가 좋아하는 가곡

보 리 밭

Billy Soh 雲 響 2010. 3. 31. 15:09


 

보리밭

박화목 작시, 윤용하 작곡

 

보리밭 사이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저녁놀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어떤 날들이 우리 앞에 펼쳐저 있을지 아무런 예측도 하기 어려웠다. 안개에 덮인듯 앞길은 뿌우옇게 흐려 있었다. 어떤것도 확실하게 손에 잡히는 것은 없었지만 두려움은 없었다. 무엇인가 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속에 미래를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며 마음은 한껏 부풀어 오른다. 메말랐던 가지들에 또다시 움이 트는 새봄이 찾아오면 그리움과 인생, 사랑과 번민에 가슴을 움켜쥐며 밤을 지새곤 하였다.

 

모처럼의 휴일. 그토록 기다려온 R과 만나기로한 날이다. 어제 밤엔 설레는 마음에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였지만 새벽같이 일어나 서둘렀다. 약속 지점인 청량리역 광장에 도착하니 중앙선을 타고 휴일을 즐기려는 인파들로 붐비고 있었다. 대부분은 젊은이 학생들로 보이는 모습이다. 모두의 표정에서도 오늘 하루에 대한 기대가 넘쳤다. 약속 장소인 시계탑 아래에서 R이 보이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길고도 가슴을 졸이는 시간 이었다.  드디어 급히 걸어 온듯 불그스레 숨찬 얼굴로 그녀가 나타났다. 반가움에 가슴이 터질듯 하였지만 쑥스러움에 껴안지도 못하였다.

 

드디어 중앙선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득찬 사람들 틈에서 흔들렸지만 마음은 즐겁기만 하였다. 마석에 도착하니 꽤 많은 사람들이 내린다. 우리와 같은 목적지인 천마산을 오르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산길로 접어드니 비스듬한 경사에 파란 보리밭들이 펼쳐져 있었다. 그 싱그러운 공기와 산록의 정기에 힘을 얻은듯 R의 손을 잡으려면 그녀는 잠시 잡히는듯 하다가 이내 손을 빼내곤 한다.

 

"이게 뭐예요?" R이 묻는다.

"이거? 밀이지"

"아 이게 밀이예요?"

난 설마 하고 장난을 했던 셈인데 R이 진지하게 밀이라고 알고 되물으니 정말 난처하였다.

그것은 밀이 아니라 파랗게 돋아난 보리밭 이었던 것이다. 시골에서 자라난 나는 세상에 보리와 밀을 분간 못하는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차마 생각지 않고 말해봤던 것인데.. "아니 대학생이 밀과 보리를 몰라요?" 하고 놀렸지만 생각해 보니 R은 서울에서 나서 자란 페이브먼트 챠일드 라는것을 생각하며 아차하였다. 나는 대단한 것이나 더 아는양 밀과 보리의 다른점을 설명해 주며 산을 올랐다. 계곡에서 둘이 앉아 먹는 점심은 정말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꿀맛이었다. R은 힘들어 했지만 기어코 손을 잡아 끌며 천마산 정상까지 오르니 해는 이미 서쪽으로 가까이 기울고 있었다. 천마산은 험하진 않지만 내려오는 길은 그런대로 가파르다.

 

내려가는 길은 평내 쪽이었다. 나무를 붙잡아가며 내려가다보니 어느듯 S여대 생활관을 지나 평내역에 도착하였다. 주변은 노을이 물들고 있었다. 돌아가는 기차안도 만원이었다. 춘천에서부터 가평 청평을 지나며 계속 승객들을 태우니 점차 비좁아 지기만 하나보다. 평내를 출발한 기차가 한참을 가다가 웬일인지 중간에 멈춰 버리고 말았다. 차내 방송 시설도 없는데 기차는 움직일 줄을 모른다.  차안의 불도 꺼져 버렸다. 마음은 답답해지고 모두가 하루의 즐거운 생각들이 짜증으로 변하려 하였다.

 

그때였다. 누구였을까.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있어 발을 멈춘다."  모두가 젊은이들이었다. 순식간에 온 기차안에서 목소리를 맞추어 노래 소리가 울렸다. 어떤 친구들은 자기의 파트에 따라 하모니로 노래 하였다. 나는 좌석 손잡이에 걸터앉은 R의 손을 잡고 베이스로, R은 앨토로 노래 하였다. 모두가 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그 분위기에 젊음의 동질감에 젖어 오래된 친구들처럼 차속의 분위기가 즐겁게 변하였다. 차는 움직일줄 모르고 계속 노래가 이어졌다. 지루함과 피곤도 잊고 어느새 시간이 흐르고 기차가 움직였는지 아침에 떠났던 청량리 역에 도착 하였다. 선선한 봄밤의 공기에 모두가 헤어지기 아쉬운 눈빛들이었다.  젊음의 낭만이 넘치는 잊을수 없는 하루였다.

 

22살의 청춘, 그해 4월 5일의 일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젊음이 흘렀다. 불현듯 그날의 일들이 어제와 같이 떠오른다. 그 R이 바로 나와 인생을 함께하고 있는 나의 아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