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illy가 좋아하는 팝송

Isadora 이사도라 - '밤의 플랫홈'

Billy Soh 雲 響 2010. 7. 1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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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의 플랫홈'이 돌아 옵니다. 밤 10시 이후에 들으세요>

기차소리

이사도라 Isadora (Paul Mauriat 폴 모리아)

 

70년대 동아방송 라디오의 '밤의 풀랫홈' 이란 프로가 있었다. 성우 김세원씨가 매일 밤 9시 20분 부터 20분 정도 방송하던 프로였는데...  9시 뉴스가 끝나면 잠시 정적이 흘렀다. 다음 순간.. 어디론가 떠나고만 싶도록 유혹하는 기차 소리가 멀리서 부터 가까워져 우렁차게 울려퍼지면서 폴 모리아의 '이사도라'가 울려 퍼지는 것이었다. 시그널 음악이 잠시 흐른후 가라앉은 목소리, 외로운 톤의 김세원씨가 "밤의-  플랫 홈~" 하고 프로의 소개를 하면 가슴 깊은곳에서 싸아하고 알 수 없는 외로움과 슬픔이 몰려오곤 하였다.

그리곤 오늘 또는 최근에 일어난 일과 관련하여 아침이슬 처럼 맑고 수선화 처럼 가련한 컬러의 수필이나 일화를 담담하게 풀어나갈때 삶은 얼마나 허전하고 쓸쓸하며 그러면서도 무언지 모를 위로를 느끼곤 하였던가. 또 이야기의 사이 사이에 선곡하는 음악들도 듣는이의 마음을 알아보듯 가슴을 파고 드는 절묘함이 있었다.


그 시절에 듣던 가슴을 저미는듯한 아픈사랑 이야기, 머리속이 하얗게 바랠 만큼 허탈함이 느껴지는 삶의 이야기, 실연당한 젊은이가 띄우는 독백, 가슴 밑바닥이 시려오는 그리움.. 등의 이야기가 김세원씨의 그 차분한 목소리에 실려 전파를 탈때.. 그 분위기에 심취했던 내 젊은날의 초상이 시간과 공간의 거리를 뛰어넘어 되살아 나곤 한다.

 

나는 매일 처럼 그 프로를 놓칠세라 외출을 했다가도 귀가의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시간이 좀 늦어버린 어떤날은 버스 창가에 앉아 방송을 들으며 센치멘탈 Mr. Lonely 가 되곤 하였다.차창밖으로 보이는 밤거리를 바라보며
그녀의 한마디라도 놓치면 안되는듯 귀를기울이곤 했던 것이다.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 삶에 지친 영혼을 위로 하던 김세원의 '밤의 플랫홈'.   세월이 흘렀지만 고달픈 삶의 모습들은 그다지 변하지 않는다.  쓸쓸한 마음을 알아 줄수 있고 쓰다듬어 위로해 줄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 그런 목소리가 한층더 아쉬워지는 계절이 흐르고 또 흐른다.   

 

 

Isadora Duncan

 

이 음악 Isadora 는 이사도라 던컨의 파란 많은 인생을 그린 영화 '맨발의 이사도라' 의 주제 음악이며 Paul Mauriat(폴 모리아) 악단의 연주이다. Isadora 는 1878년 5월 26일 미국에서 태어나 1927년 9월14일 불의의 사고로 숨진 전설적인 현대무용가이다.

 

이사도라 던컨은 전통 무용을 배웠으나 차차 예술은 물론이고 개인 생활에서조차 전통과 관습을 거부하는 파격을 보였다. 관습을 배격하는, 자유분방한 연애와 동거, 개인 생활, 그녀의 춤 모두는 당시 보수적이고 편협한 사람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아름답고 기교가 뛰어난 전통 발레(ballet)와는 전혀 다른 춤이었다.

 

하지만 그 춤을 보고 있노라면 춤을 추는 무용수의 절절한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신대륙 미국에서 건너온 무용수 Isadora Duncan(이사도라 던컨). 아름다운 무대 장치도 없이..몸에 딱 붙는 무용복도 없이..토슈즈(toeshoes)도 없이.. 맨발에 헐렁하고 속이 비치는 Dress를 걸친 무용수는 처음 보는 춤을 유럽 사람들에게 선보였다. 그렇게..자유로운 맨발의 춤으로 이사도라는 전 유럽의 예술계를 뒤흔들어 놓았던 것이다.

 

  

 

 전통 무용을 배격하고 자유롭게 인간의 몸과 마음을 표현했던 그녀는 현대 무용을 창조적 예술의 수준으로 끌어올렸으며  자유로운 영혼과 전설적인 현대 무용의 어머니로 추앙 받게 되었다.

  

 

유럽에서의 성공으로 그녀는 팬들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트리고 부와 명성을 모두 얻게 되었지만 그녀의 사랑은 불운했다. 1906, 런던의 무대 디자이너 고든 크레이그와의 사이에 딸을 낳고, 1910, 미국의 부호 파리스 싱어와의 아들을 낳았으나 아이가 유모와 함께 자동차에 세느 강에 익사하는 비운의 사고를 겪었.   

 

후에 러시아에서 만났던 17 연하의 시인 에세닌과  사랑에 빠져 결혼했지만 그녀의 사랑은 실패하고 남편은 자살하였다. 그녀는  슬픔을 이기려 점점 정열적으로 춤을 추지만  화려하고도 뜨거웠던 그녀의 생애는 결국 극적인 죽음으로 끝이 나게 된다.

 

프랑스 남부 니스에에서 휴양을 하던 , 그녀를 숭배하는 젊은 청년이 스포츠카를 몰고 그녀에게  바람 쐬러 나가길 권하고.  그날 다소 쌀쌀한 날이었으므로 그녀는 아주 길고 장식만 45센치가 넘는 붉은 비단 올을 걸쳤다. 차가 출발하는 순간, 그녀의 쇼올 장식이 차바퀴에 말려 들어가면서  목이 졸려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현대 무용의 창시자,  불꽃보다도뜨겁게 살았던 이사도라 던컨 삶은 이렇게 허무하게 꺼져 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잊혀진 존재가 아닌 불멸의 이사도라로,  춤의 여신으로 우리에게 남아있다 시대를 앞서 살았던 예술가 이사도라. 그녀의 자유로웠던 예술과 영혼은 그녀를 얼마나 고통스럽게 했던 것일까...

 

이사도라의 삶을 생각하며 왠지 인간의 마음을 위로하는것은 기쁨보다는 오히려 슬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가슴 저리는 슬픈 배경의 음악을 시그널로 택했던 '밤의 플랫홈'과 그 속에 얽힌 젊은날의  서늘한 느낌이 되 살아 오는 오늘이다.    <운향>